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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워치]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정책 '조삼모사' 논란

  • 2021.03.04(목) 14:00

UN "한국, 온실가스 감축목표 다시 제출하라"
202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 5년 전과 똑같아

1990년대 인기리에 방영된 '출동! 지구특동대'라는 애니메이션을 기억하시는 분이 있을 겁니다. '땅 불 물 바람 마음' 다섯 가지 반지의 힘을 모아 지구를 파괴하는 악당을 물리치는 내용입니다. 만약 지구특공대가 2021년에 출동한다면 한국을 무대로 활동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대표적인 기후악당으로 통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이 기후악당이라는 오명을 얻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요. 지난 2015년 한국은 파리기후변화협약을 채택하며 2030년을 기준으로 온실가스를 얼마나 줄일지를 약속한 바 있습니다. 협약에 참가한 나라들은 모두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라는 보고서를 UN에 제출했습니다. 이 보고서에는 오는 2030년까지 얼마만큼의 온실가스를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담았습니다.

하지만 1년 뒤 협약에 참가한 국가들의 약속을 분석한 영국의 국제연구단체 기후행동추적(CAT·Climate Action Tracker)이 한국과 사우디아라비아, 호주 뉴질랜드 등 4개국을 지적하며 "기후변화 해결에 전혀 노력하지 않는 기후악당"이라는 비판에 나섰습니다. 약속한 감축량이 충분하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이후 국제사회의 압박이 계속됐습니다. 최근에는 사용하는 에너지의 100%를 재생에너지를 통해 만들자는 RE100운동이 글로벌 산업계의 대세가 되면서 압박은 실체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우리 정부도 악당으로 계속 남을 생각은 없어 보입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국가 발전 전략 '한국판 뉴딜'을 발표했습니다. 정책의 핵심은 석탄화력발전을 줄이고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을 늘려 궁극적으로 100% 신재생에너지 발전사회를 이루는 게 목표입니다. 이를 위한 다양한 정책도 최근 도입되는 중입니다. 

# UN "한국의 온실가스 감축목표 5년 전과 똑같아"

한국은 ‘파리협정’의 충실한 이행을 비롯한 신기후 체제 확립 노력에 적극 동참하고 있습니다. 올해 말까지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갱신해 UN에 제출할 예정이며,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도 마련해 '2050년 저탄소사회 구현'에 국제사회와 함께하겠습니다.

그린뉴딜을 발표한 뒤 지난해 9월 열린 제75차 UN총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한 기조연설 중 일부입니다. 이제 한국은 악당이 아니라는 선언과 다름없었습니다. 이어 지난해 말 한국은 UN에 새로운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담긴 보고서를 제출합니다.

그런데 최근 UN이 '말 잔치를 끝내고 약속을 지키라'는 지적에 나섰습니다. 페트리샤 에스피노자 UN기후변화협약(UNFCCC) 사무총장이 지난 2월26일 논평을 통해 한국 등 여러나라가 지난해 말 제출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검토한 결과 지난 2015년 약속한 수치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보고서를 보니 표현만 달라졌을 뿐 감축목표는 그대로라는 게 UN 측의 설명입니다. 한국에 대해 '기후악당'이라는 별명을 달아준 기후행동추적도 보고서를 분석한 뒤 '목표를 높이지 않았음'이라는 평가를 내리며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노력이 여전히 '매우 부족하다'는 평을 남겼습니다.

# 감축목표 업데이트했다지만…결국 같은 말

실제로 정부가 UN에 제출한 문서를 분석해 확인했습니다. UN의 설명은 사실입니다. 한국이 2015년 제출한 수치와 2020년 제출한 수치는 거의 같습니다.

먼저 지난 2015년 한국이 제출한 보고서를 봤습니다. 총 4페이지짜리 문서입니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인위적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 때 2030년 예상배출량(BAU·Business As Usual)을 기준으로 37% '감축'이 목표라고 합니다. 정부가 예상한 2030년 예상배출량은 8억5060만톤(850.6MtCO2 -eq)이라고 전망했습니다. 'MtCO2 -eq'는 온실가스의 배출량을 표시에 사용하는 국제적인 단위입니다.

다음은 지난해 다시 제출한 보고서입니다. 페이지는 총 27페이지로 늘었습니다.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그린뉴딜에 대한 설명 때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온실가스 관련 내용은 간략하게 표현됐습니다. 얼마를 줄이겠다가 아니라 얼마만큼 배출하겠다는 방식으로 표현했습니다. 2030년 기준 목표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은 5억3600만톤(536MtCO2 -eq)이라고 합니다.

차이가 보이시나요. 2015년에는 예상배출량 대비 퍼센테이지(%)로 표현한 '감축' 목표를 제시했으며, 2020년에는 곧바로 '배출' 목표를 제시했습니다. 얼핏 보면 다른 두 수치를 보여주니 내용도 다를 다를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간단한 산수를 해보겠습니다.

먼저 지난 2015년 보고서에 따른 실제 감축 목표를 계산합니다. 2030년 예상배출량 8억5060만톤의 37%는 3억1470만톤입니다. 목표 배출량은 예상배출량에서 감축 목표를 빼면 됩니다. 8억5060만톤에서 3억1470톤을 빼볼까요. 2015년 한국이 제시한 2030년 기준 온실가스 목표 배출량은 5억3590만톤입니다. 

그런데 이 숫자 익숙합니다. 지난해 보고서에서 제시한 온실가스 배출 목표인 5억3600만톤과 단 10만톤 차이입니다. 

우리 정부는 UN을 원숭이라고 생각한 것일까요. 국제사회에 이런 조삼모사가 통할 리가 없습니다. 파리협정을 충실하게 이행하겠다는 대통령의 약속이 공허합니다. 

# 중국·일본 등 온실가스 감축 목표 약속 한국보다 나아

세계 각국이 최근 새로 제출한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분석한 결과 사실상 목표가 그대로인 국가는 한국만이 아니라고 합니다. 호주와 러시아, 브라질, 싱가포르, 멕시코, 스위스, 뉴질랜드, 베트남, 그리고 가까운 일본도 2015년과 달라진 바 없는 수치를 그대로 제출해 비난을 받는 나라입니다. 실망한 UN은 파리협정에 서명한 국가 모두 감축목표를 상향해 보고서를 다시 제출해달라고 권고했습니다.

기후 악당 입장에서 동료가 많다고 위안을 삼을 수는 없습니다. 일본은 UN의 지적이 나오자 오는 2050년까지 온실가스 실질 배출량을 0으로 만든다는 목표를 법률에 명시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중국은 이미 강력한 감축 목표를 내놓은 국가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우리는 뒤처지고 있습니다.

오는 4월 22일 지구의 날에 세계 각국이 참여하는 기후정상회의가 열릴 예정입니다. 미국은 이날이 오기 전에 새로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제출할 방침이라고 합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새로 꾸려진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최근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탄소국경세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미국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상향될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가 대세에 맞서는 '악당'으로 계속 남을지, 새로운 '히어로'가 될지 결정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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