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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톡톡]LG디스플레이, 작년 흑자 비결 '고무줄 개발비'

  • 2019.04.12(금) 17:04

개발비로 3728억 넘겨…1년새 80% 증가
한꺼번에 비용처리 대신 나눠서 손익 반영

재무제표를 보면 '개발비'라는 항목이 있습니다. 이름에 '비(費)'가 붙어 손익계산서에 나오는 비용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개발비는 자산, 그 중에서도 무형자산으로 분류합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 회사가 신차 연구개발에 1000억원을 썼다고 합시다.

소비자 트렌드를 조사하고 신차의 콘셉트를 잡는 등 연구단계에서 쓴 돈 600억원은 판매관리비나 제조경비 등의 명목으로 손익계산서에 한꺼번에 비용으로 처리합니다.

하지만 설계시작부터 금형제작 등 개발단계에 쓴 400억원은 개발비라는 이름으로 분류해 자산으로 잡아놓습니다. 개발비는 신차가 실제 출시된 시점부터 일정기간(내용연수) 나눠 비용(무형자산 상각비)으로 털어냅니다.
 
만약 개발비의 내용연수가 4년이라면 매해 100억원을 손익계산서에 무형자산 상각비로 처리하면 됩니다. 한꺼번에 400억원을 비용으로 처리하는 것보다 당기 손익에 미치는 영향이 덜합니다.

그래서 실적이 안좋은 곳일수록 개발비를 많이 잡아놓으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당장의 비용을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개발비라는 계정을 활용하는 겁니다. 이런 탓에 개발비 처리 문제가 종종 기업들의 분식회계 논란으로 번지기도 했습니다.

현재 웬만한 대기업들은 연구개발에 쓴 돈의 상당금액을 당기에 깔끔하게 비용으로 처리합니다. 비용을 늘리면 세금을 덜 내도 되는 효과도 있죠.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특허를 보유한 삼성전자는 지난해 18조원을 연구개발에 썼습니다. 이 가운데 개발비, 곧 무형자산으로 잡은 금액이 3000억원이 안됩니다. 전체 연구개발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6%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98.4%를 모두 당기에 비용으로 처리했습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더욱 적극적입니다. 무형자산에서 개발비 계정으로 잡아놓은 금액이 단 한푼도 없습니다. 연구개발에 쓴 돈 모두를 당기에 비용으로 처리한다는 얘기입니다. 지난해 삼성디스플레이의 판관비 내역을 보면 경상연구개발비로 2조1618억원을 반영한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삼성디스플레이 연결감사보고서 중 판매관리비 내역.

경쟁관계인 LG는 어떨까요.

LG디스플레이가 지난해 연구개발에 지출한 돈은 2조641억원입니다. 이 가운데 개발비로 분류한 금액이 3728억원입니다. 비중으로는 18.1%를 차지합니다. 한해 전 개발비 비중이 10.9%였음을 감안하면 꽤 큰 폭 증가했습니다.

뭔가 야심차게 추진하는 프로젝트가 있는 걸까요. LG디스플레이는 대형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분야에서 세계 1위 업체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대형 OLED 패널을 LG디스플레이가 공급합니다. 스마트폰에 들어갈 중소형 OLED 투자도 늘리고 있구요. 사업화가 가능한 수준까지 도달한 신기술이 여럿 있는 모양입니다.

LG디스플레이 사업보고서에 나와있는 연구개발비 내용. 개발비로 3728억원을 자산화했다.

그렇더라도 개발비만 유독 크게 늘어난 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듭니다. 지난해 LG디스플레이가 연구개발비 중 판관비와 제조경비를 통해 비용으로 처리한 금액은 1조6913억원입니다. 한해 전과 비교하면 126억원(0.8%) 줄었습니다. 반면 개발비로 잡은 금액은 1년전보다 1653억원 늘었습니다. 개발비 증가율이 79.6%에 달합니다.

이는 연구개발비를 당기에 비용(판관비나 제조경비)으로 처리하기보다는 자산(개발비)으로 넘겨 일정 기간 나눠서 털어내는 식으로 회계정책을 바꿨다는 걸 의미할 수 있습니다. 그럴만한 사정도 있습니다.

2017년 역대 최대인 2조4000억원대의 영업이익을 낸 LG디스플레이는 중국업체들의 공세로 패널가격이 급락하자 지난해는 영업이익이 1000억원 밑으로 쪼그라들었습니다. 상반기에 3000억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기록한 점을 감안하면 그나마 다행인 성적이라고 해야할까요.

만약 LG디스플레이가 2017년처럼 개발비의 비중을 10% 안팎으로 잡았다면 적자를 피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막대한 OLED 투자를 진행하며 외부차입을 늘리는 상황에서 적자라니 더욱 아찔했겠죠.

LG디스플레이 관계자는 "대형 및 중소형 올레드 신기술, 신제품 개발에 따른 것이며 회계적 편법을 쓴 것은 결코 아니다"라며 "작은 금액도 아니고 그런 방법을 썼을 때 감사승인이 나올 수도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당장의 급한 불은 껐지만 문제가 남습니다. 시기의 문제이지 개발비는 언젠가 비용으로 처리해야합니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해도 개발비에서 3027억원을 상각했습니다. 앞으론 더 많아질 겁니다.

LG전자는 LG디스플레이와 약간 달랐습니다. 전체 연구개발비 중 판관비와 제조경비로 당기에 비용으로 처리한 금액은 3조4727억원으로 전년도와 비슷했습니다. 그런데 개발비로 잡은 금액은 4874억원으로 10% 가량 줄었습니다. 이는 연구개발비를 개발비로 자산화할 필요를 덜 느꼈기 때문으로 볼 수 있습니다.

LG전자는 지난해 4분기 '어닝쇼크' 수준인 757억원 영업이익을 기록하고도 연간으로는 역대 최대의 실적을 냈는데요. 3분기까지 이미 여유있는 실적을 내고 있었기에 연말에 비용으로 털고 갈 건 털고 가자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흔히 연구개발이라고 하면 신제품이나 신기술을 만드는 것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기업 실적의 진폭을 조정하는 용도로도 활용될 수 있으니 꼼꼼히 살펴봐야 합니다. 연구개발비 회계처리만 봐도 해당 기업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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