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량신약은 복제의약품(제네릭)과 함께 국내 제약산업을 이끌어온 주역입니다. 개량신약은 오리지널 의약품과 성분‧약효가 모두 동일한 제네릭과 달리, 제형이나 용법‧용량 등을 변경 및 개선한 의약품을 말하는데요. 제네릭과 다르게 기술력을 요하는 만큼 연구개발(R&D) 투자가 필요합니다.
그동안 개량신약을 두고 변형 제네릭에 불과하다는 비판적인 시선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계에서 국산 개량신약이 주목받으면서 재평가되는 분위기입니다. 한미약품이 개발한 이상지질혈증 치료 복합제 ‘로수젯'(성분명 로수바스타틴+에제티미브)과 단일 성분인 스타틴(성분명 로수바스타틴) 비교 임상 논문이 최근 세계 최고 의학학술지 ‘란셋’에 게재됐는데요.
란셋에 국내 약물의 임상 결과가 게재된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어서 업계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과거 이상지질혈증 치료제 시장은 스타틴 단일제 중심이었지만 한미약품이 2015년 최초로 로수바스타틴과 에제티미브 복합 개량신약 시장의 포문을 열면서 유한양행과 대웅제약도 각각 로수젯과 같은 성분의 개량신약 '로수바미브', '크레젯'을 출시했죠.
란셋에 게재된 논문은 로수바스타틴(10mg)과 에제티미브(10mg)를 복합한 로수젯과 스타틴 고용량인 로수바스타틴20mg을 비교한 임상입니다. 이에 따르면 로수젯이 고용량의 스타틴 단일제 보다 저밀도지질단백질-콜레스테롤(LDL-C)을 효과적으로 낮추는 동시에 합병증 등 부작용이 적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연구 총 책임을 맡은 장양수 분당차병원 교수는 "처방하던 고용량 스타틴 요법은 근육통, 간 손상, 당뇨 등 부작용으로 약물을 줄이거나 중단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며 "하지만 로수젯 같은 중강도 로수바스타틴과 에제티미브 복합제는 우수한 약물순응도를 기반으로 LDL-C 조절이 필요한 환자에게 효과적인 치료 전략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로수젯은 2017년 다국적 제약사 MSD와 전 세계 23개국 판매 계약을 체결한 바 있는데요. 글로벌 제약기업이 도입해 판매하는 유일한 개량신약이기도 합니다. 지난해 매출 1232억원을 기록하면서 승승장구하고 있는데요. 이번 란셋 논문 게재로 로수젯의 효과와 안전성을 인정받은 만큼 한미약품은 오는 2024년까지 '로수젯' 매출 2000억원 달성을 목표로 마케팅에 박차를 가할 전망입니다.
개량신약은 지난 2008년 개량신약 인정제도가 도입된 이후부터 지난해까지 총 125개 품목이 허가를 받았는데요. 국산 개량신약의 포문을 연 것도 한미약품이었습니다. 바로 고혈압 치료제 '아모잘탄'으로, 누적 매출만 1조원을 넘기는 등 한미약품의 효자 품목이기도 합니다. 또 한미약품의 역류성식도염 치료제 '에소메졸캡슐'은 지난 2013년 국산 개량신약으로는 최초로 미국 시장에 진출하기도 했죠.
개량신약은 개발에 10년 이상이 소요되는 혁신 신약에 비해 임상 기간이 짧고 R&D 투자비용도 적게 듭니다. 또 임상시험자료 제출도 일부 면제가 가능하고 독점권한도 주어지죠. 특히 특허기간 내에 출시가 불가능한 제네릭과 달리 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를 회피할 수 있어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 개량신약은 국내에서 제네릭 취급을 받으면서 인정받지 못했다"면서 "개량신약으로 성장한 제약기업들이 혁신 신약 개발에 몰두하는 선순환 구조를 이룰 수 있고 글로벌 시장에서도 경쟁력이 충분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아직 국내 제약기업이 혁신 신약 개발에 성공한 사례는 없습니다. 단 1개의 혁신 신약 개발에 드는 비용은 무려 10조원에 달합니다. 그러나 국내 제약기업들의 매출은 이제 갓 1조~2조원을 넘기는 수준입니다. 당장 혁신 신약 개발을 온전히 진행할 수 있는 기업은 없다는 이야기죠.
앞으로 개량신약을 통해 매출 규모를 키우고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다보면 어느덧 혁신 신약 개발을 키울 수 있는 탄탄한 기반이 돼 있지 않을까요. 실제로 글로벌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도 오메프라졸의 개량신약인 '넥시움'으로 세계 30위권 제약사에서 10위권으로 도약한 사례도 있고요. 국산 개량신약으로 글로벌 제약사 10위에 드는 국내 제약기업이 탄생하길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