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연기관 시대가 저물어가면서 전기차가 도로를 점령하기 시작했습니다. 전기차 필수 부품인 배터리 사업도 급성장하고 있는데요. 기술 우위를 앞세운 국내 배터리 기업들의 영향력 확대가 돋보입니다. 전 세계로 뻗어가는 국내 배터리 업체(소재·셀·리사이클 분야) 현황과 투자계획을 지역별로 살펴봤습니다. [편집자]
한국 배터리·배터리소재·배터리재활용 업체들의 기술력과 노하우가 뛰어납니다. 전 세계 배터리 시장을 주도하는 배경입니다.
이들은 국내 각지를 거점으로 해외에 발판을 마련해 성장 속도를 높이고 있는데요. 다만 투자 발표가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이들의 생산현황과 투자계획을 한 눈에 살피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K-배터리 세계지도'를 통해 2023년 기준 한국 배터리 산업 현장을 총체적으로 살펴봤습니다.
우선 '한국편'에서 기업들의 한국내 지역 거점과 투자 규모, 향후 계획 등을 살펴보시죠.
배터리 셀, 한반도에 중심 잡다
대표적 배터리 제조기업 LG에너지솔루션은 충북 청주에 '오창 에너지플랜트'라는 대규모 생산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 지난 4월엔 이 공장을 전 세계 배터리 생산공장의 글로벌 기술 허브, 즉 마더 팩토리로 육성한다고 밝혔는데요.
2024년 12월까지 6000억원을 투자해 마더 라인을 구축하는 게 골자입니다. 마더 라인에서는 차세대 설계 및 공정 기술이 적용된 제품의 시험생산뿐 아니라 양산성 검증까지 가능하다고 하는데요. LG에너지솔루션은 마더 라인에서 '파우치 롱셀 배터리' 시범생산 및 양산성 검증 작업을 거친뒤 전 세계 생산라인에 확산할 계획입니다.
SK온도 국내 생산·연구 시설을 글로벌 진출의 교두보로 삼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지난 4월에는 대전에 위치한 배터리연구원에 4700억원을 투자, 연구원 시설을 확장하고 차세대 배터리 파일럿 플랜트 및 글로벌 품질관리센터(G-VC)를 신설한다고 발표했죠.
파일럿 플랜트의 경우 내년 상반기 완공 목표로 지난해 12월 착공했고요. 꿈의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용 소재 개발을 위해 특수 환경설비를 갖춘 실험 공간과 함께 대규모 양산 기술 확보를 위한 파일럿 생산 라인 등을 설치할 계획입니다.
또 부천 대장 도시첨단산업단지에도 차세대 배터리 등 친환경 에너지 R&D(연구개발) 단지를 조성, 대전 배터리연구원과 미래 기술의 두 축을 구성하겠다는 큰 그림도 갖고 있죠.
삼성SDI는 자동차용 배터리인 중대형 배터리와 IT(정보통신) 기기·전동공구 등에 활용되는 소형 배터리를 구분해 생산하는데요. 중대형 배터리 셀은 울산사업장, 소형 배터리 셀은 천안사업장에서 각각 생산합니다.
특히 국내 배터리 3사 중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에 가장 가까운 삼성SDI는 경기도 수원에 SDI 연구소를 두고 전고체 전지 연구개발에 한창입니다. 지난해 3월 SDI 연구소 내 약 2000평 규모의 전고체 파일럿 라인(S라인)을 착공했고요. 곧 시제품 생산을 앞두고 있습니다.
거점 중심으로 퍼져가는 양극재 5개사
양극재는 음극재, 분리막, 전해액과 함께 배터리의 4대 핵심 소재 중 하나로 꼽히는데요.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배터리 소재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실제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작년 전세계 삼원계 NCM(니켈·코발트·망간) 양극재 시장에서 에코프로비엠이 출하량 1위를 차지했고, LG화학도 4위에 이름을 올린 바 있죠.
국내 최대 양극재 기업인 에코프로비엠은 본사가 위치한 충북 오창에 본거지를 두고 있는데요. 공격적으로 시설 투자를 진행하는 곳은 경북 포항입니다. 특히 포항에는 삼성SDI와 합작한 에코프로이엠(EM)을 비롯 그룹 계열사와 시너지를 위해 '에코배터리 포항캠퍼스'를 구축했는데요. 지난해 10월 에코프로이엠이 CAM7 공장을 완공, 생산에 돌입하면서 에코프로는 국내 최대 규모인 약 18만톤(t)의 양극재 생산능력을 확보한 기업으로 거듭났습니다.
에코프로는 오는 2027년까지 7조1000억원을 투자해 양극재 생산능력을 71만톤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인데요. 그 일환으로 에코프로비엠은 오는 2024년 완공을 목표로 연간 5만4000톤의 양극재 생산능력을 갖춘 CAM9, 에코프로이엠은 3만6000톤의 생산능력을 갖춘 CAM8을 짓고 있습니다.
LG화학은 오는 2030년까지 매출 30조원 규모의 '글로벌 톱 종합전지 소재 회사'를 목표하고 있어요. 이를 위해 현재 12만톤 규모인 양극재 생산 능력을 2028년 47만톤까지 확대할 예정입니다.
LG화학의 양극재 핵심기지는 충북 청주에 위치한 청주공장입니다. 청주공장에서 연간 생산하는 양극재는 7만톤 규모에 달합니다. LG화학의 전체 양극재 생산량의 절반 이상이 청주공장에서 나오죠.
여기 더해 경북 구미에는 약 5000억원을 투자해 연산 6만톤 규모의 양극재 공장을 짓고 있습니다. 공장이 완공되면 연 18만톤 규모의 양극재 생산능력을 확보하게 되죠. 구미 양극재 법인은 세계 최대 코발트 생산기업인 중국 화유코발트의 양극재 자회사 'B&M'가 지분 29%를 확보하면서 합작법인으로 전환한 바 있습니다. 화유코발트로부터 안정적으로 핵심 원재료를 공급받기 위함이었죠.
또 LG화학은 '선택과 집중'을 위해 최근 익산 1국가산업단지에 있는 양극재 공장을 처분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익산공장의 연간 생산량은 4000톤에 그칩니다. 기존 청주공장이나 구미공장 등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수준이라, 전체 생산량에 큰 영향이 없죠.
경북 구미·전남 광양에서 양극재를 생산하고 있는 포스코퓨처엠은 다음 생산기지로 포항을 선택했습니다. 포스코퓨처엠은 포항에 10만6000톤 규모의 양극재 생산단지 건설을 목표하고 있는데요. 1단계 공장은 연산 3만톤 규모로 올 하반기 준공 예정이고요. 같은 규모의 2단계 공장도 지난 4월 착공에 돌입했습니다. 또또 최근 이사회를 열고 6148억원을 투입해 4만6000톤 규모의 하이니켈 NCMA(니켈·코발트·망간·알루미늄) 공장을 추가 건설하는 안건도 승인했죠.
테슬라에 양극재를 공급하는 엘앤에프도 양극재 수요 증가에 따라 국내 투자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엘앤에프는 지난해 8월부터 전기차용 양극활물질 수요 대응을 위해 6500억원을 긴급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고요. 2024년 22만톤이었던 중장기 생산능력 목표를 2026년 43만톤으로 올려잡기도 했습니다.
현재 엘앤에프는 거점인 대구에서 1공장(연산 4만톤), 2공장(7만톤)을 운영 중인데, 연내 9만톤 규모의 3공장도 가동할 계획입니다.
코스모신소재의 경우 충북 충주에서 2만톤의 양극재를 생산하고 있는데요. 내년까지 라인 증설을 통해 생산능력을 10만톤까지 확대하는 게 목표입니다.
'방방곡곡' 배터리 소재사
LG화학·포스코퓨처엠·에코프로·엘앤에프 등은 양극재 외 배터리 소재에도 투자를 확대하는 추세입니다.
LG화학은 지난해 고려아연 계열사인 켐코와 울산 전구체 전용라인 구축을 위한 합작법인을 설립했고요. 지난 4월에는 화유코발트와 손잡고 새만금국가산업단지에 양극재의 핵심 소재인 전구체 공장을 건설하기로 했습니다. 2028년까지 총 1조2000억원을 투자해 총 10만톤 규모의 전구체 생산 공장을 지을 계획입니다.
에코프로머티리얼즈는 포항에서 전구체를 비롯해 전구체 핵심원료인 니켈·코발트·망간을 생산하는데요. 이달 RMP(황산화공정) 2공장을 준공했고 내년 RMP 3공장도 가동할 계획입니다. 이와 함께 내년 CPM(전구체 생산) 3공장도 완공, 총 8만톤의 전구체 생산능력을 확보한다는 구상입니다.
이밖에 공급망 체인을 강화하기 위해 SK온, 전구체 생산기업 중국 GEM(거린메이)과도 협력하고 있는데요. 2024년까지 새만금산업단지에 5만톤의 생산능력을 보유한 전구체 제조 공장을 설립한다고 합니다. 포항에 LHM(수산화리튬) 1공장을 둔 에코프로이노베이션도 오는 2024년까지 동일한 규모의 2공장을 건설해 총 2만6000톤 규모의 수산화리튬 생산시설을 확보할 전망입니다.
포스코퓨처엠도 포항에 전구체와 음극재 생산능력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LG화학과 마찬가지로 화유코발트와 손을 잡았는데요. 양사는 합작사를 통해 1조2000억원을 들여 포항 블루밸리산단 내 전구체와 고순도 니켈 원료 생산라인을 구축할 예정입니다.
아울러 국내 최초로 양극재·음극재 동시 생산 능력을 갖춘 기업답게, 음극재 생산공장 추가 건설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현재 포스코퓨처엠은 세종에서 7만4000톤의 천연흑연, 포항에서 8000톤의 인조흑연 음극재를 생산하고 있는데요. 2025년까지 포항에 공장을 추가 건설해 오는 2030년까지 음극재 생산능력을 32만톤까지 확대한다는 복안입니다.
엘앤에프는 사업다각화를 위해 새만금사업단지에 약 6만~8만톤 규모의 전구체 공장을 지을 예정이었는데요. 최근 LS그룹 지주회사인 ㈜LS와 함께 합작회사를 설립해 1조원 이상을 들여 전구체 공장을 설립한다고 밝혔습니다. 양사의 전구체 공장은 연내 착공, 오는 2025~2026년 양산에 돌입해 2029년 12만톤 생산을 목표하고 있습니다. 울산에 자리한 코스모신소재의 5000톤 규모 전구체 공장도 올해 완공을 앞두고 있다네요.
SK그룹은 SK아이이테크놀로지, SK넥실리스 등을 통해 배터리 소재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데요. SK아이이테크놀로지는 충북 증평과 청주에서 총 5억2000만㎡ 규모의 분리막 공장을 운영하고요. SK넥실리스는 전북 정읍공장에서 연간 5만2000톤 규모의 동박을 생산합니다.
롯데그룹 역시 배터리 소재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롯데케미칼은 충남 서산 대산공장 내 EC(에틸렌카보네이트)·DMC(디메틸카보네이트)·EMC(에틸메틸카보네이트)·DEC(디에틸카보네이트) 등 배터리 전해액 유기용매 4종의 생산 설비를 짓고 있고요.
지난해 10월에는 음극재 핵심 소재인 동박 사업에 진출하기 위해 동박제조업체인 일진머티리얼즈(현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를 2조7000억원에 인수했습니다. 롯데케미칼은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를 자회사로 편입, 배터리 소재 밸류체인을 강화하게 됐죠. 또 다른 계열사인 롯데알미늄도 경기 안산에서 양극박 생산 공장을 운영하며 생산라인을 적극 증설하고 있습니다.
떠오른 '폐배터리' 시장…국내기업도 시동
폐배터리에서 원재료를 추출하는 재활용 사업도 국내 기업들의 관심사입니다. 그중 가장 두각을 드러낸 곳은 성일하이텍인데요. 성일하이텍은 국내를 비롯해 중국, 말레이시아, 인도, 헝가리 등 해외 공장(리사이클링파크)에서 폐배터리를 파분쇄해 검은 분말 '블랙 파우더'로 만드는 전처리 과정을 진행하고요. 국내 군산 1·2공장(하이드로센터)에서는 블랙 파우더에서 양극활물질을 뽑아내는 습식제련 공정을 실시합니다. 현재는 올해 생산 시작을 목표로 군산에 3공장을 준동하고 있는데요. 3공장은 1·2공장의 총생산량보다 3배 이상 큰 규모로 계획돼 있어 향후 높은 성장이 기대되고 있습니다.
성일하이텍은 배터리 회사들과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요. 가장 밀접한 곳은 삼성SDI입니다. 삼성SDI가 성일하이텍의 지분 8.79%를 확보한 3대 주주기 때문이죠. 또 지난해 12월에는 SK온의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과 2025년 상업공장 가동을 목표로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기도 했습니다.
에코프로는 계열사 에코프로씨엔지(CnG)를 통해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지난 2021년 포항에 8000톤 규모의 BRP(배터리 재활용) 1공장을 설립해 가동 중이고요. 오는 2024년까지 같은 규모의 2공장을 건설할 예정입니다. 포스코 역시 포스코HY클린메탈을 통해 재활용 사업에 도전장을 내밀었는데요. 전남 광양에 연간 니켈 2200톤·코발트 700톤·망간 600톤·탄산리튬 2100톤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준공, 올해 2월 가동을 시작했습니다.
코스모화학은 황산코발트 제조 경험을 바탕으로 폐배터리를 재활용하는 기술을 개발해 울산 공장 내 재활용 공장을 짓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양극재, 전구체를 생산하는 코스모신소재와의 시너지를 꾀한다는 복안이죠. 영풍도 50여 년간의 제련소 운영 노하우를 바탕으로 석포제련소에서 재활용 파일럿 공장을 가동했고요. 2024년까지 연간 2만톤 규모의 배터리 재활용 상용화 공장을 완공할 계획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