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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범 불참', '주주 가로막은 가드'…예견된 고려아연 주총 파행

  • 2025.01.23(목) 18:05

23일 열린 고려아연 임시주총, 9시 시작 예정이었지만 5시간 지연
지각 주총 시작했지만...영풍 의결권 제한하면서 장내 소란 이어져
회사측, 주총 파행 예견하고 가드배치…의장은 주주 거리 두고 진행
영풍‧MBK, 공정한 진행 요구하며 임시주총 연기 안건 제청하기도
영풍 뺀 집중투표제 표결...찬성률 76.4% 기록하며 임시주총 통과

23일 그랜드 하얏트 서울에서 열린 고려아연 임시주주총회에서 고려아연 근로자들이 영풍, MBK파트너스의 경영권 인수시도에 대해 반발하며 고려아연을 지켜달라고 호소하고 있다./사진=김보라 기자

적년 9월부터 이어져 온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의 정점을 찍을 임시주주총회가 23일 열렸다. 고려아연 직원들은 주총 장소인 그랜드하얏트서울 1층 로비에 일렬로 서서 영풍‧MBK파트너스 측의 경영권 확보 시도를 탈취로 규정하고 고려아연을 지켜내 달라고 호소했다. 

직원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고려아연 주주들은 임시주총에 참석하기 위해 일렬로 줄을 서 주주확인을 거쳤다. 영풍‧MBK 측은 자신들이 누구인지를 알리는 명패를 옷깃에 달며 주총장에 줄을 서서 입장했다.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 강성두 영풍 사장도 다른 일반주주와 똑같이 줄을 서서 주주로서의 신분확인 절차를 거친 뒤 주총장에 입장했다.2000명 수용 가능한 넓은 주총장…5시간 주총연기로 적막 감돌아

주주임을 확인할 수 있는 초록색 종이 팔찌를 찬 사람만 고려아연 임시주총장에 입장할 수 있었다. 고려아연 임시주총 장소는 그랜드하얏트서울 1층에 자리한 그랜드플로어. 1213㎡ 크기에 무려 2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왁자지껄 할 것 같은 이 공간은 고려아연 임시주총이 열렸던 이날 만큼은 적막감이 감돌았다. 임시주총 시작시간은 오전 9시였지만 의결권을 위임한 일부 주주들이 중복으로 위임장을 제출하면서 이를 다시 확인하느라 주총은 계속 지연됐다. 언제 시작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주주들은 주총이 시작하기만을 마냥 기다렸다.

5시간 넘게 지연되고 주총장은 적막감이 감돌았지만 이미 고려아연은 주총장이 시끄러워질 것을 예견하고 있었다. 고려아연은 일반적인 주총에선 찾아보기 힘든 넓은 크기의 장소를 주총 장소로 빌렸고, 주총 의장이 서 있는 단상 위와 주주 간의 거리는 마치 100미터는 떨어진 것처럼 길게 느껴졌다. 

주총 의장이 서 있는 단상 앞에는 여러 개의 장애물이 가로 단상을 가로막고 있었다.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표소가 10개 놓여 있었고 그 앞에는 7명의 가드들이 앞을 막았다. 주총 의사진행에 반기를 들고 목소리를 높여 항의하거나 물리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미리 주총장을 구성해 놓은 것이다. 

고려아연 임시주주총회가 열린 그랜드 하얏트 서울 1층 그랜드플로어. 높은 단상 위에 박기덕 주총의장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고 주주들과 사이에는 기표함, 가드들이 배치되어 있다./사진=김보라 기자

박기덕 주총 의장 뒤에는 든든한 뒷배도 자리했다. 고려아연이 선임한 김앤장 변호사 여럿이 주총 의장이 서 있는 단상 바로 뒤에 앉아서 주총에서 나올 수 있는 변수들을 체크하는 모습이었다. 김앤장 관계자는 출석주식수를 공식 발표하라는 영풍·MBK측 항의에 대해 박기덕 주총 의장 대신 답변하기도 했다. 

높은 단상, 먼 거리, 여러명의 가드들, 김앤장 변호사들까지 만만의 준비를 한 것과 달리 이날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은 주총에 참석하지 않았다. 승리를 예견하는 자의 태도라기 보단 무언가를 숨겨야만 하는 자의 느낌이었다.  

고려아연, 지분율 25.42% 영풍 의결권 제한 공식화 

넓은 공간의 적막이 깨진 건 고려아연이 영풍의 의결권 제한을 언급하면서다. 이날 임시주총 사회를 맡은 고려아연 관계자는 "오늘 주총에서 의결권이 제한되는 주식수는 상법 제369조의3항에 따라 고려아연 발행주식 526만2450주를 가진 영풍은 본 주총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음을 알려 드린다"고 말했다. 

주총 파행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앞서 고려아연은 손자회사 선메탈코퍼레이션(SMC)가 영풍 주식을 10% 이상 취득하면서 상법 상 영풍은 고려아연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고려아연의 영풍 의결권 제한에 대해 영풍·MBK파트너스 측 주주들은 당연히 반발했다. 이날 주총에 참석한 영풍 대리인은 "너무나 황당하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며 "영풍은 고려아연 최대주주로서 지난 50년 간 아무런 문제 없이 의결권을 행사해 왔는데 갑자기 어제밤부터 의결권 행사를 할 수 없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4조원이 넘는 의결권을 제한하는 것은 회사가 기습적으로 의결권을 날치기해서 주총이 난장판 되고 오늘 주총이 없었던 일이 되는 건 소중한 의결권을 행사하러 온 주주들을 우롱하는 행위"라며 "고려아연은 적법하고 정상적인 절차를 통해 주총을 진행할 수 있도록 이번 주총을 연기해달라"고 요구했다. 

영풍·MBK측 항변에 고려아연측 주주들도 목소리를 높였다. 고려아연측 한 주주는 "영풍의 25% 의결권 때문에 기다린 다른 주주들이 의결권 행사를 못한다"며 "주총을 속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영풍·MBK측 한 대리인은 "법률적 검토도 없이 최윤범 회장 측 편법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매우 위법하고 불공정한 주주총회 결의 부존재 사유에 대해 책임을 물을 것"이라며 "이점 감안하고 주총을 진행하고 마지막 경고"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럼애도 고려아연이 영풍에 대한 의결권 제한을 주총장에서 공식화하면서 영풍·MBK측 주주들은 이번 임시주총을 중단하고 연기해달라고 공식 제청했다. 이에 박기덕 주총의장은 주총 연기를 위한 표결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고려아연 임시주총장 모습. 2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었다./사진=김보라 기자

주총 연기 표결도 영풍 배제…고려아연 주총 강행

표결 절차를 하겠다는 박기덕 의장의 발언에 영풍‧MBK측은 "표결 절차에서 마저 영풍 의결권을 배제하면 부결되는 건 뻔하다"며 "이렇게 꼼수로 진행하는 거면 연기결의에 참여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그러자 고려아연 측은 "주총연기 안건제안을 철회하는 것으로 알겠다"며 "주총연기를 위한 표결 진행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결국 고려아연은 원하는 대로 영풍 의결권을 배제한 채 이번 임시주총 1호 안건인 집중투표제 도입을 위한 정관 변경 안건을 상정하는 의사봉을 두드렸다.

집중투표제 안건을 주주제안한 유미개발 측 대리인 안건 설명 있자 영풍 측 대리인은 집중투표제 안건 상정 자체가 위법하고 표결 역시 위법하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박기덕 주총의장은 영풍의 의결권을 배제한 채 임시주총 1호 안건인 집중투표제를 표결에 부쳤다. 아울러 중복위임장 확인 문제로 아직 확인이 안 된 소수지분 4750주도 참석주식수에 넣지 않고 표결을 진행했다. 

영풍의 의결권을 배제한 채 진행된 임시주총 1호 안건 '집중투표제'를 위한 투표용지가 주주들에게 배부됐다,/사진=김보라 기자

결과적으로 이날 집중투표제 안건 표결에 참여한 의결권 있는 주식 수는 819만4200주로 좁혀졌다, 이는 3%룰(개별주주 의결권 최대 3%까지 사용)을 적용한 것이다.  

고려아연은 주주들 자리를 일일이 찾아 투표용지를 나눠줬다. 주주들은 펜으로 주주정보를 기재한 뒤 집중투표제에 참석하는지 여부에 동그라미 표시를 했다. 이후 고려아연 측 직원들이 돌아다니며 투표용지를 수거했고 개표는 유미개발 측 2명과 한국기업투자홀딩스(MBK) 측 2명이 개표담당자가 되어 투표결과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개표 결과 3%룰을 적용한 출석한 의결권 주식수 901만6432주 중 689만6286주가 찬성, 206만7456주가 반대, 5만2748주가 기권하면서 찬성률이 76.4%를 기록하며, 최윤범 회장이 염원하던 집중투표 도입이 통과됐다. 

영풍 의결권 배제라는 초유의 승부수를 던진 고려아연은 그렇게 최윤범 회장 측이 원하는 집중투표제 가결로 이번 임시주총을 마무리했다. 

이날 주총에 참석한 영풍 대리인은 "이번 영풍을 배제한 표결행위에 대해 반드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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