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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퇴직연금]② 운용의 질 vs 사용자 부담

  • 2014.05.06(화) 08:54

계약형은 운용의 질 담보못해.."기금형 도입" 요구 높아
기업 비용 커지는 것 부담.."한국 여건 고려해야" 지적도

퇴직연금이 몸집만 불리고 내실을 채우진 못했다는 지적이 일면서 퇴직연금 제도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가장 빈번하게 거론되는 것이 바로 기금형 퇴직연금제도의 도입이다. 현재 국내 퇴직연금은 계약형 형태를 띠고 있다.

 

하지만 기금형 도입이 능사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제도를 개편해 양질의 풍토를 조성하는 것도 급하지만 국내 여건을 고려할 때 기금형을 도입하더라도 퇴직연금이 하루아침에 높은 수익률을 내고, 모든 것을 해결할수는 없다는 얘기다.

 

◇ 운용의 질과 성과 높이는 기금형 도입 촉구

 

국내 퇴직연금 제도가 채택하고 있는 계약형 지배구조는 퇴직금 관리나 운용을 연금사업자인 금융회사에 위탁하는 형태다. 따라서 근로자의 참여가 제한되고 전문성과 경쟁력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본래 계약형이더라도 운용관리와 자산관리계약을 별도 맺게 되면 감시와 견제가 가능하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금융회사의 마케팅이나 수수료 절감, 편의성 등이 고려되면서 두 계약을 동일한 퇴직연금사업자와 맺는 경우가 대다수다.

 

반면 기금형은 퇴직연금을 제공하는 기업과 별도로 독립법인 형태의 연기금을 반드시 설치 운영해야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전문성이 높다. 기금 차원에서 전문적인 펀드매니저를 고용해 운용하는 만큼 운용의 질이 한층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높은 수익률로 연결될 수 있다. 실제로 영국이나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기금형 퇴직연금제도가 보편화돼 있다.

 

▲ 퇴직연금 지배구조 비교(출처:자본시장연구원)

 

초기 퇴직연금 도입할 때는 상대적으로 기업이나 근로자 부담이 적은 계약형 지배구조가 대세였다. 제도도입 자체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제도운용이 상대적으로 단순한 계약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측면이 있었다.

 

퇴직연금 제도가 어느정도 정착되면서 양보다 질적인 측면에 대한 개선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독립적으로 설치된 연기금을 통해 운용, 관리하는 기금형은 기금운영에 대한 감시나 감독이 쉽고, 운용상품의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 전문적인 자산운용으로 수익률을 높이고 퇴직연금 가입이 늘면 자본시장에서도 선순환이 일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기관간 경쟁이 가능해지기 때문에 투자자의 선택권이 넓어지고 운용기금 차원에서는 더 나은 수익률을 제공하려는 노력이 배가될 수 있다.

 

박종수 금융투자협회장은 작년부터 기금형 퇴직연금제의 조속한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금투협은 또 다른 걸림돌로 지목되는 개별자산 한도 폐지 등의 운용 규제 개선에도 적극적이다. 신제윤 금융위원장도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 추진을 표명하는 등, 정책 당국도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 도입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 기업비용 부담 커져..고용노동부 "사용자 입장도 고려"

 

다만 기금형 전환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기업 입장에서는 비용이 상대적으로 많이 드는데다 의무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자금이 더 유입되고 전문적인 기금이 생기더라도 결국 이를 제대로 운용하지 못한다면 퇴직연금을 더 큰 위험으로 내몰 수 있다. 

 

신중한 쪽은 "기업 입장에서는 기금을 운용하는 수탁자에 보수를 지급해야 하기 때문에 계약형보다 관리비용이 증가할 것"으로 우려한다. 또 이사회 구성과 운영을 둘러싼 갈등이나 전문인력 등 인프라 부족, 감독 곤란에 따른 가입자보호 취약 등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다고 지적한다.

 

심수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원은 "단기적으로 비용 부담이 기업의 도입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도입 시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안도 함께 고려되야 한다"고 조언했다.  기금형을 채택하되 중소기업들의 부담을 고려해 계약형을 병행하는 것도 방법이다.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는 검토 초기 단계에 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기금형 도입을 촉구하는 쪽이 한정돼 있는 만큼 사용자나 기업 측면에서도 기금형의 장단점을 봐야할 것"이라며 "현재로서는 구체적인 일정이나 계획이 잡힌 것은 없다"고 말했다.

 

보다 근본적인 부분이 해결되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를테면 투자자들의 투자성향의 문제다. 근로자들이 한국의 금융시장을 바라보는 시각은 갈수록 악화되고 만족스러운 수익률을 안겨줄 것이란 믿음이나 신뢰가 부족하다.

 

또 과거보다 소득안정성은 더 떨어지면서 포트폴리오 선택은 계속 보수적일 수 있다. 틀을 바꾼다고 돈이 쉽게 이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김재칠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소득안정성은 자영업자 비율이 낮을 수록 높은데 한국의 경우 자영업자 비중이 40%에 달한다"고 말했다. 44개국 평균치인 23.3%보다도 훨씬 높은 수준이다.

 

홍성국 KB대우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에도 공감하지만 결국 제대로 된 제도 하에서 투자자들이 위험자산에 스스로 투자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투자자들에 대한 제대로된 교육과 문화가 형성돼야 주식시장으로도 퇴직연금 자금이 유입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저금리로 인해 자금운용이 쉽지 않고 한국 주식시장의 수익률이 변변치 않은 만큼 여건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예상치 못한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공격적으로 운용됐던 주식형 펀드들이 실망스러운 수익률을 제공한 만큼 보수적인 운용이 무조건 나쁘다고 볼 수 없다는 반론도 있다.

 

기금형의 가장 큰 장점으로 근로자의 수급권 보호 측면이 부각되고 있지만 현재의 투자문화상 근로자의 능동적인 참여가 가능할지 여부에 의문을 표시하는 쪽도 있다. 기금형 도입으로 개별 연기금으로 운용이 분산되면 직접적인 감독은 어려워진다.

 

남재우 자본시장 연구위원은 "연금 전문인력에 의한 자율적인 감독 기능이 강화되야 하기 때문에 추가적인 비용이 발생한다"며 "제도가 어느정도 정착이 돼야 자율감독기구가 근로자와 수탁자 간의 이해상충 가능성을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용어설명 : 계약형과 기금형

 

퇴직연금 지배구조는 운용형태와 사용자, 운영관리기관 및 자산관리기관의 역할관계 등에 따라 계약형과 기금형으로 분류된다. 계약형은 연금제도에 대한 관리 및 기금운용을 일괄적으로 연금사업자인 금융회사에 위탁하는 형태로 금융회사와 가입자인 근로자 간에 이해상충 발생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기금형은 퇴직연금을 제공하는 회사와 별도로 독립법인 형태의 연기금을 설지해 운용하는 구조로 기금에서 직접 전문적인 펀드매니저 등을 고용해 기금을 운용한다. 연기금위원회가 연금에 대한 주요 결정을 하며 개별 연기금이 운용감독 대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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