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라 칼레니우스 메르세데스-벤츠 회장이 삼성·LG·HS효성 수뇌부와 연쇄 회동에 나섰다. 벤츠가 배터리·디스플레이·센서·차량용 반도체 등 전장 파트너십을 재정비하는 시점과 맞물려 한국이 글로벌 전장 공급망 재편의 핵심 무대로 부상했다는 평가다. 글로벌 완성차의 판이 흔들리는 가운데 한국 전장 기업이 '티어1'로 도약할 결정적 기회를 맞았다는 분석이다.
LG부터 찾은 벤츠…'원 LG' 완성할까
칼레니우스 회장은 13일 방한 직후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조주완 LG전자 CEO, 정철동 LG디스플레이 CEO,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CEO, 문혁수 LG이노텍 CEO 등 LG 전장 4개 계열사 수장을 만났다.
회동 중심에는 LG가 자동차 전장 기술을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 제안하는 '원 LG' 전략이 놓였다. △LG전자는 차 안의 소프트웨어와 인포테인먼트 △LG디스플레이는 대형 OLED 패널 △LG에너지솔루션은 전기차 배터리 △LG이노텍은 카메라·레이더 등 자율주행 센서를 맡는다. 완성차 업체 입장에선 개발 효율을 높이고, LG 역시 계열사 간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식이다.
LG와 벤츠가 20년 가까이 긴밀한 파트너십을 이어온 점도 이번 회동의 배경이다. 벤츠의 플래그십 전기차 EQS에 탑재된 'MBUX 하이퍼스크린'은 LG디스플레이의 P-OLED 기술로 구현됐다. P-OLED는 플라스틱 기판을 사용해 곡면 설계와 경량화를 가능하게 하는 패널로, 벤츠가 지향하는 대형 파노라믹 디스플레이에 최적화된 기술이다.
LG전자는 SDV(소프트웨어 정의 차량) 전환의 핵심인 인포테인먼트와 ADAS 기능을 공동 개발해왔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9월 벤츠에 약 15조원 규모 차세대 원통형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하며 핵심 파트너로 자리 잡았다.
4개 계열사 중 LG이노텍만 벤츠와 직접 거래가 없다. 이번 협상에서 카메라 모듈·라이다·레이더 등 LG이노텍의 자율주행 핵심 센서 기술이 협상 대상에 오를 가능성도 있다. LG이노텍까지 합류하면 '원 LG' 패키지는 차량용 디스플레이부터 배터리·센서·소프트웨어까지 완성차가 요구하는 전장 요소 전반을 포괄하는 구성으로 확장된다.
조주완 CEO는 약 한 시간의 회동을 마친 뒤 앞으로의 협력 방향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그는 "그간 SDV가 미래차의 핵심 화두였다면 그 중심이 이제 인공지능(AI) 기반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며 "이 변화 속에서 어떤 도전이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협력을 확장할지 심도 있게 논의했다"고 말했다.
전장 사업 수주잔고가 100조원대에서 유지되는 데 대한 질문에는 "현재 약 100조원 규모 수주를 확보하고 있고 매출 인식으로 감소하는 부분보다 더 큰 신규 수주가 지속될 것"이라며 "성장 궤도에 대한 자신감은 변함없다"고 강조했다.
이재용이 영접…벤츠에 배터리 꽂을까
LG 회동 이후 칼레니우스 회장의 다음 일정은 삼성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만찬을 마련해 직접 영접에 나선다. 지난 3월 중국 발전포럼에서 칼레니우스 회장과 만난지 8개월 만에 다시 한 테이블에 앉게됐다.
협상 대상은 차량용 반도체·OLED·배터리 등 핵심 전장 분야가 예상된다. 업계에서는 이번 만찬이 사실상 '삼성 전장 포트폴리오 총점검' 성격을 띤 자리라는 해석도 나온다.
삼성이 특히 공을 들이는 분야는 배터리다. 국내 배터리 3사 중 벤츠에 제품을 공급하지 않는 곳은 삼성SDI가 유일하다. 이 때문에 최주선 삼성SDI 사장과 이청 삼성디스플레이 사장이 배석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업계에선 "삼성이 직접 세일즈에 나섰다"는 평가도 나온다.
삼성전자 DS부문과 삼성SDI는 BMW·아우디 등 글로벌 프리미엄 브랜드와 협력해온 경험이 있지만 벤츠와 직접 거래 실적은 없다. 삼성디스플레이 역시 차량용 OLED 패널 공급을 놓고 협의를 이어가고 있어 이번 회동이 공급망 진입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
협력 범위는 반도체까지 포함될 수 있다. 현재 벤츠의 차량용 시스템온칩(SoC)은 엔비디아가 공급한다. SoC는 차량의 인포테인먼트·센서 데이터 처리·주행 제어 등 핵심 연산을 통합하는 '차량의 두뇌' 역할을 한다. 다만 메모리·전력관리칩(PMIC)·레거시 MCU 등 주변부 차량용 반도체는 삼성전자가 강점을 보유한 영역이다.
자회사 하만을 통한 인포테인먼트·차량용 오디오 플랫폼 확장도 잠재 협력 분야로 꼽힌다. 삼성 입장에선 전장 포트폴리오를 패키지로 제안해 벤츠 공급망 재진입을 노릴 수 있는 적기다.
이 회장이 지난 3월 중국 발전포럼에서 칼레니우스 회장과 나란히 만난 데 이어 8개월 만에 다시 한 테이블에 마주하는 만큼, 삼성의 의지가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해졌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HS효성과 모빌리티 확장 논의…한국서 전장 풀세트 점검
이날 조현상 HS효성 부회장과의 회동도 예정돼있다. HS효성은 수도권 전역에서 벤츠 판매·서비스를 맡는 '더클래스효성'의 모기업이다. 벤츠는 이번 방한을 계기로 한국 판매 네트워크 확대와 애프터서비스 고도화 등 현지 전략을 점검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HS효성 역시 전통적인 딜러망 운영 경험을 기반으로 모빌리티 신사업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단순 판매·서비스를 넘어 모빌리티 솔루션 분야까지 협력 범위를 넓히는 방안이 이번 논의에서 다뤄질 가능성이 크다.
오는 14일에는 인천 파라다이스시티에서 '미래 전략 컨퍼런스'가 열린다. 벤츠는 이 자리에서 전기차 전환 속도 조절, 배터리 공급망 안정화, SDV 전환 등 차세대 전략을 공식화할 전망이다.
이번 방한을 글로벌 전장 공급망 재편의 신호로 해석하는 시각도 많다. 전기차·SDV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완성차가 필요로 하는 핵심 전장 부품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고, 그 기술 중심에 한국 기업이 있기 때문이다. 메모리 반도체·OLED 패널·고에너지밀도 배터리·자율주행 센서 등 차세대 차량 경쟁력을 좌우하는 기술 상당수가 이미 한국 기업의 주력 분야로 자리 잡았다.
업계는 이날 연쇄회동을 "벤츠가 공급망을 한국 중심으로 재정비하려는 포석"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업계 내에선 "프리미엄 완성차의 핵심 부품을 한 국가에서 통합적으로 조율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은 벤츠에 가장 효율적인 전략 파트너"라는 평가가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