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해외 투자에 눈을 돌리고 있다. 의약품 내수 시장은 한계에 다다랐고 글로벌 진출이 중요한 시점에서 미국 바이오벤처 투자를 통해 해외 진출의 문턱을 낮춰보려는 전략이다.
동아에스티, 뉴로보 지분 65.5%로 '최대주주' 등극
동아에스티는 이달 미국 뉴로보 파마슈티컬의 최대주주에 오른다. 앞서 동아에스티는 지난 9월 제2형 당뇨 및 비알코올성 지방간염(NASH) 치료물질 'DA-1241'과 비만 및 NASH 치료물질 'DA-1726' 전 세계 독점 개발권과 한국을 제외한 전 세계 독점 판매권을 뉴로보에 이전하는 내용으로 기술수출(L/O)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뉴로보가 사모 및 공모를 통해 최소 3000만달러(약 414억원)의 자금을 조달해야 계약이 성립되고 만약 자금 조달에 실패하면 계약을 전면 해지하는 조건이었다.
뉴로보가 지난달 3230만 달러(약 426억원) 규모의 투자 유치에 성공하면서 동아에스티는 뉴로보로부터 계약금 304억원을 수령하는 동시에 1500만 달러(207억원)를 투자해 뉴로보의 지분을 확보했다. 이에 따라 동아에스티는 뉴로보의 지분 65.5%를 확보하게 됐고 이달 열리는 뉴로보 임시주주총회에서 뉴로보의 최대주주로 오른다. 뉴로보는 동아에스티 자회사로 편입된다. 회사는 이번에 기술수출한 2개 후보물질 중 DA-1241은 내년에 글로벌 2상, DA-1726은 글로벌 1상 임상시험계획(IND)을 신청할 예정이다.
삼바로직스, 삼성물산과 펀드 조성해 미국 바이오벤처 투자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로직스)는 올해부터 바이오 신약 개발에 본격 투자하는 모습이다. 그동안 삼바로직스의 핵심사업은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CMO)과 위탁개발생산(CDMO) 등 바이오의약품 제조였다. 삼바로직스는 지난해 삼성물산과 각각 495억원, 990억원을 공동 출자해 지난해 라이프사이언스펀드(SVIC 54호 신기술투자조합)를 조성하고 해외 바이오 기업 투자에 나섰다. 해당 펀드는 지난 3월 유전자치료제를 개발하는 미국 바이오벤처 '재규어진테라피'에, 8월에는 나노입자로 약물을 전달하는 플랫폼 기술을 보유한 '센다 바이오사이언스'에 투자했다.
재규어진테라피는 글로벌 제약사 노바티스의 척수성 근위축증 치료제 '졸겐스마'를 개발한 핵심 연구진이 지난 2019년 10월 설립한 바이오벤처다. 졸겐스마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지난 2019년 승인받아 현재 연매출 1조여원에 달하는 대형 블록버스터 의약품이다. 재규어진테라피의 신약 파이프라인으로는 △갈락토스혈증(갈락토스를 포도당으로 전환하는 유전자 결핍으로 신생아가 간과 비장 비대, 경련 및 혼수에 빠지는 유전성 탄수화물 대사 질환) △특정 유전자 관련 자폐증 △1형 당뇨병 치료제 등이 있다.
센다는 화이자와 모더나의 코로나19 백신 기술인 메신저리보핵산(mRNA)을 체내 원하는 곳에 안정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플랫폼 기술을 갖고 있다. mRNA는 불안정하기 때문에 체내에 잘 전달하는 기술이 가장 중요하다. 센다는 인공지능(AI)과 머신러닝 기술로 원하는 나노입자 형태의 전달체를 만들 수 있으며 이 기술을 활용한 mRNA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삼바로직스가 코로나 이후 유망 기술로 떠오른 mRNA 분야에 투자하면서 앞으로 신약 개발 사업 진출 및 확대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LG화학, 8000억원 들여 '아베오' 지분 100% 인수
LG화학도 지난 10월부터 미국 신약 개발 바이오벤처 '아베오 파마슈티컬스'의 지분 100%를 5억 6600만달러(약 8000억원)에 인수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아베오는 지난 2002년 미국 메사추세츠주 보스톤에 설립한 후 2010년 나스닥에 상장했다. 아베오는 FDA로부터 지난해 신장암을 표적으로 하는 '포티브다'를 허가 받았고 임상개발·허가·영업·마케팅 등 항암제 시장에 강점을 지니고 있는 회사다.
아베오의 연매출은 약 1500억원 수준이지만 앞으로의 성장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이 회사는 '포티브다'와 다국적 제약사 브리스톨마이어스스퀴브(BMS)의 블록버스터 면역항암제 '옵디보'의 병용 임상3상을 진행하고 있는데 임상에 성공할 경우 매출 확대를 기대할 수 있다.
글로벌 임상·허가·상업화 등 해외 진출에 용이
이처럼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미국 바이오벤처 투자에 활발한 행보를 보이는 배경은 미국 진출이 수월한 장점 때문이다. 미국은 보험, 약가제도, 유통구조 등이 국내와 다른 체계로 운영돼 신약 개발 단계 및 허가뿐만 아니라 영업·마케팅 등을 직접 전개하기에 어려움이 많다.
미국 현지 벤처기업을 통하면 자사의 다른 신약 파이프라인의 글로벌 임상과 FDA 허가 등 미국 진출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또 뉴로보나 아베오처럼 나스닥 시장에 이미 상장한 벤처기업의 경우 해외 자금 확보에도 용이하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글로벌 임상부터 허가, 상업화에 이르기까지 국내와 다른 업계 상황으로 해외 진출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미국에서 신약 개발 경험이 있는 바이오벤처를 통하면 다른 신약 파이프라인의 글로벌 임상, 허가를 진행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만큼 앞으로 미국 바이오벤처에 대한 투자는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