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가 4일 임기를 시작한 이재명 대통령에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다. 경기가 녹록지 않은 만큼 기업들을 옥죄는 규제 일변도 방식을 완화해줄 것을 요청했다.
재계가 그간 우려해온 상법 개정안 통과가 이재명 대통령의 당선으로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아진 만큼 상법 개정안 부담을 줄여달라는 의미가 담겼다는 분석이다.
다만, 이재명 대통령이 이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운 데다 속도감 있는 추진을 공언한 만큼 피하기 어려울 거라는 관측이 나온다. 재계 역시 관련 법안 개정이 본격화하기 전에 지배구조 개선 등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기업 환경' 강조한 재계 …상법 개정안 우려 담겼나
이날 주요 경제단체는 이재명 대통령의 당선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냈다. 핵심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달라는 당부였다.
한국경제인협회는 "위기극복 핵심은 민생안점과 산업경쟁력 강화로 국민경제 활력을 회복하는 것"이라며 "새 정부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 혁신과 도전의 경영이 확산되도록 힘써달라"고 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기업 성장을 저해하는 각종 규제를 과감히 개선해달라"고 밝혔다. 대한상의는 "급변하는 글로벌 환경 속 국가적 역량을 하나로 모으는 리더십을 발휘해 국가 발전과 경제 재도약을 이끌어 달라"고 주문했다.
이날 메시지는 이제 막 대통령 임기를 시작한 만큼 당선 축하와 의례적인 당부의 성격이 더 강하지만, 그간 경제단체들을 중심으로 상법 개정안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높여오면서 이를 내포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상법 개정안이 어떻게 추진될지에 대한 추측은 섣부를 수 있다"면서도 "상법 개정안에 담긴 내용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정부를 설득하는 작업이 이뤄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상법 개정안, 여름안에 더 세게 오나
상법 개정안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방안 중 핵심으로 꼽힌다. 이전 정부에서는 국회의 문턱을 넘기는 했지만 대통령 혹은 대통령 권한대행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발동하면서 통과가 무산됐다. 당시 여당이었던 국민의힘은 상법 개정안보다는 자본시장법을 개정하는게 기업의 경영활동을 헤치지 않으면서도 저평가된 기업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입장을 이어나가서다.
이재명 대통령과 여당은 이번 대선에서 상법 개정안을 다시 들고 나왔다. 상법 개정안이 코리아 디스카운트, 기업 밸류업 등을 위한 핵심이라고 보고 이를 재추진 하겠다는 입장이다.
특히 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 한 언론사 유튜브에 출현해 상법 개정안을 취임 이후 2~3주 안에 처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속도감 있게 상법 개정안을 국회를 통과시키고 거부권을 발동시키지 않으면 된다는 논리였는데,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현실화 가능성이 높아졌다.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이전에 국회 문턱을 넘었을 당시보다 더 강도가 세질 수 있다. 기존 상법 개정안은 기업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고 일정 규모 이상의 상장사는 전자 주주총회 제도를 의무화 하는 내용이 핵심이었는데 집중투표제 도입과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 등을 확대하는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전망된다.
시간 촉박한 재계, 지배구조 개편 속도내나
이재명 대통령이 선언했던 대로 여름까지 상법 개정안이 공포되면 약 1년 후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재계는 이를 염두해 두고 본격적인 대응 방안을 마련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핵심은 지배구조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다.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최대주주 영향력이 제한될 가능성이 높다. 전자투표와 집중투표제 도입 등으로 소액 주주들이 더욱 기업 경영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소액주주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다면 경영권을 이어가기 어렵다는 의미다. 결국 경영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지배지분을 늘리는 것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이를 위해 부족한 현금을 회사로부터 지분담보대출이나 배당을 통해 확보한다면 이에 대한 비판 여론은 피하기 어려울 수 있다. 특히 최근 불황으로 여력이 부족한 점이 더욱 치명적이다.
이사회 중 감사위원회를 재구성 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상장사는 3인 이상으로 구성된 감사위원회를 이사회 내 설치해야 하고 이 중 1명은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한 분리선출을 통해 뽑는다. 상법 개정안은 이 분리선출되는 감사위원 수를 1명에서 최대 3명으로 확대하는 내용이 포함되는 게 유력하다. 감사위원회는 회사 경영상황 전반에 대한 감시 역할을 하는 견제 기구의 역할을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감사위원회를 최대한 우호적인 인사들로 구성하는 게 중요하다.
상법 개정안이 올 여름 공포된다 하더라도 내년 3월 있을 정기 주주총회에서는 분리선출되는 감사위원이 1명이면 되는 데다, 감사위원회 위원 임기 종료 전까지는 적용된 상법 개정안에 따라 선출할 필요가 없다. 감사위원회를 최대한 우호적인 인사들로 구성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 셈이다.
다른 관계자는 "상법 개정안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꾸준히 내왔지만 이제는 통과를 기정사실화 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기업의 지배력을 공고히 하기 위한 방안이 본격화 하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