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LG전자가 자동차 전장 사업의 흑자 전환을 공언한 해다. 구체적인 시점은 하반기다. 하지만 조짐이 썩 좋지는 않다. 작년까지만 해도 3분기 흑자전환을 점찍었지만, 4분기로 살짝 미뤘다. 심지어 지난 2분기에는 적자가 급격히 늘었다.
그런데도 LG전자는 여전히 올해 흑자전환이 가능하다고 자신한다. 지난 5년 동안 8000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면서도 인수, 합작법인 설립 등을 통해 사업을 확장하며 외형을 키운 게 힘이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수익이 발생할 시점이라며 벼르고 있다.
숨겨진 아픈 손가락
지난 2분기 LG전자 VS(Vehicle Component Solutions)사업본부의 매출액은 1조8847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2배 이상 급증했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의 수요가 회복 단계에 접어들면서 주요 프로젝트 공급이 재개되고 전기차 부품 판매가 늘어난 결과다.
하지만 같은 기간 영업손실은 1032억원으로 지난 1분기 39억원보다 1000억원 가까이 늘었다. 차량용 반도체 수급이 어려워져 부품 가격이 상승했고, 일시적 비용도 증가했다.
지난달 29일 실적 발표 이후 열린 컨퍼런스콜(전화회의)에서 김주용 VS 경영관리 담당은 "고객 대응 관점에서 큰 비용 증가로 수익성에서는 제약이 있었다"면서도 "차량용 반도체 부족과 일부 OEM(완성차) 공장 셧다운 등 여러 리스크 요인 속에서도 고객사와 수요 대응을 위한 제반 협력을 통해 매출 영향을 최소화했다"고 설명했다.
그간 휴대폰 사업을 담당하는 MC(Mobile Communications)사업본부의 그늘에 가려져 도드라지지 않았지만, VS사업본부도 오랜 기간 적자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2014년까지 LG전자 기타 사업부문에 속해있던 VS사업본부는 사업 확장을 위해 2015년부터 독립사업부(당시 VC사업본부)로 승격됐다.
외형은 꾸준히 확장했다. 2015년 1조8324억원이었던 매출액은 지난 2018년 4조2876억원을 기록하며 두 배 이상 커졌고, 작년에는 5조8028억원의 매출을 시현했다.
반면 적자는 계속 늘었다. 2015년 4분기에 독립사업부 승격 이후 단 한 번 소폭 흑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5년 반 동안 22개 분기 연속 적자를 내고 있다. 사업부 독립 후 누적 영업손실만 약 8600억원에 달한다. 올해 상반기 영업손실(1071억원)을 더하면 1조원에 가깝다.
VS사업본부가 MC사업본부처럼 LG전자의 '아픈 손가락'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적자 탈출이 시급한 셈이다. MC사업본부는 24개 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한 뒤 지난달 사업을 종료했다.
손실 늘어도…LG전자가 믿는 구석
영업손실은 늘었지만 공언했던 '하반기 흑자 전환' 목표는 무리 없이 달성 가능하다는 것이 LG전자 입장이다. 컨퍼런스콜에서 김주용 담당은 "하반기는 반도체 수급 이슈가 완화되는 가운데, 추가적인 매출 증가와 내부 원가 절감 활동 강화로 흑자 전환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목표에 변함이 없음을 재확인했다.
이미 확보된 수주잔고와 원가 구조 개선 전망을 고려할 때 내년 이후부터는 매출 증가와 수익성 개선도 기대한다는 것이다.
최근 완성한 전장 3개 사업 축이 흑자 자신감의 배경이다. LG전자는 △VS사업본부의 인포테인먼트 △ZKW의 차량용 조명 △엘지마그나 이파워트레인의 전기차 파워트레인을 3개 축으로 삼고 전장사업을 전개할 계획이다. VS사업본부를 주축으로 ZKW와 엘지마그나 이파워트레인이라는 양 날개를 단 셈이다.
박강호 대신증권 연구원은 "VS사업본부는 LG마그나 이파워트레인을 통한 전기자동차의 외주 생산 전략 확대, ZKW를 통한 유럽 지역에서의 브랜드 인지도 확대로 수주 물량이 증가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마그나 수주 확보 총력…애플도?
LG전자는 세계 3위 자동차 부품업체 마그나 인터내셔널과 손잡고 합작법인 엘지마그나 이파워트레인을 설립했다. 지난달 1일 전기차 파워트레인 관련 사업을 물적분할해 100% 자회사인 엘지마그나 이파워트레인을 설립했고, 28일 마그나에 이 회사의 주식 49%를 매각해 합작법인 설립절차를 마무리 지었다.
합작법인 설립이 VS사업본부의 실적에 당장 기여하는 것은 아니다. LG전자 관계자는 "B2B(기업 간 거래)의 특성상 사업 호흡이 길어 수주 단계에서 실제 수익까지는 적어도 2~3년이 소요된다"며 "실적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빨라야 내년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엘지마그나는 내년 손익분기점(BEP)을 달성하고, 오는 2023년 매출 1조원을 상회할 것으로 예상된다.
엘지마그나 출범이 VS사업본부 흑자 전환에 바로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LG전자는 마그나가 가진 네트워크에서 파생될 수주 물량에 기대를 걸고 있다. 마그나는 현재 GM, BMW, 포트, 피아트크라이슬러 등을 주요 고객사로 확보하고 있다.
최근에는 애플과의 협력 가능성도 지속적으로 언급돼 시장 기대감이 높아진 상태다. 애플이 전기 자율주행차 프로젝트인 '타이탄 프로젝트'를 위해 완성차업체가 아닌 부품사들과 손잡을 가능성이 커지면서, 과거 애플카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마그나가 주요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LG도 애플과의 관계가 우호적이다. 애플은 LG디스플레이, LG이노텍, LG화학의 주요 고객사다. LG전자는 이달 중순부터 자사 브랜드숍인 LG베스트샵에서 아이폰, 애플워치, 아이패드 등을 판매할 예정이다.
ZKW도 과거 털고 새 출발
그간 VS사업본부의 외형 확장에만 일조했던 ZKW도 사업구조 개편과 함께 수익 개선에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LG전자는 자동차 부품 사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지난 2018년 8월 오스트리아 헤드램프 기업 ZKW 지분 70%를 인수했다. 나머지 30% 지분은 ㈜LG가 보유하고 있다.
특히 LG전자는 지난해 ZKW의 영업권 손상차손을 회계 처리하며 VS사업본부의 흑자 전환을 위한 사전 준비를 마쳤다. ZKW가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여파로 겪은 부진을 작년 회계처리로 털어내 올해 실적에 미칠 위험 요소를 줄인 것이다. LG전자가 ZKW 영업권 손상평가를 핵심감사사항에 포함한 것은 지난해가 처음이다.
감사를 맡은 삼일회계법인 측은 "ZKW에 배분된 영업권이 연결재무제표에서 중요한 금액이고 사업계획 대비 당기 실적이 유의적으로 하락했다"며 "손상평가 수행 시 사용가치 평가에 유의적인 경영진의 판단이 수반되는 점을 고려해 해당 항목을 핵심감사사항에 포함했다"고 설명했다.
영업권은 인수·합병 시 순자산 금액보다 더 준 웃돈을 말한다. 영업 노하우나 브랜드 인지도 등 장부에 잡히지 않지만 기업이 초과이익을 얻도록 돕는 무형자산에 대한 대가다.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를 적용하는 기업은 영업권을 평가해 회수가능액이 장부가격에 미치지 못하면 그 차액을 손상차손으로 반영한다. ▷관련기사: [인사이드 스토리]LG전자 재무제표의 '5400억' 정체(2018년 11월22일)
평가 결과 기존 ZKW의 영업권은 5423억원이었지만, 2372억원이 손상처리돼 영업권 잔존가치는 43.7% 감소한 3052억원으로 책정됐다. LG전자가 보유한 ZKW 지분에 대한 자산손상평가도 함께 진행됐다. 평가 결과 ZKW 홀딩스의 장부가액이 9435억원에서 8782억원으로 줄면서 653억원을 손상차손으로 인식했다.
LG전자 연결실적에 포함된 ZKW그룹 지주사(ZKW Group GmbH)와 오스트리아 사업법인인 비젤버그(ZKW Lichtsysteme GmbH)은 지난해 63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2019년 714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던 것과는 상반된다. 같은 기간 매출액도 8302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7.9% 감소했다.
이에 대해 LG전자 측은 "현재 코로나19 및 반도체 수급 이슈 등으로 일시 시장 영향을 받고 있지만, 외부 불확실성이 해소되면 가시적 성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며 "현재 헤드램프 시장에서 전장 부품과의 연계 및 관련 기술의 중요도가 상승하고 있어 ZKW의 램프 광학 기술과 LG전자의 전장 분야 경쟁력이 서로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