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이 올해 1분기 호실적을 거두는 데 성공했다. 분기 기준 역대 최대 매출과 함께 영업이익도 뛰면서 101개 분기 연속 흑자행진을 이어갔다.
하지만 탄탄했던 곳간은 점점 바닥을 보이고 있다. 경영권 분쟁으로 인해 그동안 쌓아뒀던 현금을 대거 사용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막대했던 현금 자산이 줄어들면서 투자 등에 적극 나서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분쟁이 지속되고 있어 당분간 내실을 끌어올리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다.

미국 덕에 1분기 웃은 고려아연
고려아연은 1분기 연결기준 매출 3조8328억원, 영업이익 2711억원을 기록했다고 9일 공시했다. 매출은 지난해 1분기와 비교해 61.4%나 늘면서 분기 기준 최대치를 경신했다. 매출 증대를 바탕으로 영업이익도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46.9%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1분기 호실적 배경으로는 달러 강세와 함께 희소금속 가격이 오르는 등 긍정적인 환경이 지목된된다. 아연과 납(연) 가격이 내렸지만 달러/원 환율이 오르며 원자재 가격 하락 영향을 최소화 했다.
안티모니, 인듐, 비스무스 등 전략광물들의 가격이 상승하면서 이 부문에서의 매출이 지난해 1분기 290억원에서 올해 1분기에는 900억원으로 3.5배 이상 증가했다.
업계에서는 일부 기업들이 올해 1분기 깜작실적을 낸 것과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고 본다. 미국이 광물 주력 생산국가인 중국을 압박하면서 고려아연이 상대적으로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달러 강세 역시 미국이 전세계 교역국을 상대로 관세 압박을 펼친 영향이 컸다는 게 중론이다.
비어가는 곳간
실적은 좋았지만 내실은 예전만 못해졌다. 탄탄했던 재무건전성이 악화하는 모습이 이어져서다. 지난해 3분기 1조5100억원 규모였던 현금 및 현금성 자산 규모가 올해 1분기에는 5770억원으로 1조원 가까이 줄어들었다.
아울러 이 기간 동안 차입금 규모는 2조3080억원에서 4조4810억원으로 2조원 이상 늘었고 부채비율도 44.6%에서 88.1%로 두배 가량 급증했다. 가지고 있는 '현금' 비중이 줄어드는 동시에 '빚' 까지 늘어난 셈이다.
이 같은 재무상황은 통상 '대규모 투자'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지만 고려아연의 경우는 상황이 다르다. 지난해 3분기부터 이어졌던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과 영풍-MBK간의 경영권 분쟁에서 자사주 매입을 진행한 바 있는데 외부 기관 투자금과 함께 당시 회사가 보유한 현금을 바탕으로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한때 무차입 경영에 나서는 등 탄탄한 재무 건전성이 고려아연의 가장 큰 장점이었는데 경영권 분쟁으로 인해 사라졌다"고 말했다.경영권 분쟁, 고려아연의 뿌리 건드렸다
금융투자업계 등에서는 고려아연이 그간 막대한 현금창출능력을 바탕으로 탄탄한 재무건전성까지 갖출 수 있었는데, 지난해부터는 현금을 창출하더라도 이를 빚 상환에 우선적으로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본다.
이 경우 가장 우려되는 대목은 대규모 투자가 사실상 어려워진다는 거다. 지난 2023년 최윤범 회장은 '고려아연 트로이카 드라이브'라는 신성장 동력 계획을 제시한 바 있다. 오는 2033년까지 약 17조원을 투자하는 대규모 계획이다.
이를 내걸었을 당시 재무건전성으론 별 무리 없이 진행됐겠지만 지난해 3분기 이후 급격히 악화하면서 실제 투자가 제대로 이뤄질 지 미지수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당시 투자계획은 안정적으로 사업이 유지되면서도 탄탄한 재무를 바탕으로 외부에서 추가 차입금을 저리로 유치한다는 계획이 깔려있었다"라며 "재무건전성 악화와 함께 지속적인 현금창출이 기존보다 어려워졌기 때문에 투자계획을 축소 수정할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1분기와 달리 호실적을 이어나가기 어려울 거란 점도 고민거리다. 최근 들어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에서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관련 수혜가 사라질 수 있어서다. 덩달아 최근에는 달러/원 환율 역시 안정화하고 있다. 1분기와는 정반대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는 거다.
업계 관계자는 "경영권 분쟁으로 회사의 단기적, 중장기적 성장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졌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