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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 하나 더 필요"…'800조' 호남 반도체의 숙제

  • 2026.07.16(목) 17:57

메가프로젝트에 348TWh 추가 전력…작년 발전량 58%
호남 자급률 135%도 안심 못해…"팹 들어서면 73%"
대만·일본·미국도 인프라 먼저…"호남과 출발선 달라"
"메모리보다 광반도체"…광주형 특화 전략 제안도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이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이재명 정부가 발표한 호남 반도체의 허구와 실상’ 정책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강민경 기자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800조원 규모의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를 둘러싸고 "투자보다 전력이 먼저"라는 지적이 정치권과 학계에서 잇따랐다. 반도체 공장과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를 모두 가동하려면 지난해 국내 총발전량의 60%에 가까운 전력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분석까지 나오면서 전력·용수·인력 등 산업 인프라부터 재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에너지 정책과 관련 법·제도까지 함께 손질하지 않으면 대규모 투자 계획도 현실화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16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이재명 정부가 발표한 호남 반도체의 허구와 실상-인(人)·수(水)·전(電) 관점에서 본 정책 실현 가능성' 토론회에서는 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계획의 실현 가능성을 둘러싼 논의가 이어졌다.

정부는 광주 군공항 이전 부지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각각 메모리 반도체 공장(팹) 2기씩, 총 4기를 건설하고 약 800조원을 투자해 용인과 함께 국내 양대 메모리 반도체 생산거점으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상태다.

토론회를 주최한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은 "반도체 산업은 결국 돈보다 물·전력·인력의 싸움"이라며 "왜 그 지역이냐는 정치적 논쟁보다 실제 반도체 공장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여건이 갖춰졌는지를 먼저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대표이사 사장 출신인 고 의원은 정부가 서남권 입지의 강점으로 '재생에너지'를 내세웠다가 최근에는 '원전 필요성'을 언급하는 등 에너지 정책의 일관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또 "반도체 공장은 하루 수십만톤의 물이 필요하고 팹 4기가 들어서면 1만명 이상의 연구·생산 인력이 상주한다"며 "정주 여건과 기반시설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노동 규제도 과제로 꼽았다. 그는 "주 52시간제 등 기존 노동 규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글로벌 반도체 속도전에 대응하기는 쉽지 않다"며 "제도적 지원도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호남 전력의 착시

정용훈 한국과학기술원(KAIST) 원자력·양자공학과 교수가 16일 정책토론회에서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의 전력 인프라 확보 방안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사진=강민경 기자

토론회에서는 전력 공급 문제가 가장 큰 쟁점으로 떠올랐다. 발제를 맡은 정용훈 한국과학기술원(KAIST) 원자력·양자공학과 교수는 용인과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전국 AI 데이터센터 구축까지 포함하면 약 39.7GW, 연간 348테라와트시(TWh)의 전력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추산했다. 이는 지난해 국내 총발전량(595.6TWh)의 58.4%에 해당하는 규모다.

정 교수는 "반도체와 AI 데이터센터 등 메가 프로젝트를 추진하려면 사실상 한국전력을 하나 새로 만드는 수준의 전력 인프라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원전은 지금 착공해도 2032~2035년에야 준공이 가능하고 LNG 발전도 핵심 설비인 가스터빈 공급 부족으로 단기간 확대가 어렵다"며 "재생에너지도 저장장치와 송전망이 갖춰지지 않으면 24시간 가동되는 반도체 공장의 안정적인 전력원이 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호남의 높은 전력 자급률 역시 반도체 클러스터의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담보하는 지표는 아니라고 진단했다. 현재 전라권은 발전량이 소비량보다 많아 전력 자급률이 134.9%에 이르지만, 반도체 공장처럼 대규모 전력을 소비하는 시설이 들어서면 수급 구조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전력 자급률은 생산량과 소비량의 비율일 뿐 절대적인 공급 여력을 의미하지 않는다"며 "약 6.3GW 규모의 신규 반도체 팹이 들어설 경우 전라권 자급률은 72.7% 수준까지 떨어질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다른 지역으로 전력을 보내는 순수출 지역이지만 대규모 반도체 공장이 들어서는 순간 수급 구조가 완전히 바뀔 수 있다"며 "현재 자급률만 보고 전력이 충분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덧붙였다.

반도체 입지는 정치가 아니다

삼성 및 SK 메가프로젝트 총 투자 규모./그래픽=비즈워치

정 교수는 해외에서 공장 건설 속도가 빨랐던 사례를 국내 상황과 단순 비교해서는 안 된다고도 지적했다. 대만과 일본, 미국 모두 기존 산업 생태계와 전력·용수 등 기반 인프라를 충분히 갖춘 상태에서 반도체 공장을 유치하거나 확장했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

대만은 40여년간 조성한 과학단지를 중심으로 신주·중부·남부 클러스터를 단계적으로 확장하며 전력·용수·인력을 함께 확보했다. 일본 구마모토 역시 소니·도요타·덴소 등 기존 산업 기반 위에 TSMC 공장을 유치하면서 단기간에 공장을 건설할 수 있었다. 미국 애리조나도 인텔과 마이크론 등 기존 반도체 산업과 숙련 인력이 집적된 지역이었고, 인근에는 약 4GW 규모의 발전설비까지 갖춰져 있었다.

정 교수는 "3가지 사례 모두 기존 인프라 위에 공장을 올린 것이지 공장부터 정한 뒤 인프라를 구축한 사례는 아니다"며 "특히 애리조나 프로젝트는 용인 클러스터의 20분의 1 수준에 불과한데 작은 프로젝트가 성공했다고 해서 큰 사업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아울러 반도체 클러스터 입지는 정치적 선택이 아니라 산업이 요구하는 객관적인 조건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도체 산업의 필수 조건으로 △24시간 공급 가능한 기저전원 △안정적인 전력망과 용수 △폐수 처리와 물 재활용 시스템 △10만명 이상을 뒷받침할 산업 생태계와 인력 공급망 등 '4대 게이트'를 제시하며 "네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반도체 클러스터가 지속 가능하게 운영될 수 있다"고 말했다.

탈원전 반성부터

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술적 문제보다 정책과 제도 개선이 더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위원회 위원과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 민관합동워킹그룹 원전분과장 등을 지낸 그는 "최근 정부 내부에서도 에너지 정책 기조가 달라지는 분위기는 감지된다"면서도 "정책을 전환하려면 과거 탈원전·탈석탄 정책에 대한 반성과 평가가 먼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현재 정부 계획이 재생에너지와 원전 중심으로 전력을 공급하는 구조지만, 두 발전원 모두 출력 조절이 쉽지 않은 만큼 반도체 산업처럼 전력 수요 변화가 큰 산업에는 LNG 발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다만 현행 탄소중립기본법 아래에서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맞추기 위해 LNG와 석탄발전 비중을 줄일 수밖에 없어 현실적인 전력 공급 계획을 세우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그는 "탄소중립기본법의 개정이나 제도 보완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가스터빈도 지금 주문하면 2030년 이후에야 공급받을 수 있는 상황인 만큼 안정적인 전력 확보 방안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전 계속운전 제도 개선도 과제로 제시했다. 박 교수는 "국내는 계속운전 허가 심사가 길어지면서 설계수명이 끝난 원전이 수년간 멈추는 사례가 반복된다"며 "원전 1기만 가동을 멈춰도 1~1.4GW의 전력 공급 능력이 사라지는 만큼 반도체 클러스터 전력 공급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은 허가 심사가 길어질 경우 기존 허가를 연장해 발전 공백을 최소화하고 있다"며 "한국도 미국처럼 계속운전 제도를 개선해 안정적인 전력 공급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규모 메모리 생산기지 대신 '지역 특화 전략'이 현실적이라는 제안도 나왔다. 이종호 전 과기정통부 장관(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은 "광주는 이미 25년간 축적된 광산업 기반을 갖추고 있다"며 "메모리 팹 4기를 새로 짓기보다 광반도체와 화합물반도체, 첨단 패키징을 중심으로 특화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 더 빠르고 효과적"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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