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빌리티 시장에서 세계 제일의 도요타와 인공지능 분야의 소프트뱅크가 새롭게 진화한 모빌리티를 만들 겁니다"
손 마사요시(孫正義·61) 소프트뱅크그룹 회장 겸 사장과 도요타 아키오(豊田章男·62) 도요타자동차 사장이 지난 4일 일본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동출자회사 설립을 천명했습니다. 합작 기업의 이름은 '모네(MONET) 테크놀로지스'. 초기 자본금은 20억엔으로 소프트뱅크와 도요타가 각각 50.25%, 49.75% 비율로 출자합니다.
모네테크놀로지스는 차량 공유 서비스와 자율주행자동차 보급에 주력하기로 했습니다. 일본 혼다가 미국 제네럴모터스(GM) 자회사 GM크루즈에 850억엔(약 8460억원) 규모 출자를 단행하고 현대자동차도 미국 유럽 모빌리티 업체들과 협력 방안을 모색하는 등 업체 간 합종연횡이 활발한 가운데 도요타와 소프트뱅크의 협력 방안이 새로운 모멘텀을 만들어낼지 이목이 집중됩니다.
◇도요타 '선택과 집중'…"생사를 건 싸움 시작"
도요타는 일본 시가총액 1위 기업입니다. 5일 종가 기준 시가총액은 약 23조엔(약 230조원)으로 도쿄증권거래소 제1부 시가총액의 4%가량을 차지합니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2조3999억엔(약 23조8100억원)으로 전년대비 20.3% 증가했습니다. 같은 기간 순이익은 2조4940억엔(약 24조7500억원)으로 1933년 설립 이후 역대 최고치를 달성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5월 이같은 실적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장에서 도요타 사장은 "자동차 산업은 100년에 한 번 온다는 대격변 시대를 맞이하면서 경쟁 규칙이 바꼈다"며 "마치 미지의 세계에서 생사를 건 싸움이 시작된 것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샴페인을 터뜨릴 수 있었지만 경계 태세 강화를 강조한 그의 발언에 시장은 주목했습니다.
도요타는 일본의 대표적 기업으로 꼽히지만 예년에 비해 위상이 떨어진 것도 사실입니다. 도요타는 시총 규모로 2007년 세계 10위에 들었지만 현재는 30위권으로 밀려났습니다. 애플 알파벳 아마존 알리바바 등 미국과 중국 IT 기업들이 시총 상위권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습니다.
일본의 한 경제비평가는 "애플과 아마존 등 글로벌 IT기업들의 시가총액은 1조달러를 넘는 데 반해 도요타는 그의 5분의 1수준밖에 안된다"며 "애플 알파벳 등이 자율주행차량 사업과 같은 미래차 사업 진출을 선언한 만큼 이들이 도요타를 인수하겠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 돼버렸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시장 상황을 감안해 도요타가 채택한 전략은 '선택과 집중'입니다. 지난 6월 도요타는 일본 덴소에 전자부품사업을 이관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덴소는 도요타가 1949년 출자해 설립한 자동차 부품제조 기업입니다. 도요타가 지분 24.42%를 갖고 있습니다. 도요타는 전자부품사업의 핵심 중 하나로 꼽히는 파워컨트롤유닛 생산공장 이전을 시작으로 이 사업 부문 전 과정을 2022년까지 일관하겠다고 했습니다.
시장 운영권도 줄이기로 했습니다. 아프리카 54개국 중 53개국에서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관계회사 도요타통상에 아프리카 시장 운영권을 넘기기로 했습니다. 전세계에서 무역 상사 업무에 주력하는 도요타통상이 도요타자동차보다 아프리카 시장에서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겠다는 취지에서입니다.
반면 일본 국내 택시 배차 서비스 시스템 구축 사업에 나선 한편, 세계 65개국 600여개 도시에서 차량공유 서비스를 제공하는 우버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차량 호출 및 배차 서비스에 주력하는 그랩에 수천억원을 연속 출자하는 등 차량 공유사업 확대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우버가 도쿄를 비롯한 세계 주요 도시에서 추진하고 있는 '택시 비행기 사업'에도 참여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자율주행자동차가 등장하고 차량 공유 서비스가 확대되면 차 안에서 영화를 보거나 쇼핑을 하는 시간이 늘어나 사물인터넷(IoT) 기술이 각광받을 거라는 예상은 이전부터 제기돼왔습니다. 소프트뱅크와의 협업이 도요타의 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는 모멘텀이 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도요타 주가는 5일 종가 기준 7002엔으로 2016년 중순 5100엔대 저점에서 등락을 반복하며 완만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중입니다.
◇M&A로 큰 소프트뱅크, 성장성 탄력받나
도요타에 못지않게 신사업 진출에 의욕적인 기업 중 한 곳이 소프트뱅크입니다. 소프트뱅크의 주력 분야는 통신 사업입니다. 시장조사기관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올 3월 말 기준 소프트뱅크의 일본 국내 통신시장 점유율은 23.6%로 NTT도코모 AU에 이어 3위를 기록했습니다.
소프트뱅크는 개인 컴퓨터용 패키지 소프트웨어 유통업으로 시작해 인터넷 포털사이트 야후 운영으로 사업 규모를 증폭시켰습니다. 2004년부터 2013년까지 일본텔레콤과 영국 보다폰, 미국 스프린트 등을 인수하며 사업 규모를 크게 확대시켜나가고 있습니다.
주력 분야는 통신 사업이지만 향후 소프트뱅크의 모습은 통신 회사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영국 반도체 제조기업 암(Arm)과 인도 전자결재 서비스 기업 페이틈, 중국 이커머스 업체 알리바바 등을 통해 사업 다각화를 모색하고 있는 까닭입니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1조3038억엔(약 12조9400억원)입니다. 이는 전년대비 27.1% 증가한 것으로 2015년 이후 3년 연속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주가도 지난 3년간 꾸준히 올라 5일 1만1075엔으로 장을 마감했습니다. 시총 규모는 약 12조3300억엔(약 122조3100억원)으로 도요타를 제외하면 일본에서 가장 큰 규모입니다.
주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실적이라고 하지만 소프트뱅크가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는 건 소프트뱅크의 행보와도 관련이 있다는 분석입니다. 소프트뱅크가 미래 사업 분야 개척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프트뱅크의 최대주주는 우리나라에서도 재일교포 3세 경영인으로 유명한 손 마사요시(손정의) 회장입니다. 손 회장의 지분은 21.22%입니다. 그는 현재 소프트뱅크그룹 회장 겸 사장직을 수행하면서 관계회사인 알리바바에서 디렉터직과 미국 통신회사 스프린트 회장직을 동시에 맡고 있습니다.
손 회장이 주목하는 분야는 '인공지능(AI)' 분야입니다. 그는 "앞으로 AI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고 말할 만큼 이 분야 기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기술이 효과적으로 사용될 거라고 보는 분야가 바로 차량 사업입니다. 손 회장은 올 초 지난해 결산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자동차는 교통기관이라는 시점에서 하나의 부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라며 "교통 플랫폼을 갖추는 기업이 경쟁력을 얻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손 회장의 생각은 소프트뱅크 행보에서 잘 나타납니다. 소프트뱅크는 지난해 100조원 규모 펀드를 조성해 중국 차량공유서비스업체 디디추싱과 동남아시아의 그랩에 투자했습니다. 작년 말엔 우버에 출자를 단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도요타와의 협업도 이 분야 사업 확대의 일환으로 볼 수 있습니다. 소프트뱅크가 갖고 있는 다양한 데이터를 활용해 차량 공유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를 통해 강력한 플랫폼 기업으로 성장해나간다는 계획입니다.
일본 정부의 연이은 유동성 공급 정책으로 일본 기업들은 꾸준한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는 중입니다. 지난달 말 닛케이225 지수는 8개월만에 2만4000선을 넘기도 했습니다. 그간 꾸준히 성장세를 유지해온 소프트뱅크의 주가가 지금과 같은 탄력을 유지할지 시장의 관심이 집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