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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독립공채, 예탁결제원이 있었더라면

  • 2018.10.11(목) 07:29

'독립공채'로 본 예탁결제원의 역할

"그대가 내 양복을 입고 애국을 하든 매국을 하든 난 그대의 그림자가 될 것이오. 허니 위험하면 달려와 숨으시오"

최근 인기리에 종영된 드라마 '미스터션샤인'에서 김희성(변요한 분)은 주인공 고애신(김태리 분)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미스터션샤인은 1900년대 초반 조선이 무대입니다. 조선 최고 부잣집 외아들로 부러운 것 하나 없이 자란 김희성은 양반집 규수 고애신을 짝사랑하는 인물로 묘사됩니다. 고애신은 의병 활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있었고, 김희성은 고애신의 영향을 받아 극 후반부에 달해선 자신의 재력으로 신문사를 설립, 의병 활동에 힘을 보태게 됩니다.

극 중 김희성은 당시 의병 활동에 가담하게 된 역사 속 인물들을 대변합니다. 의병 활동은 1945년 해방 전까지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지속됐습니다. 하지만 서양 열강과 일본의 조정 간섭이 노골화하고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화하면서 의병 활동을 위한 자금 조달은 힘들어지고 음지에서 활약하던 선조들의 삶도 피폐해져 갔을 겁니다.

 

 

이승만이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낸 것이 이맘때입니다. 그는 임시정부 이름으로 채권을 발행하고 독립을 하면 이자와 함께 상환을 한다는 계획을 내걸었습니다. 이른바 '독립공채(아래 사진)'입니다.

임시정부는 연 5% 이자의 원화 독립공채와 연 6%의 달러 독립공채를 1919년부터 정부 수립된 해인 1948년까지 29년간 찍어냈습니다. 독립 후 5년에서 30년 내에 원리금을 갚는다는 조건도 걸었습니다. 이승만은 독립공채를 미국 뉴욕의 월스트리트가로도 가져갔습니다. 독립공채가 유통되면 거액의 자금이 조달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 같습니다.

외국인들의 반응은 기대와는 달리 냉담했다고 전해집니다. 채권 상환의 전제가 당시 음지의 존재에 지나지 않았던 대한민국의 독립이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립공채는 상당량 유통되는 데 성공했습니다. 재미동포들과 국내 지주들이 독립을 염원하는 마음으로 채권 매수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독립 후 정부의 태도는 180도 달라졌습니다. 1950년 6월10일자 동아일보 기사는 서울에 사는 안 모씨가 독립공채 상환을 요구했지만 정부가 이를 거절했다고 전합니다. 상환 의무와 그에 따른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는군요.

상환은 그로부터 한참 뒤입니다. 1983년 12월 국회는 '독립공채 상환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통과시켰습니다. 특별법은 국내 상환 신고 기간을 2000년 12월31일로 설정해 독립공채 상환의무는 현재 종료된 상태입니다. 1984년부터 2000년까지 신고된 건수는 총 57건. 실제 독립공채 채권 발행량에 비해 10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당시 증권 거래는 종이로 된 실물을 주고받는 데서 이뤄졌으니 수십년간 이 실물 증권을 보관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거라 짐작됩니다. 독립공채를 매수한 분들 중엔 이미 세상을 떠난 분들도 적지 않을 테고 일제가 독립공채를 보유하는 것 자체를 불법으로 삼았으니 자기 손으로 없앴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시장이 발전하려면 인프라가 필요합니다. 증권 거래가 1900년대처럼 직접 실물 거래를 통해 이뤄진다면 지금의 증권 시장이 이렇게 커질 수 있었을까요? 종이 증서를 수십년간 보관해야 한다면 아마 지금과 같은 증권 시장은 형성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클 겁니다.

이런 측면에서 한국예탁결제원의 역할은 증권 시장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예탁결제원은 1974년 설립됐습니다. 한국증권대체결제주식회사가 모체죠. 증권사와 거래소 간 증권 거래를 처리하고 실물 증권이 있는 경우 이를 맡아 보관함으로써 안정적인 증권 거래를 도모합니다. 

예탁결제원이 맡아 두고 있는 실물 증권 규모만 약 4000조에 달한다고 하니 그 역할의 중요성이 짐작이 가시나요? 독립공채가 유통되던 시절 예탁결제원같은 기관이 있어 그 증서가 지금까지 변함없이 보존됐더라면 뜨거운 마음을 담아 독립을 염원하던 사람들의 마음이 조금은 위로받았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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