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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인슐린 못사 비명' 주객전도 된 의약품유통규칙 개정

  • 2022.08.09(화) 07:25

독감백신 상온 노출 문제로 '생물학적 제제 규칙' 개정
유통업체 고정비용 문제…'인슐린' 수급 지연 및 포기
제1형 당뇨병에 필수적인 '인슐린'의 공급대안 필요

/그래픽=비즈니스워치

지난 2020년 독감 백신이 유통 과정에서 상온에 노출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생물학적 제제 등 의약품의 보관 및 수송 관련 규정을 강화하는 내용으로 발 빠르게 관련 법안을 손봤다. 관련 법 개정으로 백신 등 생물학적 제제 의약품의 유통 과정에서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당뇨병 치료제로 사용하는 인슐린에도 해당 규정이 적용되면서 인슐린 수급에 문제가 발생하는 등 당뇨병 환자들의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 

한국1형당뇨병환우회는 지난 8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자동온도기록장치 설치 의무화로 촉발된 인슐린 수급 문제를 즉시 해결하라"고 성명을 냈다. 이에 따르면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지난해 7월 '생물학적 제재 등의 제조·판매관리 규칙' 일부를 개정하면서 의약품유통업체들의 납품이 지연되거나 포기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약국에 인슐린이 제때 공급되지 않아 당뇨병 환자들이 인슐린을 구하지 못하는 사태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래픽=김용민 기자 kym5380@

지난해 개정된 법안의 주요 내용은 크게 보관과 수송 부문으로 나뉜다. 보관 부문에서는 생물학적 제제 등의 판매자가 보관시설에 설치된 자동온도기록장치를 검정‧교정하고 2년간 기록을 보관하도록 했다. 보관 및 운송 과정에서 적정 온도 유지를 어길 경우 1차 적발 시 15일, 2차 적발 시 1개월, 3차 적발 시 3개월, 4차 적발 시 6개월의 업무정지 처분을 받는다. 또 품질관리·온도·검교정 기록을 작성·보관하지 않을 경우 1,2,3,4차 적발 시 각각 7일, 15일, 1개월, 3개월의 행정처분에 처한다.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수송 관련 개정사항이다. 수송 부문은 수송설비 내부에 자동온도기록장치를 설치하고 검·교정해야 하며 수송용기 외부에 온도계를 설치하도록 했다.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적발 시 1차는 15일, 2차는 1개월, 3차와 4차는 각각 3개월과 6개월의 업무정지 처분을 받을 수 있다. 

업계에 따르면 자동온도기록장치의 설치 의무화로 드는 비용은 천차만별이다. 기존 수송차량에 장비만 새로 설치하면 되는 곳도 있지만 수송차량을 전면 교체해야 하는 곳도 있다. 특히  검‧교정 등에 들어가는 제반 비용이 수백에서 수천만원에 달한다. 의약품유통업체 1위인 지오영의 경우 영업이익이 지난해 559억원에 달하지만 100억원 미만의 영세한 곳이 대부분이다. 

단순히 영업이익과 비교했을 때 자동온도기록장치 비용이 차지하는 부분은 크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의약품유통업체들의 주력 유통 품목들은 합성의약품이 많다. 여기에 독감백신의 경우 예방접종이 이뤄지는 가을 한철 장사인데다 유통마진은 2~6% 수준이다. 결국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고정비용을 감당하면 마진은 더욱 낮아진다.

/그래픽=유상연 기자 prtsy201@

당초 식약처는 생물학적제제 관리법 개정으로 인슐린 등 일부 제제의 유통 대란 문제가 불거지자 온도기록을 거짓으로 작성·보관하거나 온도 조작장치를 설치한 경우를 제외한 나머지 사항에 대해서는 지난 7월 17일까지 계도기간을 부여했다. 그러나 비용적인 문제로 아직 전체 수송차량에 자동온도기록장치를 설치하지 못한 곳들이 있어 약국 수급이 지연되는 사례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제1형 당뇨병의 경우 상황이 급박하다. 제2형이 경우 인슐린을 생성하는 능력이 떨어져 약물이나 운동 등을 통해서도 관리가 가능하다. 반면 췌장에서 인슐린이 아예 만들어지지 않는 제1형 당뇨병은 치료에 반드시 인슐린을 사용한다. 그래서 제1형 당뇨병은 일명 '인슐린 의존성 당뇨병'이라고도 불린다. 한국1형당뇨병환우회는 "제1형 당뇨인들에게 인슐린은 공기와도 같은 의약품"이라며 "인슐린을 제때 주사하지 못하면 일상생활이 어렵다"고 호소했다. 

생물학적 제제 의약품은 온도에 민감해 최적의 상태로 유지해 유통하는 '콜드체인'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의약품을 구입하지 못해 사지에 몰린 국민들도 있다. 당뇨병, 특히 제1형 당뇨병은 인슐린을 제때 공급받지 못하면 합병증에 이어 최악의 경우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는 무서운 병이다. 전 국민들에게 안전한 의약품이 공급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수 환자들의 생명과 삶의 질을 위해서라도 인슐린과 같이 수급에 문제가 있는 생물학적 제제 의약품의 공급체계에 대한 대안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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