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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펀드의 세계]솔직하게 인정하면 용서할 것 같아

  • 2020.07.14(화) 10:04

규제 완화부터 감독 소홀까지 금융당국이 위기 키워
당국도, 판매사도 뒤늦은 외양간 고치기…실효성 주목

'한국형 헤지펀드'는 10년 전 기업의 창업‧성장‧회수 생태계에 자금을 공급하는 매개체로 출발했다. 이후 전문운용사들이 출현하면서 국내 사모펀드 시장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가파른 성장의 대가는 잇단 사건사고라는 혹독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한때 K팝 열풍에 비견됐던 사모펀드의 존재감은 어느새 사기판, 복마전으로 변질되고 있다. 사모펀드의 태생과 총체적 부실 우려, 얽히고설킨 이해관계자들의 책임론까지 복잡다단한 사모펀드의 세계를 조명해본다. [편집자] 

"우리는 혼란스럽고 위험한 투자 행위가 금융시장을 지배하게 내버려뒀다. 강력한 감독이 필요한 상황에서 방관자적 입장을 취했다."

2008년 금융위기 직후 아서 레빗 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이 금융위기가 자신의 실수에서 비롯됐다고 자책하며 내뱉은 말이다. 레빗 위원장은 지난1993년부터 2001년까지 SEC 위원장을 지냈다. 시장이 곪아가기 훨씬 전부터 곳곳에 도사렸던 규제의 구멍을 인정한 셈이다.

10여년 전 기억 속의 한 장면은 최근 사모펀드 위기가 번지고 있는 국내 금융투자 업계와 오버랩된다. 금융위기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사모펀드 위기는 금융시장의 신뢰 훼손을 넘어 시스템 리스크로까지 번질 가능성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번 사태를 둘러싸고 범죄자는 따로 있지만 이들의 놀이터를 넓혀주고 제대로 사후 감독을 하지 못한 금융당국의 책임론에 대한 원성이 자자하다. 당국도, 업계도 뒤늦은 외양간 고치기에 나섰지만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는데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 규제 완화부터 감독 소홀까지 끝없는 공방

지난해 라임 사태가 터졌을 때만 해도 업계나 당국은 극히 일부 사모펀드에 국한된 문제로 치부했다. 그러나 라임 사태 후 사모펀드 실태 조사에 나선 뒤에도 유사한 사건이 반복되면서 금융당국 자질론이 불거지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모험자본 공급 차원에서 사모펀드에 대한 대대적인 규제완화에 나섰고 시장이 급성장했다. 사모펀드 투자 최소금액과 사모펀드 진입 장벽을 모두 크게 낮춘 효과였다.

2015년 20곳이 채 안 됐던 전문 사모운용사는 230여곳으로 급증했다. 사모펀드 개수만 1만여 개에 달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사기성이 짙은 사모펀드들이 실체를 드러냈고 금융시장에 대한 신뢰마저 위협하고 있다.

규제 완화에 더해 감독 소홀에 대한 책임론도 불거졌다. 금감원은 라임 사태 이후  사모펀드 대책을 내놨음에도 미봉책에 그치면서 체면을 제대로 구겼다. 지난해 11월~올 1월 사이 사모펀드 1786개에 대한 검사를 했지만 큰 문제가 없었다는 결과만 내놨다.

한 사모펀드 업계 관계자는 "당국이 판매사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당국이 자신들의 책임을 면피하려는 목적이 크다고 생각된다"라고 일침했다. 최근 전국사무금융노조는 "금감원이 자산운용사 관리·감독 책임을 방기하고 부실한 감독시스템을 방치한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 뒤늦은 외양간 고치기

최근 옵티머스 사태까지 터지자 금융위와 금감원은 사후약방문으로 또 다시 사모펀드 전수조사에 나섰다. 판매사 자체 점검을 통해 9월까지 1만300여 개의 사모펀드를 점검하기로 했다. 전체 사모운용사 233개에 대한 현장검사도 병행하는데 이를 위해 사모펀드 전담 조직을 신설했다.

부랴부랴 규제 고삐를 당기면서 지난해 12월 고위험 금융상품 투자자보호 강화를 위한 종합개선 방안을 이달 말부터 적용할 예정이다.

이에 따르면 사모펀드 투자 최소금액을 기존 1억원에서 3억원까지 높일 계획이다. 레버리지 200% 이상의 펀드는 5억원까지 높아진다. 금융당국은 2015년 최소 투자금액을 5억원에서 1억원으로 낮췄고 이로 인해 사모펀드 투자가 크게 늘어난 바 있다.

그간 공모규제 회피를 위해 50인 이상이 투자하는 공모펀드를 사모펀드로 판매하는 것도 불가능하게 할 예정이다. 6개월 이내 50인 이상에게 판매되는 복수 증권 중 기초자산과 손익구조가 동일하거나 유사한 경우 원칙적으로 공모로 판단하기로 했다.

전문사모운용사도 공모운용사와 동일하게 최소영업자본액 이상의 자본금을 유지해야 한다. 지난 2015년 '인가제'에서 '등록제'로 바뀐지 5년 만이다.

이번 개정안에 담기진 않았지만 향후 사모펀드 진입 장벽도 높아질지 주목된다. 금융위가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전문사모운용사의 최소자본금 요건을 60억원에서 10억원까지 낮추면서 전문성이 부족한 운용사가 난립하게 됐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다만 최근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규제 강화 방안은 이미 지난 4월에 발표를 했고 법을 추가로 더 강화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은 위원장은 지난해 8월 인사청문회에서 "사모펀드는 규제를 완화해 주는 것이 평소 소신"이라고 밝힐 만큼 사모펀드의 순기능을 중시하는 입장이다.

출처:하나금융경영연구소

◇ "해외처럼" 사모펀드 규제 개선 목소리 여전

해외의 경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유럽에서 사모펀드에 잠재된 시스템리스크 및 운영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 규제가 강화됐다. 국내 역시 사모펀드에 내재된 리스크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통해 현 규제 체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자본시장연구원은 "국내에서도 개방형 사모펀드의 운영리스크와 유동성리스크가 불거진 만큼 사모펀드 운용사의 위험관리 조직 및 체계, 내부통제에 관한 요건 등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환매중지 이외에도 운용사가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유동성 관리수단의 범위, 사용 조건 및 공시요건 등에 대해서도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종민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감독당국은 사모펀드 기본정보 이외에도 레버리지, 위험 익스포져, 비유동성자산현황 및 유동성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 등 시스템리스크와 운영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필요한 데이터를 수집해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라고 밝혔다. 운용사의 불법 영업행위에 대한 감독기능 및 처벌규정을 강화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감독 강화뿐 아니라 사모펀드 진입장벽이나 처벌기준 강화 등 규제 전반을 손보는 것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 판매 증권사도 팔 걷었다…사후관리 강화

업계 차원에서도 대비가 늘고 있다. 상품을 판매하는 증권사들의 경우 문제가 있는 금융상품에 대해 사전에 필터링이 가능하도록 사전·사후관리 강화에 나섰다.

라임 펀드 판매로 곤욕을 치른 신한금융투자는 최근 조직개편을 통해 상품공급 부서를 IPS(Investment Products & Services)본부 한곳에 편제해 상품공급체계를 일원화하고 상품감리기능을 강화했다.

출시예정상품과 자산운용사 심사기능을 상품심사감리부에 부여하고 상품의 사후 관리 기능도 대폭 강화했다. 헤지펀드운용부, 신탁부, 랩운용부를 IPS본부로 편제해 펀드, 신탁, 랩 등 주요 금융상품 공급의 콘트롤 타워 역할을 수행하며 엄격한 상품관리 체계 구축에 나섰다.

NH투자증권은 이번에 문제가 된 옵티머스운용 상품 외에 다른 판매 상품에 대해서도 자체 전수조사에 나섰다. 미래에셋대우 등 다른 증권사들도 펀드 운용전략과 실제 자산편입 여부 확인에 나서거나 문제가 없는지 파악 중에 있다.

KB증권은 금융 소비자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올해 3월 대표이사 직속으로 '소비자보호본부'를 신설한 바 있다. 내부통제 강화 차원에서 하반기 중에는 고난도 금융투자상품 도입을 전담하는 인력을 따로 충원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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