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금융투자와 KB증권에 이어 업계 1위 미래에셋대우가 희망퇴직을 단행하고 있다. 여의도에 부는 감원 바람은 주로 합병을 통해 성장한 초대형 증권사에 몰아치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과거 금융위원회가 추진했던 초대형 투자은행(IB) 육성책에 맞춘 증권사 간 경쟁으로 업계가 뜨겁게 달아 올랐으나 회사에 몸담은 직원 입장에선 지금이 살얼음판이다. 증권업계 구조조정 움직임과 배경에 대해 짚어본다. [편집자]
미래에셋대우 250여명, KB증권 60여명, 신한금융투자 33명.
작년말부터 주요 증권사들이 단행했거나 진행 중인 희망퇴직 규모다. 이들 3개사를 제외하고 아직까지 감원에 나선 증권사는 없으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작년 하반기에 이어 올해에도 증시 불황으로 인한 거래대금 감소가 예상돼 당분간 사업 환경이 녹록치 않을 것으로 우려되기 때문이다.
각종 경제 지표가 악화하고 미중 무역분쟁으로 인한 글로벌 증시 불안정성이 지속하고 있어 몸집을 가볍게 줄여 시장 불확실성에 대응하려는 증권사들이 추가로 나오지 않겠느냐란 전망이다.
◇ 미래에셋대우 합병 3년차 첫 희망퇴직
17일 미래에셋대우에 따르면 지난 7일부터 11일까지 진행한 희망퇴직 접수에 약 250명이 지원했다. 미래에셋대우는 이 가운데 자격 조건에 맞는 지원자를 선별해 이르면 오늘 중으로 희망퇴직자를 확정할 예정이다.
희망퇴직 대상자는 일반직은 10년 이상 근무자 가운데 45세 이상을 대상으로, 업무직은 8년 이상 근무자 중 36세 이상을 대상으로 했다. 일반직은 24개월치 급여와 재취업 지원금 명목으로 5년간의 학자금 또는 위로금 3000만원을 받게 된다. 업무직도 24개월분 급여와 재취업 교육비를 지원 받는다.
일반직에게 계약직 신분인 주식상담역이나 자산관리(WM) 전문직으로 전환할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번 희망퇴직은 지난 2016년말 미래에셋증권과 대우증권 합병 이후 첫번째 시도다. 미래에셋대우 관계자는 "희망퇴직은 노조가 제안해 이뤄진 것"이라며 "추가로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월 옛 현대증권과 KB투자증권이 합병한 KB증권 또한 슬림화에 나섰다. KB증권은 지난달 5일부터 28일까지 희망퇴직 신청접수를 받아 심사를 거친 끝에 60여명이 퇴직한 것으로 나타났다.
KB증권은 지난해 1월 옛 현대증권과 옛 KB투자증권이 합병한 이후 첫 희망퇴직을 단행한 것이다. 희망퇴직자는 모두 1975년 이전 출생자로, 연령에 따라 월 급여의 27~31개월치 급여 외 별도로 생활지원금과 전직지원금을 합해 3000만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신한금융투자도 지난달 특별퇴직(희망퇴직) 접수를 받아 33명의 퇴직자를 확정했다. 지난 2015년 이후 3년만에 희망퇴직을 통한 몸집 줄이기에 나선 것이다. 신한금융투자측 역시 노조에서 먼저 희망퇴직 요청을 제안해 감원이 이뤄진 것이라고 강조했다.
◇ M&A 이후 몸집 비대해진 미래에셋대우
주요 증권사들이 몸집 줄이기에 나서는 것은 고정 비용을 줄이고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차원이다. 미래에셋대우와 KB증권 등은 금융당국의 초대형 IB 육성정책에 따라 인수합병(M&A)를 추진하면서 몸집이 불어난 케이스다.
자기자본 기준 업계 1위인 미래에셋대우의 직원수는 작년 9월말 기준 4538명이다. 통합법인 출범전 옛 미래에셋증권의 직원수가 1860명(2016년 6월말 기준)인 것을 감안하면 2년만에 2배 이상 불어난 수치다. 당시 미래에셋이 인수한 대우증권은 3000명에 달하는 적지 않은 인력을 보유한 회사였다.
4500명에 달하는 미래에셋대우의 직원수는 다른 증권사들에 비해서도 압도적으로 많다. 자기자본 2위권인 NH투자증권(2868명)과 삼성증권(2292명), 한국투자증권(2531명) 등이 대부분 2000명대인 것과 확연히 비교된다.
직원이 많으니 비용 부담이 클 수 밖에 없다. 미래에샛대우가 지난해 1~3분기에 인건비로 투입한 누적 비용만 5040억원, 여기에 복리후생과 접대비 등이 포함되는 판매관리비(3380억원) 항목까지 포함하면 8300억원에 달한다.
같은 기간 업계 2위 NH투자증권의 직원 급여를 포함한 판매관리비가 5381억원인 것을 단순 비교하면 미래에셋대우의 부담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해 한 증권사 관계자는 "옛 대우증권의 노조가 강성이었던데다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이 통합법인 출범 당시 구조조정이 없다고 단언하면서 M&A 이후 비대해진 조직을 억지로 끌고온 측면이 있다"라며 "합병 이후 기존 퇴직 대상 직원에게 좋은 조건으로 희망퇴직을 제안하면서 자연스럽게 퇴로를 마련해 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 KB증권, '고직급·고연령' 구조 부담
KB증권도 같은 자기자본 4조원대 경쟁사에 비해 직원수가 많은 편이다. KB증권은 지난 2016년 12월 옛 현대증권과 KB투자증권이 합병을 통해 지금의 통합법인으로 출범한 회사다.
2239명의 현대증권과 581명의 KB투자증권이 합쳐지면서 지금의 수준인 2800명에 정도로 인력이 확대됐다. 같은 자기자본 4조원대 증권사인 삼성증권(2292명)과 한국투자증권(2531명)보다 직원이 많다.
증권 업계에서 KB증권 직원의 평균 근속연수가 유독 길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지난 1962년 설립한 국일증권을 전신으로 하는 옛 현대증권 인력이 지금의 KB증권 구성원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속연수가 길다보니 자연스럽게 인건비 부담이 커질 수 밖에 없다.
이와 관련 KB증권 관계자는 "과거 대형 증권사들은 외부 경력직을 뽑기 보다 신입직원을 공채로 받아들여 육성하는 시스템이 대부분"이라며 "다른 증권사 대비 고직급·고연령인 인력 구조가 된 것은 옛 현대증권 출신이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거래대금 감소에 증권사 실적 '빨간불'
증권가에선 추가 감원 움직임이 나올 지에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사업 환경이 우호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주식시장의 활력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인 일일 거래대금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눈에 띄게 줄어들어 우려를 키우고 있다.
증시 거래대금은 지난해 상반기(1~6월) 매월 일평균 10조원 이상을 달성했으나 하반기 들어 미국의 금리 인상 및 글로벌 무역분쟁 심화 등의 여파로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특히 작년 4분기(10~12월) 일평균 증시 거래대금은 매월 평균 8조8000억원으로 분기 최저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는 전분기인 3분기 일평균 거래대금 9조5000억원보다 7000억원 줄어든 것이며 전년 같은 기간(11조6400억원)에 비해서도 3조원 가량 급감한 수치다.
이 여파로 증권사 가운데 처음으로 실적을 발표한 교보증권의 지난해 4분기 순이익은 전분기 대비 반토막난 91억원에 그쳤다. 작년 2분기 사상 최대 순이익을 기록하면서 상승세를 탔던 교보증권이 4분기 들어 크게 꺾였다는 점에서 다른 증권사들의 성적 또한 부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관련 업계에선 올해에도 주식거래가 위축되면서 거래대금이 더욱 감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유안타증권이 추정한 올해 일평균 거래대금은 9조5000억원으로 전년도(11조5000억원)보다 17% 줄어들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