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부터 거세지고 있는 ESG 열풍이 증권업계에도 뜨겁습니다. 증권사 수장들 역시 연초 신년사에서 ESG 경영 강화를 유독 강조했는데요. 이와 함께 증권사 자체적으로 ESG 채권 발행에 나서며 의지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최근 삼성증권과 NH투자증권은 나란히 ESG 채권 발행에 나섰습니다. 증권사로서는 첫 ESG 채권 발행이란 점에서 주목할만한데요. 공교롭게 시기가 겹치며 앞다퉈 업계 최초 발행을 내세우기도 했습니다.
당장은 ESG 평가 기관이나 자금 사용 목적 등이 다르다 보니 누가 진짜 최초인지는 판단이 애매하지만 증권사들의 ESG 채권 발행이 꾸준히 이어질 것임을 알리는 신호탄이란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삼성증권은 지난 15일 업계 최초로 ESG 인증등급 채권을 발행한다고 밝혔습니다. 나이스신용평가으로부터 녹색채권 등급을 부여받은 채권을 내놓은 것인데요. 최우량 등급인 'Green1' 등급을 획득해 오는 25일 5년 만기 700억원 규모의 ESG 채권을 발행할 계획입니다.
삼성증권에 이어 하루 뒤 NH투자증권도 1100억원 규모의 5년 만기 ESG 채권을 발행했다고 밝혔습니다. NH투자증권도 국내 금융투자회사 중 최초로 발행하는 원화 ESG 채권이란 점을 강조했는데요. 그렇다면 누가 진짜 최초일까요?
삼성증권의 경우 수요예측을 통한 발행금리가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황으로 사실상 실제 발행 기준으로 본다면 NH투자증권의 ESG 채권이 최초 자리를 먼저 찜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다만 평가 방법이나 자금 사용 목적을 보면 삼성증권의 ESG 채권 발행이 갖는 의미도 큰데요. 삼성증권이 강조한 것처럼 삼성증권의 ESG 채권 발행은 신용평가사들의 ESG 인증 평가를 통해 최초로 ESG 등급을 획득했다는 부분에 주목할 만합니다.
지난해 ESG 열풍이 일면서 국내 3대 신용평가사들은 올해 초 평가 방법론을 마련했습니다. ESG 채권 발행사와 투자자 간 정보 비대칭성을 줄이고 ESG 금융상품에 대한 외부 평가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인데요. 기존에도 ESG 평가가 있어왔지만 프로젝트 투자 계획이나 자금 운용이 개별적으로 세분화되는 ESG 채권 등에 적용할 수 있는 평가 방법론을 만든 것입니다. '채권부터 펀드까지' 금융상품도 ESG 인증평가 본격화
ESG 채권의 경우 발행 시 ESG 채권에 적합한지에 대한 외부 평가를 거쳐야 합니다. 외부평가는 검토, 검증, 인증으로 나뉘는데 어느 것을 택하든 외부 평가를 받은 것으로 인정합니다. 신평사들의 EGS 등급 평가 이전까지는 주로 회계법인들이 ESG 채권 발행자가 내부 기준이나 요구사항을 충족하고 있는지에 대한 검증을 하는 방식으로 외부 평가를 수행했습니다. 인증은 제3의 기관이 주로 독립적인 자체 평가 방법론에 따라 평가를 수행하는데 주로 신용평가기관에서 채택하고 올해부터 국내 신용평가사들이 지난해부터 평가 방법론을 내놓고 있는 것입니다.
신평사로부터 ESG 등급을 획득하고 인증을 받은 삼성증권과 달리 NH투자증권의 경우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이 녹색채권 여부를 검증받으면서 외부 평가 방법이 다른데요. 여기에는 두 증권사의 자금사용 목적이 조금 다른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삼성증권의 경우 3000억원의 회사채 가운데 700억원을 녹색채권으로 발행할 계획으로 자금사용처를 미국 미드스트림(Midstream) 사업 및 프랑스 태양광 발전 사업에 관련한 기지분 매입분에 대한 차입금 차환으로 명시했습니다.
미국 미드스트림 사업은 미국 동부지역의 천연가스 정제 및 운송을, 프랑스 태양광 발전은 신재생에너지 중 대표적인 신재생에너지 사업으로 프랑스 남동부 및 중부 지역의 높은 일사량으로 고효율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ESG채권 기준에 부합한 것으로 평가받았습니다.
반면 NH투자증권의 경우 증권신고서의 운영자금 사용 목적을 녹색사업 및 사회적 가치 창출 사업분야 투자 재원 확보라고만 적었는데요. 국제자본시장협회(ICMA)의 지속가능 채권 원칙(Sustainability Bond Principles)을 준수해 발행되는 채권이지만 아직 투자처가 명확하게 정해지지 않은 상태이면서 구체적인 프로젝트 공개가 필요한 신용평가사 인증이 아닌 회계법인 검증을 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NH투자증권은 ESG 대상 사업을 파악해 ESG 기여도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자금 배분 대상 사업을 최종 선정할 계획으로 발행대금이 소진될 때까지 1년 단위로 투자자 안내문을 제공하게 됩니다. 투자 자금이 먼저 조달됐고 이미 염두에 둔 투자처가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 명목상으로는 투자처가 명확하진 않은 셈입니다.
결국 이 같은 차이는 ESG 채권에 대한 평가 방법론이 혼재되고 있는 상황을 보여주는 것으로도 볼 수 있는데요. ESG 평가 기관이 워낙 다양하고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보니 평가 자체에 한계점에 대한 지적도 꾸준히 일고 있습니다.
두 증권사에 이어 앞으로 증권업계에서도 ESG 채권 발행이 꾸준히 이어질 전망인데요. 기업이 아닌 금융투자회사들이 외부 검증과 인증 가운데 어떤 평가 방법을 더 활발하게 활용하게 될지도 주목되는 부분입니다.
아울러 누가 진짜 최초인지와는 상관없이 증권사들의 ESG 채권 발행 시대 개막 자체도 상당한 의미가 있습니다. ESG 채권의 경우 투자자 입장에서 지속 가능한 투자 매력을 높이는 것은 물론 증권사 입장에서는 조달금리를 낮추는 이른바 녹색 프리미엄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NH투자증권의 경우 기존에 예정했던 1000억원의 6배 이상의 수요가 몰리면서 100억원을 증액해 조달했고 발행금리도 1.548%로 NH투자증권 5년물 회사채의 민평 금리(지난 1일 평균)인 1.568%보다 낮은 수준에서 발행이 됐습니다. 다만 NH투자증권은 민평 금리 대비 낮은 수준에서 발행 금리가 결정되긴 했지만 아직까지 ESG 채권 프리미엄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16일 수요예측을 마친 삼성증권의 경우 ESG 채권과 일반 회사채를 함께 발행할 예정으로 자금 사용 목적이 명확한 ESG 채권의 발행금리가 상대적으로 낮게 책정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는데요. 실제 ESG 채권에 대한 수요예측 분위기는 상당히 우호적이었다는 후문입니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 10일 기준 삼성증권의 5년물 회사채 민평금리 평균은 1.602%로 이보다 낮은 1.57% 선으로 발행금리가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