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물류 시장은 말 그대로 전쟁터다. 중국산 저가 자동화 로봇이 쏟아지며 단가 경쟁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이 포화 속에서 현대그룹 스마트 물류 솔루션 전문 기업 현대무벡스는 '가격'이 아닌 '기술'로 승부를 거는 전략을 택했다. 기계 설계부터 제어 소프트웨어까지 전 과정을 자체 개발하며 단순 '효율'을 넘어 '지능형 물류'를 정조준한 것이다.
세계 시장에서 기술을 확보하는 것과 신뢰를 얻는 것은 다른 문제다. 현대무벡스는 다국적 제조사들의 생산거점에 솔루션을 공급하며 기술 경쟁력을 입증하고 있다. 청라 R&D센터에서 확인한 자율주행 운반 로봇(AGV), 갠트리로봇, 스태커크레인(SRM)은 이 같은 전략을 현실로 옮기고 있었다.
기술이 바꾼 물류 동선

지난 23일 찾은 인천 청라국제도시 현대무벡스 R&D센터. 한가운데 대형 AGV가 물류센터를 가로지르며 쉴새 없이 움직이기를 반복했다. 바닥 선 없이 자유롭게 움직이는 모습은 기존 물류센터의 AGV 움직임과 확실히 달랐다.
이날 등장한 AGV는 두 종류였다. 하나는 지게차처럼 생긴 형태였고 다른 하나는 상판에 롤러를 장착한 직사각형 구조였다. 기본 모델은 최대 2톤까지 자재를 실을 수 있고 2.5톤급까지 확장도 가능하다.

롤러형 AGV는 선 없이 주행하면서도 방향을 바꾸지 않고 사선으로 미끄러지듯 이동했다. 장애물을 인식해 부드럽게 피해가면서 목적지를 찾아가는 모습은 기존 AGV와는 다른 인상을 줬다.
24시간 연속 무한 반복된 AGV 성능 테스트로 센터 바닥에는 궤적이 선명히 남아있었다. AGV는 충전식 고정 배터리가 아니라 교체형 배터리를 쓰는데, 배터리가 다 닳으면 충전 기다릴 필요 없이 3분 만에 새 배터리팩으로 교체할 수 있다. 물론 이 작업도 사람이 아닌 AGV 스스로 한다.

현대무벡스 AGV는 주행 제어뿐 아니라 전기회로, 세이프티 로직까지 모두 자체 개발한 점이 특징이다. 외부 모듈에 의존하지 않고 모든 시스템을 통합 설계해 장애물 회피, 부드러운 사선 이동, 복합 경로 주행을 안정적으로 구현할 수 있다.
이영호 현대무벡스 R&D본부장은 "우리가 개발한 모든 자동화 설비들은 설계와 동역학 해석, 회로 설계, 제어 소프트웨어를 모두 내부에서 개발했다"며 "오픈소스를 쓰지 않고 자체 로직으로 제어를 구현해 부드럽고 정밀한 주행이 가능하며 외주 없이 인하우스 체계로 문제 발생 시 즉시 대응할 수 있는 점이 차별화된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이 방식은 네 가지 측면에서 강점을 가진다. 우선 현장 환경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다. 물류 로봇은 설치 환경과 운용 조건이 제각각인데, 자체 개발 체계 덕분에 소프트웨어를 즉각 수정하고 튜닝할 수 있다.
고객 맞춤형 커스터마이징도 용이하다. 외주 설계 제품은 표준 사양에 묶이지만 현대무벡스는 제어 로직과 주행 패턴을 고객 환경에 맞게 유연하게 최적화할 수 있다.
또 모든 설계·제어 기술이 내부에 축적돼 차세대 제품 개발로 이어지는 기술 자산을 확보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품질 관리 기준을 내부에서 일관되게 적용할 수 있어 제품 신뢰성과 현장 대응력 모두를 높이는 기반이 된다. 기술 자산을 외부에 노출하지 않는 점도 글로벌 시장에서 기술 탈취 리스크를 관리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초고밀도 물류의 새 그림
청라 R&D센터 한쪽에서는 또 다른 자동화 장비들의 테스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무거운 타이어를 집어 이송하는 갠트리로봇, 고속 이동과 진동 억제를 구현한 스태커크레인(SRM)이 쉴새 없이 움직였다.

갠트리로봇은 승용차용 타이어부터 대형 트럭 타이어까지 다양한 규격의 타이어를 연속으로 집어 올려 이송하는 모습을 선보였다. 타이어는 고무 소재 특성상 적층 과정에서 형태가 눌리고 변형되기 쉬운데, 갠트리로봇은 이 미세한 변형까지 감지해 안정적으로 집어내는 정밀도를 보여줬다. 이동 속도 역시 빠른 편이었다. 기존에는 사람이 직접 운반하거나 지게차로 나르던 작업을 자동화해 작업 속도와 안전성을 동시에 끌어올릴 수 있다.
이 갠트리로봇은 한국타이어 미국 테네시 공장 스마트 물류 프로젝트에 투입될 예정이다. 해당 프로젝트는 1000억원대 규모로, 현대무벡스 단일 수주 기준 역대 최대 규모다. 타이어뿐 아니라 배터리팩 같은 고중량 전자부품 이송에도 적용되고 있다. 글로벌 유명 배터리팩 제조기업과 전자제품 제조사에도 납품했다.

SRM 시연도 이어졌다. 이 장비는 40미터 높이까지 적재할 수 있는데, 아파트로 치면 약 14층에 해당하는 높이다. 랙(Rack·선반) 구조에 맞춰 빠르게 상하 이동하며, 진동을 억제하는 재진제어 기능이 적용돼 고속 운행 중에도 흔들림이 적었다. SRM 역시 QR코드 인식과 WCS(웨어하우스 컨트롤 시스템) 연동으로 입출고 이력 추적이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고중량 화물의 입출고까지 자동화하는 체계다.
이영호 R&D본부장은 "SRM은 단순한 상하 이동이 아니라 고속 주행 중에도 정확한 포지셔닝을 구현하는 것이 핵심"이라며 "고중량 화물 운송에서도 흔들림과 구조 변형을 최소화하는 기술을 직접 개발해 안정성을 높였다"고 설명했다.
한편 현대무벡스 청라 R&D센터는 2019년 11월 준공됐다. 부지 면적 6691㎡(약 2000평) 규모에 총 220억원이 투입됐으며 현대그룹 물류자동화 개발의 핵심 거점 역할을 맡고 있다. 지난해에는 센터 내 태양광발전설비를 구축하며 'RE100'(사업장 전력 100% 신재생에너지 사용) 이행을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