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주식시장이 더욱 거세진 긴축 압박에 숨죽이고 있다. 시장의 시선이 지정학적 리스크에서 미국 정부의 통화정책으로 이동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인플레이션 제어를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이 공개됐기 때문이다.
유동성 회수 강도가 강력해진 만큼 증시 조정 국면은 연장될 기미를 보이고 있다. 어지간한 상황에서는 갖은 묘수를 내놓으며 투자를 독려하는 증권가도 이번만큼은 몸을 사려야 할 시기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다만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도 실적 개선이 진행 중인 업종, 긴축 리스크에 노출이 덜한 섹터에서는 투자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종지부 찍는 유동성 파티
지난 6일(현지시간)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공개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3월 정례회의 의사록에 따르면 다수의 연준 위원들은 이르면 다음 달부터 매월 950억달러(약 117조원) 한도로 대차대조표 축소(양적 긴축)를 단행하는 데 동의했다.
전체 950억달러 가운데 미국 국채는 600억달러(약 74조원), 주택저당증권(MBS)는 350억달러(약 43조원) 수준으로 줄이는 게 적절하다고 입을 모았다.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올리는 '빅 스텝'도 머지않았음을 시사했다. 이날 참석한 위원들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압력이 잡히지 않을 경우 향후 회의를 통해 기준금리를 1회 이상 0.5% 인상하는 것이 적절할 수 있다고 의견을 같이했다.
빅 스텝의 경우 기존 시장의 예측 범위 내에 있어 충격이 덜 하다는 판단이다. 다만 양적긴축에 대한 정확한 규모는 이번 의사록을 통해 처음 공개됐다. 시장에서는 최대 900억달러(약 111조원)로 예상했는데 이보다 50억달러가 더 추가된 것이다.
유동성 급증이 물가 상승으로 이어졌다는 게 연준의 판단이다. 이를 억제하기 위해 2017년~2019년 양적긴축 당시 책정된 월 최대 상한선인 500억달러(약 62조)보다 약 두배 가까운 규모로 대차대조표 축소에 나섰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긴축 규모가 확대된 만큼 진행 속도도 빨라질 전망이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지난주 3월 FOMC 의사록 공개 이후 글로벌 금융시장에는 다시금 연준의 긴축에 대한 부담이 가중되기 시작했다"며 "5월 빅스텝은 시장이 이미 예상했던 상황이었지만, 양적긴축 이슈가 수면 위로 부상했다"고 설명했다.
기댈 구석은 '실적'과 '리스크 노출도'
그간 예측만 무성했던 긴축에 대한 명확한 윤곽이 드러나면서 증권가에서도 이에 대응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는 모양새다. 예상보다 강한 유동성 회수 강도에 추가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분위기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우선 보수적인 접근이 필요한 시기라는 게 공통적인 시각이다. 금리 인상에 강력한 긴축 정책, 여기에 장단기 금리 역전까지 발생하면서 경기 침체 신호도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투자심리를 반전시킬만한 재료는 없는 상황이다.
신중호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 1월 주가 하락 이후 지수 변동성은 완화됐으나, 거시적인(매크로) 환경을 감안할 때 뚜렷하게 좋아질 만한 업종을 찾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시장 예상치 측면에서 실적 턴어라운드가 전망되는 건설, 조선, 자동차, 필수 소비재, 소프트웨어 중에서 업종 선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올해 1~2분기 영업이익이 전분기 및 전년동기대비 모두 증가할 가능성이 큰 업종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시각이다.
현재 시장 분위기를 좌우하는 통화정책과 경기 침체 리스크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업종도 선택지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여기에 지정학적 리스크 완화에 따라 수혜가 기대되는 섹터도 포함될 수 있다는 견해다.
이와 관련해 이웅찬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IT 하드웨어, 반도체 등 미국 수출 관련 경기 민감주 등은 비중 축소(underweight)를, 음식료 등 내수 소비재와 러시아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완화되는 자동차 섹터의 비중 확대(overweight) 의견을 제시했다.
이외에도 새 정부 출범을 통해 수혜가 기대되는 종목 또는 산업군, 원자재 가격 급등 피해를 입은 화학 등에서도 가격 하락세가 관찰될 경우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 연구원은 "일단 2분기는 긴축"이라며 "당분간 주식시장에서는 조심하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이어 "시장에서 새로 제기되는 리스크 재료가 미국 통화긴축과 경기 침체 시그널로부터 기인하는 만큼, 여기에 얼마나 노출돼 있는지 여부가 포트폴리오 편출입 기준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