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시장에서 쓸쓸히 퇴장했던 LG전자가 다시 시장의 변수로 떠올랐습니다. 무슨 얘기냐고요? LG전자가 자사 브랜드숍인 LG베스트샵에서 애플의 아이폰을 판매하는 사안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것 때문입니다.
LG전자가 비운 스마트폰 시장의 자리를 자연스럽게 차지하려던 삼성전자는 난처해졌습니다. 비단 스마트폰의 문제가 아닙니다. LG전자 매장을 애플 휴대폰 고객들이 찾게 되면 맞춤형 가전인 '비스포크'를 통해 가전 시장에서 LG전자의 아성을 깨보려던 시도까지도 물거품이 돼버릴 수도 있는 거죠. 그 속사정을 들여다봤습니다.
'공짜'는 없었다
LG전자는 전국 400여 개 LG베스트샵에서 애플의 아이폰과 아이패드, 애플워치 등을 판매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LG베스트샵은 LG전자가 직접, 혹은 자회사인 하이프라자가 운영하는 LG전자 브랜드숍이죠. LG전자 측은 "모든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LG전자의 스마트폰 사업 종료 시점이 7월31일인 만큼, 8월 초부터 LG베스트샵에서 아이폰이 판매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맞으면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곳이 있습니다. 한 매체에서는 삼성전자의 한국 사업 총괄과 스마트폰 사업부 관계자들이 긴급 대책 회의를 열었다고 보도했습니다. 삼성전자 내부에서 이 사안에 대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고, 대응 방안 구상을 위해 고심하고 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삼성전자 측은 LG베스트샵에서의 아이폰 판매를 논제로 긴급 대책회의를 열었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부인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위기감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털어놨습니다.
사실 삼성전자는 이 상황이 난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작년 국내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삼성전자 65%, 애플 20%, LG전자 13%였습니다. 그동안 업계에서는 LG전자가 스마트폰 사업을 철수하면서, LG의 국내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을 삼성전자가 쉽게 가져갈 것이라 예측했는데요. 그 이유는 운영체제(OS) 때문입니다.
애플은 자체 운영체제인 'iOS'를 사용하지만 삼성전자는 LG전자와 같은 '안드로이드' 진영입니다. 안드로이드 사용자라면 아이폰보다는 같은 안드로이드를 쓰는 삼성전자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죠. 샤오미 등 중국 기업들의 스마트폰도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사용하긴 하지만 국내 시장은 '외산폰의 무덤'이라고 불릴 만큼 유독 중국 기업에는 장벽이 높은 편입니다. 업계에서 삼성전자가 LG전자의 시장 점유율을 쉽게 흡수할 것으로 점쳤던 이유였죠.
하지만 애플 제품이 LG베스트샵에 입점하면 상황이 확 달라집니다. LG베스트샵은 전국 400여개 매장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올해 여의도에 애플스토어를 오픈하며 고객과의 접점 확대에 힘을 주던 애플은 LG베스트샵에 입점함으로써 판매처를 단숨에 늘릴 수 있습니다.
애플이 한국을 대하는 태도도 점차 바뀌고 있습니다. 애플은 LG전자가 모바일 사업 철수를 발표하자 LG폰에 대한 보상 프로그램을 실시했는데요. 사용하던 LG폰을 반납하고 아이폰12 시리즈로 교체할 경우 기본 단말기 중고 시세에 15만원을 추가로 지급하는 것이 골자입니다.
중요한 것은 애플이 전 세계에서 중고폰에 대한 보상금을 지급하는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라는 점입니다. 애플도 국내 시장에서 LG전자가 차지하고 있던 점유율을 간절하게 원하고 있다는 뜻이겠죠.
이런 상황이다 보니 삼성전자로서는 애플이 자사의 '본진'인 한국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는 것이 반가울 수 없는 상황입니다. 더욱이 최근 애플의 성장세도 심상치 않습니다.
작년 출시한 애플의 첫 5G(5세대 이동통신) 스마트폰인 아이폰12 시리즈는 올해 1분기까지도 장기 흥행 중입니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 조사 결과 아이폰12 시리즈는 올해 1분기 글로벌 스마트폰 판매량과 매출액에서 모두 순위권을 차지했는데요. 매출액에서는 아이폰 프로 맥스가 1위였고 아이폰12, 아이폰12 프로가 뒤를 이었습니다. 심지어 재작년 출시한 아이폰11가 꾸준한 판매를 기록하며 4위에 올랐죠. 삼성전자가 올 초 출시한 갤럭시S21 울트라는 3% 점유율로 5위에 머물렀습니다.
판매량 기준으로도 애플의 압승이었습니다. 아이폰12를 필두로 아이폰12 프로 맥스, 아이폰12 프로, 아이폰11이 차례대로 순위권에 올랐고요. 삼성전자의 갤럭시 시리즈는 7위의 갤럭시A12가 가장 높은 순위였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LG전자의 점유율을 흡수하면 점유율 80%에 가까운 독과점 형태가 되기 때문에 견제해야 할 부분"이었다며 "경쟁사들 입장에서는 LG베스트샵에서의 아이폰 판매가 이를 견제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짚었습니다.
애플 가세하니…비스포크까지 위협
삼성전자가 이 사안에 대해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스마트폰 시장을 넘어 가전 시장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LG베스트샵은 LG전자의 모든 가전제품이 모여 있는 오프라인 매장입니다. 애플 제품을 구매하려는 고객이 LG베스트샵에 방문하는 경우가 많아지면 LG전자 제품이나 브랜드 인지도에도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겠죠.
일각에서는 애플이 입점하게 되면 LG베스트샵을 방문하는 고객의 연령대가 낮아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가전 오프라인 매장의 주요 방문객은 신혼부부 혹은 40~50대 이상의 중장년층입니다. 이에 비해 애플 제품에 선호도가 높은 연령대는 이보다 낮은 편이죠. 애플 제품을 사려는 고객이 LG베스트샵으로 몰리면 LG전자의 제품과 브랜드 인지도가 전 연령층으로 넓어지게 될 공산이 있습니다.
단순히 매장을 함께 쓰는 것뿐 아니라 공동 판촉 같은 기획도 가능하겠죠. LG전자는 신혼 가전을 보러온 젊은 고객에 아이폰 패키지를 들이밀 수도 있는 겁니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매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죠. 가전 시장에서 '비스포크' 브랜드를 내걸고 MZ(밀레니얼·Z)세대를 타깃으로 한 광고나 마케팅을 활발히 벌이고 있는 삼성전자의 입지가 흔들릴 수 있는 셈입니다.
삼성전자는 2019년부터 맞춤형 가전 비스포크를 가전 시장의 승부수로 내걸고 LG전자와 경쟁하고 있는데요. '가전은 LG'라는 말이 통용될 정도로, 가전 시장에서의 LG전자의 입지가 워낙 강력하다 보니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지난 1분기 삼성전자 CE(소비자가전) 부문에서 TV사업을 담당하는 VD(영상디스플레이)부문을 제외한 생활가전 매출은 5조7700억원 수준입니다. LG전자의 생활가전 사업부인 H&A사업본부의 매출액인 6조7081억원보다 1조원가량 적죠.
영업이익으로 보면 격차가 더 큽니다. 삼성전자는 CE부문에서 VD부문을 제외한 생활가전사업의 영업이익을 별도로 공개하고 있지 않지만, 증권사 리포트를 종합하면 영업이익은 4000억원대로 추정됩니다. 이에 비해 LG전자 H&A사업본부의 경우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9199억원을 기록했죠. 미국 가전업체 월풀의 지난 1분기 영업이익 6억1800만 달러(약 6950억원)도 앞섰습니다.
이에 대해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최근 몇 년간 비스포크를 앞세워 가전 시장에서 LG전자와의 격차를 줄이려고 하는 상황에 찬물을 확 끼얹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LG전자 입장에서는 기존에 LG베스트샵에서 스마트폰 판매 직원들의 고용 문제도 해결할 수 있어 일석이조일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어깨 무거워지는 '폴더블'
이런 상황에서 8월 공개될 것으로 예상되는 삼성전자의 폴더블 스마트폰 신작의 어깨는 더 무거워질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삼성전자는 올해 하반기 플래그십(전략) 스마트폰이었던 '노트' 시리즈를 폴더블폰으로 대체하기로 했습니다. 삼성전자가 처음으로 시도한 '폴더블'이라는 새로운 폼팩터(형태)를 대중화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죠. 이를 위해 하반기 플래그십 스마트폰 출시 시기를 한 달가량 앞당기는 전략도 고민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관련기사 : 폰 출시 앞당겨 재미본 삼성전자…Z폴드도?(6월17일)
또 삼성전자는 폴더블 대중화를 위해 폴더블 신제품의 기능은 전작 대비 개선하면서도 가격은 낮출 것으로 전망됩니다.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갤럭시Z폴드3는 폴더블폰 최초로 전면 카메라를 화면 밑에 배치하는 '언더 디스플레이 카메라(UDC)' 기술이 탑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갤럭시 노트의 시리즈의 주무기인 S펜 탑재도 유력하게 점쳐집니다.
그러면서도 가격까지 낮추려고 한답니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갤럭시Z폴드3의 출고가는 180만~190만원대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2019년 출시됐던 갤럭시폴드와 작년 출시된 갤럭시Z폴드2는 239만8000원이었습니다. 기능은 개선됐지만 가격은 40만원가량 저렴해지는 것이죠. 폴더블폰 성능을 키우면서 가격도 낮춘다지만 안방인 국내에서 맞닥뜨리게 된 LG와 애플의 협공을 잘 막아낼 수 있을지 지켜볼 만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