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에서 스마트폰을 담당하는 IM(IT·모바일) 부문에 성과급 잔치가 열렸다. 삼성전자의 캐시카우인 DS(반도체부품)부문보다도 높은 최고 한도가 책정됐다. 이익 목표에 비해 실적이 잘 나온 결과다.
하지만 실상을 뜯어보면 마냥 웃을 상황은 아니다. '불황형 흑자'에 가까워서다. 외형은 오히려 역성장했다. 삼성전자 IM부문의 매출액은 8년 만에 처음으로 100조원 밑으로 떨어졌다. 2010년대 초반 갤럭시S 시리즈로 스마트폰 시장 선두기업으로 자리잡은 이후 처음이다. 호실적은 마케팅 비용 등 지출을 줄여 만든 것이었다.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1위' 입지도 위태로워졌다. 아직까지 1위의 자존심은 지키고 있지만 2위로 치고 올라온 애플의 추격이 무섭다. 지난달 29일 한 달 앞당겨 내놓은 상반기 전략 스마트폰 '갤럭시S21'의 어깨가 더욱 더 무거워지는 이유다.
◇ 8년 만에 매출 100조 아래로
지난 26일 삼성전자가 공지한 사업부별 OPI(초과이익분배금)을 보면 IM부문과 TV사업을 담당하는 VD(영상디스플레이)부문에 최고 한도인 연봉의 50%가 책정됐다. 이에 비해 DS사업부문 중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메모리·시스템LSI·파운드리 사업부는 연봉의 47%를 OPI로 받게 됐다.
삼성전자에서 가장 많은 영업이익을 내는 반도체 사업부보다 스마트폰 부문이 더 많은 성과급을 받게 된 것은 OPI의 책정 기준이 절대적 영업이익이 아닌 '목표 대비 초과치'여서다. 삼성전자 내부에서는 스마트폰 사업이 작년 기대 이상의 성과를 냈다고 평가한 것이다.
실제 지난해 삼성전자 IM부문의 연간 영업이익은 11조4700억원으로 전년보다 23.7% 늘었다. 2017년 11조8300억원 이후 3년 만에 최대다. 영업이익률 역시 11.5%로 10%대를 넘지 못했던 재작년과 달리 더 실속을 챙겼다.
하지만 같은 기간 매출을 보면 99조5900억원으로 전년보다 7.2% 감소했다. 삼성전자 IM 부문 매출이 100조원 밑으로 떨어진 것은 2011년 이후 처음이다. 삼성전자는 갤럭시S 시리즈 흥행이 본격화된 2012년부터 8년동안 한 해도 빠짐없이 100조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해왔다. 관련기사☞ [갤럭시 실록]①삼성전자 먹여살리던 그 시절
삼성전자 스마트폰 사업의 매출 부진은 상반기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여파로 스마트폰 시장이 위축되면서 이미 예상됐다. 하반기에는 스마트폰 시장이 회복됐지만 애플의 5세대 이동통신(5G) 스마트폰 신작 '아이폰12'이 흥행하면서 영향을 크게 받았다.
애플의 아이폰12이 공개된 지난해 4분기 삼성전자 IM부문의 매출액은 22조3400억원, 영업이익 2조4200억원이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10.5%, 영업이익은 4% 줄었다. 직전인 작년 3분기와 비교하면 매출은 26.7%, 영업이익은 45.6% 급감한 실적이다. 다만 부품 표준화 등 원가구조 개선을 통해 영업이익률은 10.8%로 두 자릿수를 유지했다.
이에 비해 애플은 4분기 눈부신 실적을 거뒀다. 지난해 4분기 애플의 매출은 1114억달러(약 124조원), 영업이익은 335억달러(약 37조원)였다. 매출은 전년 대비 21%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31% 늘었다. 이는 삼성전자 전체의 작년 한 해 영업이익인 35조9900억원보다도 많다.
애플의 매출 성장을 견인한 것은 역시 아이폰12이었다. 4분기 아이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7% 늘어난 656억달러(약 73조원)로 역대 최대치였다. 작년 연간 아이폰 매출액은 1474억달러(약 165조원)에 달했다. 지난해 삼성전자 IM부문 매출(99조5900억원)의 1.7배 수준이다.
김형태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애플 실적에 대해 "계절적 성수기에 제품믹스 개선과 판매량 증가가 동반되면서 레버리지 효과가 극대화됐다"며 "특히 신제품 지연으로 부진했던 중국 매출이 지난 분기 교체 및 대기 수요 급증으로 전년 대비 57%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 4Q 판매량 애플에 1960만대 뒤져
이 같은 애플 아이폰12의 성공은 삼성전자에 끊임없이 위기감을 주고 있다. 삼성전자가 수위를 지키고 있는 '판매대수' 마저도 4분기에는 2019년에 이어 또다시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1위를 내줬다.
특히 삼성전자에게 작년 4분기 판매실적이 더 뼈아픈 것은 벌어진 격차 때문이다. 매년 아이폰을 9월 선보였던 애플은 4분기마다 도드라진 실적을 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 리서치 자료를 보면 2019년에도 4분기에는 애플이 왕좌를 가져갔지만 그 차이는 애플 7230만대, 삼성 7040만대로 200만대 수준이었다.
그러나 작년 4분기에는 애플이 삼성전자를 압도했다. 아이폰12 출시가 한 달가량 연기돼 4분기에 성과가 더욱 집중된 덕이다.
카운터포인트 리서치에 따르면 4분기 애플은 첫 5G 스마트폰인 아이폰12 흥행과 함께 아이폰11 시리즈까지 지속적인 판매 호조를 보이면서 점유율 21%로 1위를 차지했다. 출하량은 8190만대로 전년동기 대비 13%, 전 분기 대비 96%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삼성전자의 출하량은 6250만대로 전년동기 대비 22% 줄었다. 점유율도 16%로 하락하며 애플과의 격차가 5%포인트까지 커졌다. 출하량으로 따지면 1940만대 차이다.
신작이 없었던 4분기 가격 1000달러 이상의 프리미엄 시장에서 애플의 아이폰12 시리즈에 밀렸다는 것이 카운터포인트 리서치의 분석이다. 300달러 이하 중저가 시장에서는 A시리즈가 선전했지만, 여기서는 중국업체들과의 경쟁이 심화돼 힘을 쓰지 못했다.
그나마 연간 기준으로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1위 자리를 지켰다는 것이 삼성전자에게는 다행일 터다. 카운터포인트 리서치는 지난해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출하량 2억5570만대를 기록했다고 집계했다. 1위를 지켜냈지만 전년(2억9690만대)에 비하면 출하량이 14% 뒷걸음질 쳤다.
애플은 연간 기준으로도 미국 무역제재 여파로 주춤한 중국 화웨이(華爲)를 제치고 삼성전자의 뒤를 무섭게 쫓았다. 지난해 애플의 스마트폰 출하량은 2억110만대로 전년보다 3% 성장했다. 시장 점유율로 보면 삼성전자 19%, 애플 15%로 격차가 7%포인트에서 4%포인트까지 좁혀졌다.
◇ 어깨 무거워진 '갤S21'
삼성전자가 최근 선보인 '갤럭시S21'의 역할이 중요한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삼성전자는 아이폰 견제를 위해 출시 시점도 한 달가량 앞당겼다. 신작 출시 효과로 지난해 4분기에 빼앗겼던 점유율을 올해 1분기에 다시 찾아오겠다는 심산이다. 관련기사☞ 가격 낮춘 '갤럭시S21'…아이폰12 잡을까
아직까지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지난 29일 삼성전자는 갤럭시S21 시리즈를 한국을 포함해 미국과 캐나다, 영국·프랑스 등 유럽 전역, 싱가포르·태국 등 동남아 전역, 인도 등 전 세계 약 60개국에 출시했다. 이달 말까지 약 130개국으로 출시국을 확대할 계획이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사전개통 첫날 20만대 넘게 팔린 것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삼성전자가 신작 출시 효과를 제대로 누릴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아이폰12의 기세가 아직도 꺾일 기미가 없어서다. 최근 이동통신업계에 따르면 아이폰12는 출시 3개월 만에 국내에서만 150만대가량 판매됐다. 월 평균 50만대를 팔아치운 셈이다. 출시 후 1년이 지난 갤럭시S20 시리즈의 국내 판매량이 200만대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기록적인 수준이다. 심지어 아이폰12 시리즈의 최상급 모델인 아이폰12 프로 맥스 모델은 여전히 구하기 어려운 정도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삼성전자는 갤럭시S21의 출고가까지 낮췄다. 플래그십 스마트폰 제품군 중 처음으로 100만원이 채 되지 않는 가격이다. 이밖에도 자율 체험 마케팅인 갤럭시 투고 서비스'를 확대하는 등 체험을 통한 판매 확대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관련기사☞ [보니하니]갤럭시S21①플래그십에서 중저가폰 향기가
삼성전자는 갤럭시S21의 판매 극대화와 함께 올 한해 '갤럭시 Z 폴드', '갤럭시 Z 플립' 등 폴더블폰 카데고리 대중화로도 매출을 끌어올릴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올해 여름께 폴더블 신제품이 출시될 것을 예상하고 있다.
최근 진행된 삼성전자 2020년 4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 콜(전화회의)에서 김성구 무선사업부 상무는 "올해 Z 폴드·플립 라인업을 강화해 대중화할 계획"이라며 "폴드 제품군은 대화면과 엔터테인먼트, 생산성을 특화해 프리미엄 포지션을 강화하는 한편, 플립 제품군은 디자인 차별화와 가격 경쟁력을 내세워 밀레니얼 세대와 여성 고객의 니즈도 충족시킬 것"이라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