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증권가는 언제나 그랬듯이 내 갈길을 가겠다는 모습입니다. 금융투자협회 공시에 따르면 국내에서 기업 리포트를 작성하는 47개 증권사 가운데, 지난해 말 기준 매도 의견이 한 건도 없는 증권사가 무려 26개에 달합니다. 전체의 55.3% 수준입니다. 심지어 지난 3년 간 단 한번도 '매도' 의견을 제시한 적 없는 증권사들도 무려 18개였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여기에 미래에셋대우, 신한금융투자, 삼성증권, KB증권 등 상황이 좋은 대형증권사들도 모두 포함됐다는 것입니다.
그나마 매도의견을 낸 증권사들도 절반은 '매도' 비중이 10%가 채 되지 않았습니다. 상대적으로 기업들의 눈치를 보지 않는 외국계 증권사들만이 의미있는 비중으로 '매도' 의견을 제시했네요. 특히 CLSA코리아가 38.4%로 '매도' 의견을 제시했고, 메릴린치와 모간스탠리가 각각 24.5%, 20.1% 비중으로 '매도' 의견을 냈습니다. 이밖에 맥쿼리, UBS, 씨티그룹글로벌마켓 등도 15% 수준의 '매도' 비중을 나타냈습니다.
종목별로 들어가볼까요. 모간스탠리가 올 들어 삼성SDI에 대해 '매도' 의견을 제시했는데요. 중국 업체들의 공격적인 증설로 올해 배터리 판매 가격이 하락하면서 전기차 배터리 생산을 하는 삼성SDI가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이유에섭니다. 이같은 부정적 이슈와 더불어 1분기 적자가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국내 증권사들은 '매도'가 아닌 '매수' 혹은 '중립' 의견을 내는데 그쳤습니다.
이처럼 대조적인 모습은 조금 낯부끄럽습니다. 국내 증권사 나름의 고집인 것인지, 여전히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 그들을 가로막고 있는 것인지 안타깝기도 합니다.
◇ 최소 비율 지정·애널리스트 평가제 도입 등 실질적 대안 필요
금융당국도 이를 모를리 없겠죠. 작년에도 팔을 걷어붙였고 여전히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습니다. 투자의견 뿐 아니라 현실과 동떨어진 내용과 목표주가 등에 대한 전반적인 대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앞서 마련한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애널리스트들의 보수산정기준을 명확하게 해 리포트 품질과 기업영업 실적 등이 별도로 평가받을 수 있게 한다는 방침을 내놨고, 목표주가와 실제주가 간 괴리율도 공시하다록 했습니다. 더불어 증권사와 상장사의 갈등사례를 제보하는 불합리한 리서치관행 신고센터를 설치해 시장 환경 정비에도 나선다고 하는데요.
현실적으로 객관적 평가가 가능하도록 증권사들이 내놓는 투자의견 '매도' 비율의 최소한의 범위를 지정해주는 방향이나, 괴리율 공시에서 더 나아가 애널리스트 신뢰도를 평가하는 평가제 도입 등 추가적인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올해 만큼은 여전히 역주행중인 증권사 리포트가 제 길로 들어서는 분수령이 되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