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스마트폰 시장 변화가 심상치 않다. 미국 정부 제재로 중국 화웨이 기세가 꺾인 게 발단이다. 삼성전자와 미국 애플도 양강체제를 지키지 못했다. 샤오미를 비롯해 다른 중국 기업들이 무섭게 세를 키우고 있어서다. 14억 인구의 시장을 등에 업은 중국에서는 강력한 교체 선수가 잇달아 등장하고 있다. 애플은 물량으로도 삼성을 위협하고 있다. 삼성의 판매량 1위 수성도 위태롭다. 격변의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현황과 전망을 3회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
5G 1년 미루더니 '슈퍼사이클'
작년 여름께만 해도 스마트폰 업계에서 애플은 5G(5세대 이동통신) 대응이 너무 늦다는 핀잔을 들었다. 경쟁사인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 5G 상용화와 함께 첫 5G 스마트폰 '갤럭시S10 5G'를 내놓은 것은 지난 2019년 4월이었다. 첫 5G 스마트폰 출시 시기가 1년 넘게 벌어진 셈이다. 하지만 시장의 닦달에도 애플은 느긋했다.
심지어 부품 수급 문제까지 생겨 통상 매년 9월이었던 출시 일정도 한달여 늦췄다. 애플의 첫 5G 스마트폰인 '아이폰12' 시리즈는 작년 10월에야 공개됐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5G 스마트폰이 출시될 때까지 구매를 미뤄왔던 아이폰 사용자들의 대기 수요는 예상보다 많았다.
기대를 넘어선 흥행은 기록으로 나타났다. 시장조사기관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아이폰12 시리즈가 출시된 지난해 4분기 애플의 스마트폰 출하량은 8190만대로 전년 동기 대비 13% 증가했다. 점유율도 20.8%로 삼성전자(15.8%)를 크게 앞섰다. ▷관련기사: '섣부른 잔치?'…갤럭시S21이 짊어진 무게(2월2일)
5G 스마트폰만을 기준으로 보면 1등 애플이 만들어 낸 격차는 더 크게 두드러졌다. 올해 1분기 출하량 기준 점유율은 34%로 삼성(13%), 오포(13%), 비보(12%)를 각각 3배 가까이 앞섰다. 이는 애플이 5G 스마트폰을 작년 처음으로 선보였다는 것을 고려하면 더 놀라운 성적표다.
매출로는 그야말로 '넘사벽'이다. 올해 1분기 글로벌 5G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이 차지한 매출은 53%로 전체 시장의 절반 이상을 독식했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가 14%, 중국 오포와 비보가 각각 7%를 차지한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를 두고 애플이 2014년 4G LTE 전환 때 맞은 슈퍼사이클(대호황)과 비교하는 분석도 나온다. 아이폰12 시리즈의 누적판매량은 출시 7개월만인 올해 4월 1억대를 넘어섰는데, 이는 전작 아이폰 11 시리즈보다 2개월가량 앞선 기록이며, 4G로 처음 전환하면서 판매량 슈퍼사이클을 달성한 아이폰6 시리즈의 기록과 유사한 수준이다.
20%대 영업이익률의 비결
특히 아이폰12 시리즈는 판매량뿐만 아니라 매출 측면에서도 애플에 최고 전성기급 실적을 가져다주고 있다. 카운터포인트 리서치는 "아이폰의 평균판매단가(ASP)가 꾸준히 상승하는 만큼 아이폰12 시리즈의 높은 판매량은 매출 기록을 경신해 매출 슈퍼사이클로 이어졌다"고 짚었다.
판매대수보다도 매출이 더 큰 폭 늘어난 또 다른 이유는 최상위 모델 선호도가 가장 높았기 때문이다. 카운터포인트 리서치는 "아이폰12 시리즈의 최선호 모델은 아이폰12 프로 맥스"라며 "이는 아이폰12 시리즈가 출시 후 첫 7개월 동안 전작 대비 22%가량 높은 매출액을 기록할 수 있던 이유"라고 설명했다.
알려졌다시피 애플은 '고가'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지난 2018년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아이폰 가격이 예상보다 높다는 지적에 대해 "많은 혁신과 가치를 제공한다면 기꺼이 그것에 대한 대가를 지불할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늘 생각해왔다"며 "사람들이 지불할 수 있는 넓은 폭의 가격대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높은 가격을 유지하는 프리미엄 전략은 아이폰 평균판매단가 상승으로 이어지고, 이는 수익성 증대로 직결된다. 실제 애플은 제조업체이면서도 20~30%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판매대수 점유율 1위를 놓치지 않기 위해 물량에 집중하는 삼성전자와는 결이 다른 전략이다.
이런 특징은 아이폰12 시리즈에서도 도드라졌다. 애플은 지난해 4분기 아이폰 매출액은 655억9700만달러(75조7600억원)로 사상 최고 매출을 갈아치웠다. 아이폰12의 정식 출시일이 지난해 10월30일로, 실적이 11~12월 2개월 치만 반영됐을 뿐인데도 그랬다.
5G 밖으로 범위를 넓혀도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의 매출 점유율은 압도적이다. 카운터포인트 리서치에 따르면 올 1분기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은 매출액 기준 전체 시장의 42%를 차지하며 1위를 유지했다. 작년 같은 기간 34.4%에서 7.6%포인트 높인 것이다. 출하량 기준 1위인 삼성전자의 매출액 기준 점유율은 작년 1분기 20.2%에서 17.5%로 하락하며 2위에 머물렀다.
"아이폰13, 더 많이 팔릴 것"
애플은 오는 9월 공개 예정인 아이폰13으로 흥행의 여세를 몰 작정이다. 외신에 따르면 애플은 아이폰13에 사용될 A15 프로세서 1억개를 주문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는 당초 계획보다 500만개 이상 늘어난 주문량이다. 또 앞서 애플이 아이폰13의 초기 생산량을 전작 대비 20% 늘린 9000만대로 책정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이는 '5G 아이폰'에 대한 수요가 올해 신작에서는 더 강해질 것이라는 애플의 자신감에서 비롯됐다. 아이폰12로 시작된 교체 사이클이 이번 신작에도 반영돼 수요가 점차 늘어난다는 것이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백신 접종 확대에 따른 소비 심리 회복에 대한 기대감도 반영됐을 것으로 보인다.
고가 정책을 고수하던 애플이 콧대를 조금씩 낮추고 있다는 것도 아이폰 신작 흥행에 긍정적 요소다. 업계에서는 애플이 오는 9월 공개할 것으로 예상되는 아이폰13이 전작인 아이폰12와 비슷한 가격대로 책정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IT(전문매체) 씨넷은 "아이폰13 시리즈의 가격이 아이폰12 시리즈와 같은 699~1099 달러로 동결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나아가 내년에는 아이폰의 가격을 내릴 것이라는 추측까지 나오고 있다. 2007년 아이폰 출시 후 매년 가격을 올렸던 그간의 행보와는 다른 모습이다.
애플이 이런 태도 변화를 보인 것은 포화 상태의 스마트폰 시장에서 점유율을 늘릴 수 있는 '틈'이 보였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글로벌 시장에서 상위권을 다투던 화웨이가 미국 무역 제재로 시장에서 밀려났고, LG전자까지 모바일 사업을 접었다.
LG전자는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점유율 2%로 존재감이 미미하기는 했지만, 국내와 북미 지역에서는 10% 수준을 유지해왔다. 애플이 이례적으로 국내에서 LG폰에 대한 보상 프로그램을 진행한 후, 이를 북미 지역까지 확대한 이유다. 5G 강국이자 삼성의 안방인 국내 시장에 대한 관심도 높이고 있다. 최근에는 LG전자의 브랜드숍인 LG베스트샵에서 아이폰을 판매하는 사안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관련기사: [인사이드 스토리]LG-애플 협공…삼성전자 속내는(6월29일) [시리즈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