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은 빛을 파장별로 가르거나 내부 전반사를 통해 거울 대신 빛의 진행 방향을 바꾸는 삼각기둥 모양 광학 장치입니다. 햇빛이 프리즘을 통과하면 무지개 색깔의 여러 빛으로 갈라지고, 이를 다시 모으면 햇빛처럼 다시 백색광이 되죠.
삼성전자는 작년 6월 생활가전사업의 새로운 비전을 '프로젝트 프리즘(Project PRISM)'이라고 이름 붙여 내걸었는데요. 그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프리즘이 단조로운 백색의 광선을 갖가지 색상으로 투영하는 것처럼, 가전제품도 소비자들의 다양한 생활방식과 취향을 포용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겠다는 의지가 담겼죠.
프로젝트 프리즘을 통해 삼성전자는 가전업계의 맞춤형 가전 시대를 본격화했는데요. 이는 단순히 개인화된 맞춤형 제품을 선보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제품을 '제조'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창조'하는 개념으로의 변화를 꾀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를 위해 다른 업종과의 광범위한 협업도 활발히 하고, 다양한 품목으로 프로젝트를 확장할 계획이죠.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삼성전자는 두 개의 냉장고와 세탁기·건조기 등 총 3가지 제품을 공개했습니다. 제품을 공개할 때마다 프로젝트 프리즘의 '개인화·맞춤형' 특징이 점점 심층적으로 반영되는 것이 눈에 보였습니다.
◇당신이 말하는 대로…'비스포크'
가장 먼저 선보인 '비스포크(BESPOKE) 냉장고' 먼저 살펴볼까요. 비스포크란 '되다(BE)'와 '말하다(SPEAK)'라는 단어의 결합으로 탄생한 용어입니다. 즉 "말하는 대로 된다"는 것인데요. 소비자들의 각기 다른 취향에 따라 원하는 대로 제품을 구성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죠.
비스포크 냉장고는 소비자가 필요한 제품을 가족의 수, 식습관, 생활방식, 주방 형태 등에 따라 최적의 모듈로 조합할 수 있도록 한 게 특징입니다. 1도어에서 4도어까지 총 8개 타입의 모델을 선택할 수 있죠. 이 모델들은 주방가구에 꼭 맞는 사이즈로 제작돼 빌트인 가전처럼 주방 인테리어에 스며듭니다.
2도어 제품을 사용하던 1인 가구가 결혼하면서 1도어를 추가로 구매하는 것도 가능하죠. 예전 같으면 가족 수에 맞춰 냉장고를 새로 구매했어야 했을 겁니다.
내가 원하는 색상과 재질을 골라 나만의 디자인을 구현할 수 있다는 것도 비스포크 냉장고만의 특징입니다. 무채색으로 획일화됐던 기존 일반 냉장고 디자인의 틀을 깨버린 것이었죠. 이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은 원하는 소재와 색상의 도어 패널을 다음에 교체할 수도 있어 이사하더라도 집안 분위기와 냉장고 디자인을 조화롭게 꾸밀 수 있게 됐습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삼성전자는 지난해 6월 비스포크 냉장고를 출시한 이후 올해 식기세척기와 직화오븐, 전자레인지, 인덕션에도 클린 그레이, 클린 핑크, 클린 민트 등 비스포크 색상을 적용했습니다. 주방가전 풀 라인업을 갖춰 인테리어의 통일감을 높일 수 있도록 한 것이죠.
◇알아서 척척, 똑똑해진 세탁기
두 번째 프로젝트 프리즘의 바통은 세탁기와 건조기가 건네받았습니다. 비스포크 냉장고에서 강조했던 '디자인'에서 한층 나아가 '인공지능(AI)' 기능을 더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었죠.
올해 출시한 '그랑데 AI는 사용자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공지능 세탁기와 건조기입니다. 스마트기기 자체에서 정보수집과 연산이 가능한 '온 디바이스(On-device) AI'에 '클라우드 AI'를 결합해 고객의 사용 습관과 패턴을 스스로 학습한 뒤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가능하죠.
인공지능 가전답게 사용자가 자주 사용하는 코스와 옵션을 기억해 그 순서대로 조작 패널에 보여주는 'AI 습관기억' 기능이나 빨래 무게를 감지해 세제를 자동 투입하고 오염 정도를 감지해 헹굼 횟수를 조절해주는 'AI 맞춤세탁' 기능도 새롭게 적용됐습니다. 덕분에 소비자들은 사용할 때마다 일일이 코스를 설정하는 번거로움도 없고, 빨래 양에 적합한 세제 양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죠.
여기 더해 세탁기 조작 패널에서 건조기까지 조작할 수 있는 '올인원 컨트롤' 기능도 더해졌는데요. AI 코스 연동 기능을 적용해 특정 세탁코스를 선택하면 건조코스도 자동으로 설정됩니다. 세탁기에서 건조기 작동이 가능해 직렬 설치한 건조기 컨트롤 패널이 보이지 않아도 작동이 가능하죠.
물론 디자인은 기본입니다. 그랑데 AI는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해 기존 제품보다 깊이를 줄이고 벽면과의 거리를 좁혀 공간을 절약했습니다. 또 기존 블랙캐비어, 이녹스, 화이트 외에도 아이보리 계열의 '그레이지' 색상도 도입했습니다.
◇디자인에 내부 구성까지 마음대로
이재승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장(부사장)은 "비스포크 냉장고가 디자인과 감성의 혁신, 그랑데 AI 건조기·세탁기는 인공지능 기반으로 한 소비자 경험의 혁신이었다"고 소개합니다. 최신작 냉장고인 '뉴 셰프컬렉션'은 여기서 더 나아갑니다. 더욱 진화한 개인 맞춤형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비스포크 개념을 외부에서 내부까지 확장한 것이죠.
셰프컬렉션은 지난 2014년 출시한 프리미엄 냉장고 브랜드입니다. 삼성전자는 여기에 프로젝트 프리즘의 특징을 더해 새로운 제품을 탄생시켰는데요.
뉴 셰프컬렉션은 도어 패널뿐 아니라 내부 수납구조까지 보관식품과 생활형태에 따라 맞춤형으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선보인 비스포크 냉장고의 경우 소비자가 도어 패널 등 디자인만 선택이 가능했다면, 이제는 냉장고 내부 공간까지 마음대로 조합할 수 있게 된 것이죠.
뉴 셰프컬렉션은 도어 패널과 엣지 프레임, 비스포크 수납존, 정수기 등 편의 기능 구성에 따라 총 150개 조합까지 만들어집니다. 냉장실 하단에 새로 도입된 '비스포크 수납존'은 이른바 '전문 식품 보관 공간'입니다. 사용자에 따라 보관 식품이나 방식에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착안한 것인데요. 만약 사용자가 육류나 생선을 주로 먹는다면 '미트 앤 피쉬' 존으로, 과일이나 채소를 좋아한다면 '베지 앤 프룻' 존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번 신제품에는 프로젝트 프리즘 비전 공표 당시 삼성전자가 언급했던 전혀 다른 업종과의 협업도 시도됐습니다. 뉴 셰프컬렉션은 소비자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5가지 도어 패널을 선보이는데요. 이는 모두 이탈리아 금속가공 전문업체인 '데카스텔리(De Castelli)'와의 협업을 통해 탄생했습니다.
데카스텔리는 자동차 브랜드 '마세라티', 가구 브랜드 '보피' 등 업계 최고 기업들과 협업을 진행하는 것으로 유명한 기업인데요. 글로벌 가전 업체와 협업해 냉장고와 같은 대형 가전제품에 데카스텔리의 작품을 적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그중에서도 '마레 블루'의 경우 이탈리아 '물의 도시'라 불리는 베니스에서 영감을 받은 제품인데요. 데카스텔리의 장인들이 수작업으로 패널을 만들기 때문에 같은 제품이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대량생산도 불가능하니 한정된 수량만 들어오기 때문에 그야말로 '한정판' 입니다.
최중열 생활가전사업부 디자인팀장은 "마레블루는 4대째 가업을 이어온 데카스텔리의 장인들이 약 3주에 걸쳐 메탈에 광택을 만드는 핸드메이드 브러싱 과정 등을 거쳐 세상에 하나뿐인 패널을 탄생시킨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타깃은 '밀레니얼'
프로젝트 프리즘 전략은 실적 측면에서도 톡톡한 성과를 더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의 생활가전·TV 등을 담당하는 소비자가전(CE) 부문 전체 매출을 보면 프로젝트 프리즘이 시작된 이후인 작년 3분기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7.4%, 4분기에는 7.8%의 증가율을 보였습니다. 특히 성수기인 4분기 영업이익은 8100억원으로 2016년 1분기(1조원) 이후 약 4년 만에 가장 많았죠.
올해 들어서는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영향을 받아 실적이 신통치 않긴 합니다. 하지만 삼성전자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냉장고 국내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약 30% 증가했는데요. 삼성전자는 이를 '비스포크'의 활약으로 꼽습니다. 비스포크가 삼성 냉장고 판매의 60%를 차지하는 등 꾸준히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는 것이죠.
최근 삼성전자가 '이제는 가전을 나답게'라는 슬로건을 가전제품 마케팅 전반에 사용키로 한 것도 프로젝트 프리즘의 일환입니다. 프로젝트 프리즘이 추구하는 가전 사업의 방향을 전달하는 한편, 소비자 중심으로 재구성된 삼성 가전의 아이덴티티를 소비자들에게 전달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겠죠.
삼성전자의 프로젝트 프리즘 시작에는 '밀레니얼 세대'가 바탕이 돼 있습니다. 1980년부터 1994년 사이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는 자신만의 취향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이들이 개인 맞춤형 제품을 선호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겠죠.
이강협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 전무는 "자신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제품 구매를 결정하는 소비자들이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며 "차별화된 기술과 디자인으로 소비자들이 가전 제품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생활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지속 혁신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개인화된 밀레니얼 세대의 소비욕구에 대해 '취존(취향존중)'을 넘어, '취저(취향저격)'까지 나서겠다는 말로 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