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좋은 가게를 인수할 때 따라붙는 게 있죠. 권리금입니다. 대학가나 역세권처럼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는 바닥권리금, 인지도가 높고 단골손님이 끊이지 않는 곳은 영업권리금, 인테리어 등 집기에는 시설권리금이 붙습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주요 24개 도시에서 권리금이 있는 상가는 71%에 달했다고 합니다. 평균적인 권리금 수준은 약 4800만원으로 조사됐습니다.
보증금이나 임대료보다 권리금이 큰 경우도 있을 겁니다. 비단 상가만 그런 것도 아니죠. 포장마차에도, 우유배달을 할 때도, 심지어 어린이집을 사고 팔 때도 권리금이 붙습니다. 눈으로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무언가를 값을 매겨 사고 파는 게 흔한 일이 돼버린 현대사회를 봉이 김선달이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요? 원조는 대동강물을 판 자신이었다며 권리금을 달라고 하면 어쩌죠?
개인과 개인 사이에만 권리금이 있는 건 아닙니다. 기업 재무제표는 이를 '영업권'이라고 표현합니다. 가령 '봉이'라는 회사가 '선달'이라는 회사를 1000원에 인수했다고 합시다. 선달의 기업가치(순자산 공정가치 기준)는 실제로는 600원이구요. 봉이는 400원을 더 주고 샀습니다. 이 때의 400원이 영업권입니다. 인수합병 분야에선 '경영권 프리미엄'이라고도 하죠.
기업들은 이를 무형자산에 반영합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가지고 있으면 돈이 되는 자산으로 보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상표권이나 특허권, 개발비 등이 이런 무형자산에 해당합니다. 최근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LG그룹은 지난 8월 오스트리아의 차량용 헤드라이트 제조업체인 'ZKW'라는 회사를 인수했습니다. LG전자가 약 9800억원, ㈜LG가 약 4200억원, 총 1조4000억원의 현금을 주고 ZKW의 지분 100%를 사들였는데요. LG그룹 역사상 이렇게 큰 금액의 인수합병(M&A)은 처음입니다.
LG그룹은 이 회사를 살 때 과연 얼마의 웃돈(영업권)을 줬을까요? 혹시 바가지를 쓴 건 아닐까요?
지난 14일 공개된 LG전자의 3분기 보고서에 답이 나와있습니다. 주석 32번 '사업결합'을 보면 LG전자가 ZKW의 지분 70%를 인수하면서 어떻게 회계처리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표의 맨 위 '이전대가'는 LG전자가 지급한 인수대금입니다. '현금 및 현금성자산'에서 9791억원이 빠져나갔음을 의미합니다. (㈜LG가 지급한 인수금액 4200억원은 '비지배지분'으로 처리)
그 아래는 ZKW의 자산과 부채 현황입니다. 매출채권, 재고자산, 유형자산, 무형자산, 차입금 등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단부의 '식별가능한 순자산의 공정가치'가 바로 ZKW의 실제 기업가치입니다. 8567억원으로 기록돼있군요. ZKW의 자산(유동자산+비유동자산)에서 부채(유동부채+비유동부채)를 빼면 정확히 이 숫자가 나옵니다.
결국 LG전자와 ㈜LG는 ZKW의 실제가치(순자산 8567억원)보다 5423억원을 더 줬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표의 맨 아래에 나오는 영업권이 바로 그것입니다. 총 인수대금의 약 40%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LG전자는 이를 무형자산으로 반영했습니다.
비슷하게는 삼성전자가 지난해 3월 인수한 미국의 오디오 업체 '하만'의 사례도 들 수 있습니다. 하만은 오디오뿐 아니라 자동차 전자장비 분야에도 강점이 있는 회사입니다. 삼성전자는 약 9조2700억원을 들여 하만의 지분 100%를 사들였는데요. 국내기업의 해외기업 인수합병으로는 역대 최대규모의 거래였습니다.
삼성전자의 사업보고서를 보면 당시 하만의 실제 가치는 4조8200억원으로 나옵니다. 결국 하만을 인수하면서 웃돈으로 4조4500억원(9조2700억원-4조8200억원)을 줬다는 얘기입니다. 이 돈은 삼성전자의 무형자산으로 잡혀있습니다.
기업들이 웃돈을 주면서까지 인수합병을 하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겁니다. LG전자의 경우 자동차용 조명사업의 성장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인데요. ZKW는 헤드램프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는데다 BMW, 벤츠, 아우디, 포르쉐 등 프리미엄 완성차업체들을 고객사로 둔 매력적인 회사라는 게 LG전자의 설명입니다. 매출도 연평균 20%씩 늘었다고 합니다.
영업권은 상표권과 특허권 등 여느 무형자산과 달리 상각을 하지 않습니다. 가치의 감소분을 일정기간에 걸쳐 비용으로 털어내는 걸 상각이라고 하는데요. 상각을 하지 않다보니 웃돈을 많이 줬어도 기업의 당기손익에는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다만 매년 손상징후를 검사해 문제가 발생하면 비용으로 인식해야하는데요.
인수한 기업의 사업이 술술 풀리면 괜찮지만 그렇지 않으면 한꺼번에 대규모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은 염두에 둬야할 겁니다. 실제 롯데쇼핑은 중국 등 해외에서 인수한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2015년 6169억원, 2016년 1548억원, 2017년 3710억원을 매년 손상차손으로 인식했습니다. 이 때문에 지난해는 206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