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들이 1년 만에 웃었다. 국내외 증시가 호조를 보이면서 주가연계증권(ELS) 조기상환과 재발행에 따른 수입이 늘었고, 금리 상승세가 한풀 꺾이면서 채권운용 수익도 회복했다.
특히 ELS의 자체 헤지(위험회피) 비중에 따라 실적이 갈렸다. ELS 자체 헤지 비중이 높으면 조기상환에 따른 수입도 더 늘어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투자증권은 자체 헤지 비중이 높았던 데다 기업금융(IB) 부문에서도 선전하면서 덕분에 이익이 가파르게 늘면서 올해 1분기 넘버원 자리를 꿰찼다.
합병 증권사들도 좋았다. 합병 과정에서 일회성 비용으로 지난해 4분기 적자를 봤던 미래에셋대우와 KB증권은 나란히 큰 폭의 흑자로 돌아서면서 대형사로서의 자존심을 지켰다. 앞으로 합병 시너지를 본격화하면서 치열한 선두 다툼도 예고했다.
메리츠종금증권은 800억원이 넘는 순이익을 내면서 1분기 기준으로 사상 최대 성과를 냈다. 다만 대형 증권사들의 실적이 더 가파르게 좋아지면서 1위 자리를 내주고 5위권으로 밀렸다.
◇ 한국투자, 덩치는 5위지만 순이익은 톱
올해 1분기 왕좌는 한국투자증권의 몫이었다. 사상 최고치인 1300억원에 달하는 순이익을 내면서 기존 1위였던 메리츠종금증권과 합병 대형사인 미래에셋대우, KB증권 등을 모두 제치고 1위에 올랐다.
한국투자증권은 자기자본 4조원 이상 초대형 IB 5개사 가운데 덩치가 가장 작다. 그런데도 미래에셋대우와 NH투자증권, 삼성증권, KB증권 등 대형사들을 모두 따돌리고 1위에 오르는 저력을 과시했다. 기업금융(IB) 부문에서 NH투자증권과 양대산맥을 형성하면서 강자의 면모를 보였고, 대체투자상품 부문에서도 성과를 냈다.
메리츠종금증권의 경우 1위 자리를 내주긴 했지만 IB와 트레이딩 부문 모두 호조를 보였다. IB의 경우 1분기가 전통적 비수기임에도 대규모 딜을 잇따라 성공했고, 트레이딩 역시 그동안 우수한 트레이더를 꾸준히 영입해온 결실을 보기 시작했다. 다만 자기자본 경쟁에서 대형사에 밀리면서 5위로 밀렸다.
◇ 미래에셋대우, KB 등 합병 효과 본격화
합병 증권사들도 본격적으로 합병 효과를 누리기 시작했다. 미래에셋대우는 신흥시장과 미국 금융채 위주의 적극적인 투자로 올해 1분기 트레이딩 부문의 이익이 868억원에 달했다. 덕분에 1분기 연결 순이익은 1101억원으로 뛰면서 흑자전환했다. 미래에셋대우는 옛 미래에셋증권과 대우증권의 합병 과정에서 발생한 일회성 비용으로 지난해 4분기 적자를 기록했었다.
앞으로 시스템 통합과 함께 정상적인 영업 환경이 만들어지고, 합병에 따른 일회성 비용을 모두 반영하면 이익 개선 폭은 갈수록 커질 전망이다. 실제로 올해 1분기에도 옛 대우증권 직원에 대한 인사제도 개편 협의금 지급 등 일회성 비용이 발생하면서 순이익을 갉아먹었다.
KB증권 역시 지난해 연말까지 합병 비용을 모두 털어내면서 올해 1분기 연결 기준 순이익이 1088억원으로 올랐다. IB와 세일즈앤드트레이딩(S&T)을 중심으로 전 부문에서 수익성이 좋아졌다. KB증권 역시 앞으로 성장 잠재력이 크다. KB국민은행과의 연계 영업 시너지가 본격화하고 있고, KB금융그룹 차원에서 집중하고 있는 자산관리(WM)와 기업투자금융(CIB) 관련 협업도 순조롭게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 결국 IB 경쟁력에서 승부 갈려
NH투자증권과 삼성증권, 대신증권 등도 순이익이 전분기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10대 대형 증권사 가운데 유일하게 하나금융투자만 순이익이 줄었다. IB 경쟁력에서 승부가 갈렸다. 1분기 계절적 비수기를 뚫고 IB 부문에서 성과를 낸 증권사는 이익 상승 폭이 컸던 반면 그렇지 못한 증권사들은 상대적으로 주춤했다.
실제로 삼성증권은 ELS 조기상환이 늘면서 전분기 대비 순이익이 120% 가까이 급증했지만 IB 부문에서 큰 수익을 못 내면서 순위가 7위로 밀렸다. 8위에 머문 신한금융투자도 순이익이 460억원에 달했지만 IB 수수료 수익이 줄면서 상대적으로 이익 개선 폭이 크지 않았다.
하나금융투자 역시 기업공개(IPO) 시장에서 1건도 주관하지 못했고, 주식발행(ECM)과 채권발행(DCM) 시장에서도 순위권 밖으로 밀려나면서 10위에 턱걸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