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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진료 기록 공개?"…'의료 데이터' 개방 명과 암

  • 2021.09.03(금) 11:17

정부, 공공 의료 데이터 개방 속도
데이터 소유권·재식별화 등 논의 필요

/그래픽=비즈니스워치

'의료 데이터' 공유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정부가 추진 중인 '마이데이터' 시대 본격 개막을 앞두고 있어서다. 여기에 올해부터는 디지털 뉴딜 '데이터 댐' 구축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의료 데이터를 누구든지 이용할 수 있게 된다.

덕분에 그동안 의료 데이터 접근이 어려웠던 바이오벤처도 실제 질병진단 데이터를 연구개발(R&D)에 활용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다만, 개인정보보호나 데이터 주권 등의 문제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제43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에서 "올해부터 고품질 의료 데이터를 단계적으로 민간 개방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7월 범정부 차원에서 발표한 한국판 뉴딜 종합 계획의 일환이다.

우선 서울대병원과 아산병원 등 국내 25개 병원을 시작으로 엑스레이(X-ray)와 컴퓨터 단층촬영(CT) 등 29종류의 의료 데이터를 기업에 무료로 공개한다. 공개된 의료 데이터는 환자의 신상정보를 가리는 '비식별화' 작업을 거친다. 정부는 내년에 적외선·조직 데이터 등 25종류를 추가해 오는 2023년까지 환자의 병원 진료 전주기 데이터를 개방하겠다는 계획이다.

앞서 보건복지부도 지난 4월 보건의료 데이터 표준화 로드맵을 발표하며 '보건의료 빅데이터 플랫폼 구축'을 강조했다. 보건의료 분야의 다양한 데이터를 연계하고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 활용 생태계를 조성한다는 구상이다. 유전자, 개인 건강 데이터 등을 통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표준화 방안을 마련하는 게 골자다.

정부가 의료 데이터 활용에 속도를 내는 이유는 의료 데이터를 활용한 연구의 잠재 가치가 크기 때문이다. 의료 데이터는 의료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의료 자원을 분배하는 데 큰 역할을 해왔다. 현재는 이를 넘어 새로운 치료법과 의료기기, 신약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의료 데이터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

특히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전 세계적으로 의료 데이터 공유 체계의 중요성이 더욱 대두됐다. '국제 인플루엔자 정보공유기구(GISAID)'가 대표적이다. GISAID는 바이러스의 염기서열 정보를 비롯해 의료 정보와 역학 정보를 모은 데이터베이스를 일반 대중에 공개했다. 이를 기반으로 급속도로 퍼진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를 추적, 글로벌 차원에서 대응을 할 수 있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실 국내 제약바이오 업체들은 오래전부터 인공지능(AI) 등 의료 빅데이터를 신약 R&D에 활용해왔다. HK이노엔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빅데이터를 활용해 신규 복합제 발굴, 처방 패턴 등을 분석해 위식도역류질환 치료제 '케이캡(성분명 테고프라잔)' 개발에 성공했다. JW중외제약은 2010년대부터 생물정보학 기반 빅데이터 플랫폼 클로버(CLOVER)와 주얼리(JWERLY)를 구축, 혁신 신약 후보물질 발굴에 이를 활용해왔다.

하지만 바이오벤처의 경우 대형 제약바이오 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의료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이 어려웠다. 비용이 많이 들 뿐만 아니라 개인정보보호 등 규제가 얽혀 있어 데이터 접근이 쉽지 않았다. 따라서 정부의 의료 데이터망 구축 사업이 활성화되면 국내 바이오벤처의 R&D가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수많은 의료 데이터가 공개되면 이를 진단기기나 신약 후보물질 개발, 임상 디자인 설계 등에 활용할 수 있다.

다만 공공 데이터의 소유권이나 개인정보 유출 등의 문제는 해결해야 할 과제다. 특히 데이터 소유권에 대한 논란은 오래전부터 지속해왔던 문제다. 기업들이 국민의 의료 데이터를 무료로 제공받아 개발한 제품을 국민들이 다시 비용을 지불하는 게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일부 소비자 단체에서는 "개인 정보의 주체는 의료 데이터를 제공한 국민"이라며 "의료 데이터를 제공한 주체에 수익을 배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데이터를 활용하는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공유하는 의료 데이터가 많아질수록 국민에게 돌아가는 혜택도 커질 것이라는 입장이다. 새로운 의료 서비스가 나오고 의료 산업이 발전할 수 있어서다. 국가적 차원의 의료 데이터망을 구축해 누구나 접근이 가능해지면 환자의 의료 선택권도 늘어난다는 설명이다.

데이터 유출 등의 피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의료 정보는 개인 정보보다 더 내밀한 정보에 해당한다. 의료 데이터에는 개인의 유전정보나 질병명, 치료 기록이나 생활습관 등 많은 건강 정보가 들어있다. 성폭력 피해 같은 민감한 정보도 포함된 만큼 데이터가 유출됐을경우 사생활 침해 등의 피해가 커질 수 있다.

빅데이터는 비식별화를 거친 데이터라도 흩어진 정보를 조합해 개인을 식별하는 '재식별화'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특히 개방된 정보가 많지 않은 난치성 질병 등은 재식별화 위험성이 더 높다.

의료 데이터 공유와 활용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정부는 국내 공공 및 민간 의료기관의 의료 데이터의 가치가 2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한다. 시장조사업체 글로벌 마켓 인사이트에 따르면 전 세계 헬스케어 분석 시장은 연평균 11.4%씩 성장해 2027년에는 235억달러(약 27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의료 데이터 공개 이전에 제도 마련과 활용 주체 간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 제약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의료 데이터의 활용으로 정밀 의료 시대가 열리고 그 혜택은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며 "데이터의 안전한 활용과 이해당사자 간 균형을 위해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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