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지난해 CE(소비자가전) 부문 실적 개선을 이끌었던 맞춤형 가전 '비스포크'에 더 힘을 준다. 여러 신제품 출시를 통해 비스포크 브랜드를 주방가전뿐 아니라 생활가전 제품 전체로 확대하면서 본격적인 맞춤형 가전시장 공략에 나선다. 올해 삼성전자 국내 가전제품 매출 비중의 80%를 비스포크로 채운다는 게 목표다.
◇ 주방 넘어 침실·세탁실까지 '비스포크'
삼성전자는 지난 2019년 6월 '프로젝트 프리즘'을 생활가전사업의 새로운 비전으로 내걸고 가전업계 맞춤형 가전 시대를 열었다. 비스포크라는 개인화된 맞춤형 제품을 선보이는 것에서 더 나아가 다른 업종과의 협업을 활발히 하고, 프로젝트를 꾸준히 확장하는 것이 목표였다. 관련기사☞ "나다운 가전"…삼성 '프로젝트 프리즘' 1년 성과는
9일 삼성전자는 온라인을 통해 '비스포크 홈 미디어데이'를 열고, 이 같은 비전을 한 단계 더 구체화했다. 비스포크를 활용한 맞춤형 홈 솔루션을 선보이고, 이를 통해 '공간·시간·생태계'를 확장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먼저 거실, 침실, 세탁실 등 집안 전체를 비스포크 콘셉트로 통일감 있게 구현함으로써 '공간'의 확대에 나선다. 이를 위해 삼성전자는 올 상반기 내 냉장고를 비롯해 ▲정수기 ▲세탁기 ▲건조기 ▲신발관리기 ▲에어컨 ▲무선청소기 등 17개 비스포크 홈 신제품을 출시할 계획이다.
대표 제품인 '비스포크 냉장고'는 가장 인기 있는 4도어 타입에 새로운 디자인과 정수기를 탑재한 신모델을 출시했다. 22가지 종류의 패널을 기본으로 제공하고, 소비자가 원하면 360가지 색상으로 구성된 '프리즘 컬러'에서 취향에 맞는 색상을 주문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이를 위해 '프리즘 360 글래스 컬러링' 공법을 개발해 맞춤형 패널을 빠르게 제조·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도 마련했다. 대용량 정수기는 냉장고 도어 안쪽에 배치해 디자인과 위생도 개선됐다.
세계 최대 가전 전시회인 CES 2021에서 혁신상을 받은 '비스포크 정수기'도 이달 말 판매를 시작한다. 에어드레서의 핵심 기술을 적용해 신발을 관리해주는 '비스포크 슈드레서'는 5월에 선보일 예정이다.
◇ 품질 믿고 내건 '평생보증'
비스포크는 또 다른 강점인 모듈 구조로 제품의 '시간(수명)'도 확대했다. 제품 구매 후 시간이 지나 자녀 출생, 이사 등으로 사용 환경이 바뀌더라도 패널이나 부품 일부를 교체하는 것만으로 제품을 새로 살 필요가 없도록 한 것이다.
특히 가전 제품의 장기 사용을 지원하기 위해 디지털 인버터 컴프레서와 디지털 인버터 모터를 기한 없이 무상 수리 또는 교체하는 '평생보증' 서비스도 제공하기로 했다. 대상은 2021년형 신제품부터다.
냉장고·에어컨·건조기 등에 사용되는 디지털 인버터 컴프레서는 기체 상태의 냉매를 액체로 압축해 순환시켜주는 부품이다. 디지털 인버터 모터는 세탁기·청소기 등의 제품에서 회전을 일으켜 세척과 먼지 흡입 등의 기능을 가능하게 한다.
이 같은 결정의 배경에는 해당 부품에 대한 품질 자신감이 있다. 이기수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 개발팀장(부사장)은 "그간 10년 보증을 시행하면서 얻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평생보증을 하면서도 비용 부담을 증가시키지 않기 위한 방법을 고민했다"며 "품질에 대한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평생보증을 해도 비용은 오히려 줄어들 것"이라고 자신했다.
◇ 한샘·카카오·CJ·쿠팡 '문어발 협력'
비스포크 '생태계' 확장을 위해 분야별 전문 업체들과의 협력도 강화한다. 이른바 오픈 협업 시스템 '팀 비스포크'다.
팀 비스포크는 ▲디자인 ▲기술(부품·제조) ▲콘텐츠 서비스 분야의 전문업체들이 파트너사로 참여한다. 올해 신제품 디자인 분야에서는 글로벌 페인트 회사인 '벤자민 무어'가 협력했다. 벤자민 무어의 트렌드 색상을 기반으로 360개의 '프리즘 컬러'를 글라스 소재 냉장고에 적용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종합 홈인테리어 전문 기업 '한샘'과는 제품을 패키지로 판매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테크 분야에서는 대창, 디케이, 두영실업, 오비오 등이 참여해 일부 비스포크 가전제품을 협업 생산한다.
콘텐츠 서비스 분야에서는 카카오엔터프라이즈·CJ제일제당·쿠팡 등과 손잡고 스마트싱스 앱 연동을 통한 다양한 생활편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이달부터 세탁기, 건조기, 공기청정기, 로봇청소기 등 4개의 삼성 가전제품을 카카오 AI 스피커와 연동된 카카오홈을 통해 음성으로 제어하는 서비스를 시행한다.
CJ제일제당과는 가정간편식(HMR)을 직화 오븐이나 전자레인지로 쉽게 조리할 수 있도록 조리 알고리즘을 최적화했고, 쿠팡과 협업을 통해 세제가 떨어지기 전에 간편하게 구매할 수 있는 '세제 간편 구매' 기능을 세탁기에 적용했다.
삼성전자는 더욱 많은 파트너사를 발굴한다는 구상이다. 양혜순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 상무는 "빠르게 변화하고 세분화되는 소비자의 니즈에 대응하기 위해 각 분야 전문업체들과 드림팀을 구성했고, 삼성전자와 함께 동반성장하자는 의미로 이름을 공개했다"며 "앞으로도 협력 관계를 계속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맞춤형 가전 '전쟁 시작'
이를 통해 삼성전자는 지난해 비스포크의 성공으로 얻은 맞춤형 시장에서의 우위를 올해도 이어갈 계획이다. 지난해 1월부터 5월까지 판매된 삼성 냉장고의 60%가 비스포크 냉장고였던 것에 이어, 올해는 비스포크 브랜드 제품이 국내 가전 매출의 80%를 차지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지난해 삼성전자 CE부문은 역대 최대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4년 만에 LG전자를 앞섰다. TV시장에서의 우위가 유지된 가운데 비스포크의 선전으로 생활가전 분야에서도 눈에 띄는 성장세를 기록한 덕이다. 관련기사☞ '가전은 ○○?' 삼성·LG 엎치락뒤치락
특히 경쟁사인 LG전자까지 맞춤형 가전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시장 전체 규모도 점점 늘어날 전망이다. 같은 날 LG전자는 지난달 가전 구매 고객 중 약 50%가 공간 인테리어 가전 'LG 오브제컬렉션' 제품을 구매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일반 제품과 오브제컬렉션을 선택할 수 있다면, 절반 정도가 오브제컬렉션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이재승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장(사장)은 "집은 단순히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 아닌 즐기고 일하고 공부하는 생활 그 자체가 되고 있다"며 "단순히 제품 라인업을 확대하는데 그치지 않고 소비자들이 비스포크 홈을 통해 최적의 생활 환경을 조성하고 제품을 사용하는 내내 필요한 서비스를 맞춤형으로 제공받을 수 있도록 '홈 솔루션'을 구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삼성전자는 서울 삼성디지털프라자 강남본점 5층에 마련된 '라이프스타일 쇼룸'을 비스포크 홈으로 전면 재단장했다. 6층에는 360가지 프리즘 컬러를 냉장고에 직접 조합해볼 수 있는 '비스포크 아틀리에'를 마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