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운용방식을 둘러싼 정부 부처 간 오랜 이견이 상당 부분 좁혀진 모양새다. 아직까지는 주무 부처인 고용노동부와 금융위원회가 사적 퇴직연금에 디폴트옵션을 도입하기로 합의한 정도로 알려지고 있지만 관련 논의 진전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자산운용업계 촉각이 곤두서 있다.
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사적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도입을 둘러싸고 노동부와 금융위 간 이견이 상당 부분 좁혀져 큰 틀의 합의를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부 관계자는 "현재 디폴트옵션 도입과 관련해 이견을 내는 정부 부처는 이제 없다"고 말했다.
디폴트옵션이란 연금 가입자가 별도로 투자 상품에 가입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자산이 운용되도록 기본 설정을 하게 한 제도다. 가입자가 명시적 의사를 밝히지 않는 한 특정 운용 상품에 해당 연금을 투입해 수익을 내는 식이다. 미국 일본 영국 등이 채택하고 있다.
제도 도입 논의는 상당 기간 동안 노동부와 금융위의 의견 차이로 정체 상태에 놓여 있었다. 금융위는 자본시장 발전을 위해 디폴트옵션을 적극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반면, 노동부는 노후소득 확보수단이 반드시 디폴트옵션일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여당 내 관련 논의가 진척되고 자본시장 정책 역할이 대두되면서 양 부처 간 합의가 이뤄졌다는 설명이다. 관련 법안 검토와 관계자 논의 등을 통해 디폴트옵션 관련 법안 발의를 준비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현재로써는 논의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이렇다 할 완료 시점을 안내하기는 어렵다"면서 "사회적인 맥락에 맞춰 어떤 제도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우리 실정에 맞을지 검토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자산운용업계는 촉각을 세우고 있다. 디폴트옵션 도입이 확정된다면 다음 수순은 디폴트옵션 적격상품 지정작업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특히 TDF(Target Date Fund, 타겟 데이트 펀드) 시장을 중심으로 기대감이 증폭되는 모습이다.
TDF는 생애 주기에 맞춰 자산을 자동으로 분배하는 투자 상품이다. 20~30대에는 주식이나 신흥국 자산 등 수익 극대화에 주력하다, 50~60대에는 채권과 선진국 자산 등 안정적 수익에 집중하는 식이다. '맞춤형 연금 상품'으로 불리는 이유다.
정부 내 논의가 진전돼 디폴트옵션 적격상품으로 TDF가 선정된다면 TDF 시장은 급속도로 확대될 전망이다. 미국의 경우 2006년 연금보호법 제정과 함께 디폴트옵션이 도입되면서 TDF가 적격상품 중 하나로 지정되자 해당 시장 성장이 본격화했다.
정부는 조심스러운 반응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디폴트옵션을 도입한다고 해도 상품 선정은 어디까지나 개별 기업이 결정할 일"이라며 "민간 영역에 특정 상품을 채택하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제도는 이용할 수 있도록 열어놓자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투자가 잘 된다면 상관없지만 손해가 난다면 결국 누가 투자를 지시했느냐로 책임이 귀결될 것"이라며 "여기에 대한 책임을 따지기 시작하면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할 면들이 수도 없이 많아진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정부 목소리를 반영해 원리금보장상품이 적정상품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와 관련 운용업계 관계자는 "원리금보장상품을 적격상품으로 제한해버리면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도입 취지가 사라지는 꼴"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