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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Story] 스타 펀드매니저의 명과 암

  • 2014.10.07(화) 15:43

'채권왕' 빌 그로스를 아시나요. 채권부터 익숙치 않은 분도 계시겠지만 글로벌 채권업계의 '워런 버핏'이라고 하면 이해가 조금 더 빠를 것 같습니다. 빌 그로스는 채권왕으로 불리울 정도로 유명합니다. 채권왕이란 호칭은 그가 채권투자에서 탁월한 실력을 발휘하자 2001년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이 붙여준 겁니다.

 

빌 그로스는 채권투자펀드 업체인 핌코와 항상 붙어다녔는데요. 그도 그럴 것이 그로스가 바로 핌코를 설립했고 아주 오랫동안 최고투자책임자(CIO) 역할를 맡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로스가 운용한 핌코의 토탈리턴펀드는 채권시장 역사를 새로 쓴 것으로 평가받는데요. 전체 수탁고가 한때 2900억달러(310조원)에 달하면서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뮤추얼펀드로 성장했습니다.

 

자, 여기까지는 과거형입니다. 그로스는 최근 야누스캐피털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가 핌코를 떠난다고 밝힌 후 미국 채권시장은 그야말로 요동쳤습니다. 그로스 없는 핌코 펀드에서 고객들의 환매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다른 투자자들이 미리 국채를 내다팔았기 때문인데요. 그만큼 시장의 충격은 컸고 이른파 '펀드매니저 프리미엄'을 새삼 실감케 했습니다.

 

그로스가 이직하기 전부터 핌코는 물론 그로스에게는 이미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그로스는 최근까지 시장 예측에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수익률도 기대에 못미쳤습니다. 토탈리턴펀드는 지난해 1999년 이후 처음으로 손실을 냈습니다. 투자자들은 냉정했고 1년에 걸쳐 이미 자금이 꾸준히 빠져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로스의 굴욕은 상당히 오랫동안 진행형이었습니다. 2011년 그로스는 미국 국채를 팔라고 했지만 오히려 안전자산 선호가 강화되며 미국 국채는 랠리를 보였습니다. 이후에도 그의 엇박자 전망은 최근까지 지속됩니다.

 

사실 이런 모습은 시장에서 꽤 익숙합니다. 그로스 외에 내로라하는 다른 투자 귀재들도 항상 예측이 적중하는 것은 아닙니다. 위기를 예측해 큰 돈을 벌며 명성을 얻었던 이들은 시간이 지난 후에는 의외로 성과를 잘 내지 못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시장을 이기는 것은 힘이 듭니다.

 

게다가 그로스는 앞서 핌코를 떠난 엘 에리언과의 불화설이나 자신의 투자분야와 방식을 끝까지 고수하려 하면서 독선과 아집을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특히 에리언이 떠난 후 새롭게 만들어진 팀과 그로스는 더 큰 의견충돌을 겪었다고 합니다.

 

 

그로스가 떠나면서 그로스와 핌코 모두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로스는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너무 오래 머물며 그의 방식을 고집하려다 결국 조직이 그를 내치기 전에 스스로 물러난 모양새입니다. 최근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나이든 왕을 그의 가신들이 쓰러뜨렸다고 표현했습니다.

 

핌코도 상징적인 인물이 떠나면서 자금이탈이 지속될 전망입니다. 그로스를 믿고 따르는 투자자들은 여전하고 일부는 야누스캐피털로 옮겨갈 수도 있습니다. 스타 펀드 매니저에 지나치게 의존했던 대가이기도 합니다.

 

핌코의 토탈리털펀드는 한국에서도 투자할 수 있지만 크게 인기를 끌진 못했습니다. 그래도 그로스와 핌코의 몰락이 한국 자산운용업계와 펀드 투자자들에게 시시하는 바가 결코 작지 않습니다.

 

물론 한국에는 그로스의 막강한 영향력에 버금갈 정도의 스타 펀드 매니저까진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름 이름이 있는 펀드매니저를 모셔오면 확실히 수탁고가 달라진다는 게 업계의 전언입니다. 펀드매니저의 운용능력이 수익률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투자자들도 스타 펀드매니저가 이끄는, 이왕이면 규모가 큰 펀드를 선호하기 마련입니다.

 

이런 펀드들에는 함정도 있습니다. 대개 특정 펀드의 최악의 해는 그 펀드가 가장 클 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막판에 투자자들이 올라탄 펀드는 가장 낮은 수익률일 경우가 많습니다. 핌코의 토탈리턴 펀드도 비슷한 예입니다.

 

전문가들은 펀드가 갑작스럽게 높은 수익률을 낼 때는 기술보다는 오히려 운이 작용할 때가 많다고 합니다. 매니저의 운용능력도 중요하겠지만 정보기술(IT)주 강세나 금리 하락처럼 큰 트렌드가 맞물려 수익률을 크게 끌어올리면서 펀드의 성과도 같이 주목을 받고 큰 성공을 거두는 것인데요. 문제는 이런 트렌드는 항상 유지되지 않고 결국 변하기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펀드매니저는 큰 펀드의 성과를 유지하기 위해 더 큰 기업에 투자하거나 더 유동적인 자산에 투자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됩니다. 결국 펀드 수익률은 시장 수익률을 크게 상회하다 시장 수익률까지 낮아지게 돼버린다는 논리입니다. 이를 의식한듯 미국에서는 스타 펀드매니저가 운용하는 것이 아닌 시장 수익률을 추종하는 이른바 '패시브 펀드'로의 이동도 뚜렷합니다. 패시브 펀드가 정답은 아니지만 그저 인기 있고 큰 펀드를 무조건 선호해 왔다면 한번쯤 되새겨 볼 부분입니다.

 

다시 그로스와 핌코의 이야기로 돌아와보죠. 우려했던 대로 핌코에서 그로스가 떠난 후 투자금은 물밀듯이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핌코 CEO는 핌코의 DNA가 여전하다며 투자자 붙잡기에 안간힘이지만 투자자들의 심리는 `그로스가 없는 핌코가 더 잘하든 못하든 일단 빠져나가고 보자`입니다. 아마 핌코가 과거 그로스가 일궜던 최고의 순간으로 되돌아가기는 쉽지 않을 듯합니다. 그로스가 핌코를 떠나 다시 야누스에서 화려하게 부활할까요, 핌코가 그로스 없이 보란듯이 살아날까요. 스타펀드 매니저 프리미엄의 실체가 과연 무엇이었는지 한국 펀드업계도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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