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막판 뒤집기에 성공했다.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의 분수령이었던 23일 임시주주총회에서 영풍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히든카드로 경영권을 지켜낸 것.
하지만 아직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 영풍과 MBK파트너스 연합이 최윤범 회장의 영풍 의결권 제한 조치에 대한 법적 조치를 예고하고 있어서다. 짧게는 오는 3월 정기 주주총회, 길게는 법적 공방이 마무리될 때까지 경영권 분쟁이 이어질 거란 관측이 나온다.
신경전 끝에 주주총회 시작
이날 고려아연은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임시 주주총회를 개최했다. 경영권 분쟁이 가열된 만큼 개최부터 쉽지 않았다. 애초 이날 오전 9시로 예정됐던 주주총회는 위임장 확인 등의 절차로 5시간이 넘은 오후 3시께 시작됐다. 서로 확보했다고 주장하는 우호지분이 비슷한 상황이어서 한 주 한 주가 중요했고 위임장 확인 시간이 길어지면서 주총 개시가 지체됐다.
개시 이후에도 첫번째 표결까지 2시간여가 넘는 시간이 소요됐다. 전날(22일) 최윤범 회장은 호주 손자회사인 선메탈코퍼레이션(SMC)이 최윤범 회장 일가와 영풍정밀이 보유하고 있는 ㈜영풍 지분 10.33%(19만226주)를 575억원에 장외거래로 취득했다고 밝히면서 상법에 따라 영풍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조치에 나섰다.
이후 MBK 측에서 해당 조치에 대한 위법성과 적법성의 문제를 삼고 임시 주총을 연기할 것을 제안했지만 불발됐다. 최윤범 최장 측 인사인 박기덕 고려아연 대표이사(의장)는 영풍이 보유하고 있는 526만2450주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음을 선언했다.
최윤범의 '막판 뒤집기'
그간 최윤범 회장과 영풍·MBK간 경영권 분쟁의 판도는 수시로 바뀌며 판세가 엎치락뒤치락 했다. 최윤범 회장의 결별 선언 이후 영풍이 MBK와 손잡으며 앞서 나기 시작했지만 최윤범 회장이 유상증자 카드를 꺼내며 반전을 꾀했고 다시 금융감독원이 이를 저지했다.
우호지분 상 영풍과 MBK측에 밀렸던 최윤범 회장은 임시 주총에서 경영권 확보를 좌우할 이사 선임 안건에 대해 집중투표제 도입을 제안하면서 영풍과 MBK를 다시 압박했다. 하지만 영풍과 MBK는 낸 의안정지 가처분신청을 법원이 인용하면서 다시 판세가 기우는 듯했다. 주총 24시간 전만 해도 업계에서는 영풍과 MBK가 확보한 우호지분이 최윤범 회장 측을 앞선다고 보고 영풍과 MBK가 경영권을 확보할 것으로 봤다.
하지만 전날 밤 고려아연은 한 번 더 반전 카드를 꺼냈다. 손자회사에 영풍의 지분을 넘기는 '순환출자' 구조를 만들면서 영풍의 의결권을 배제했고 경영권 방어의 분수령을 마련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최윤범 회장 측이 마지막 반전 카드를 매우 적절한 타이밍에 꺼내면서 임시 주주총회에서 압승했다"라며 "영풍과 MBK는 손조차 쓸 수 없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날 진행된 표결에서는 고려아연이 의도한 대로 집중투표제 도입 안건이 통과됐다. 추후 영풍과 MBK가 최윤범 회장의 영풍 의결권 제한 조치가 무효하다는 법적 해석을 이끌어내더라도 현재의 우호지분 상황이라면 경영권을 지켜낼 가능성이 커졌다. 이후 이사의 수 상한을 19명 이상으로 두는 안건 등도 연이어 통과시켰다. 사실상 최윤범 회장의 판정승이었다.
끝이 아니다
당장은 최윤범 회장이 승기를 잡은 모양새지만 결코 끝이 난 것은 아니다. 영풍과 MBK가 이번 임시 주주총회 결과가 적법치 않다고 보고 이를 법원에 판단에 맡길 예정이다. 현재 영풍 측은 이번 의결권 제한 조치의 핵심인 SMC가 외국회사이면서 유한회사인 만큼 영풍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한 상법전문 변호사는 "법적 논쟁 소지여부가 충분하다고 판단한다"라며 "영풍의 의결권이 인정될 경우 이날 임시주총을 통과한 안건들이 무효화 할 가능성도 있다"고 짚었다.
법원 판결이 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일이 소요될 수 있고 항소가 거듭되는 과정이 이어지면 최윤범 회장이 꺼낸 영풍의 의결권 제한 조치 영향은 길게는 수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법원 판단 이전인 오는 3월로 예정된 정기 주주총회도 주목된다. 영풍과 MBK가 법적 분쟁을 지속하는 것과 별개로 정기 주총일에 임시 주주총회에서 가결된 사안을 뒤집을 묘수를 모색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업계 관계자는 "영풍과 MBK가 의결권 추가 확보 등에 성공한 이후 경영권을 조기에 확보하려할 가능성도 배제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