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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버넌스, 자본시장의 기업가치 평가 잣대" 

  • 2022.11.18(금) 11:00

[코리아디스카운트, 문제는 거버넌스야!]
이남우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 인터뷰 

최근 수많은 국민을 불편하게 만들었던 카카오톡 먹통 사태를 다시 보자. 언론이나 국회에서는 카카오의 '문어발식 확장에 따른 플랫폼 독과점 문제'를 집중적으로 지적했다. 하지만 플랫폼과 독과점 문제에 앞서 거버넌스 관점에서 따져볼 문제는 없었을까.

지금까지 '거버넌스는 재벌의 문제'라는 인식이 많았다. 정부 정책도 재벌 규제에 맞춰져 있고, 시장참여자들의 인식은 총수 일가 중심의 기업집단에서 발생하는 편법승계나 일감몰아주기 등이 거버넌스 문제의 전형이라 생각했다.

이런 인식은 그동안 거버넌스를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출자구조 중심으로 이해해온 결과이기도 하다. 하지만 국제 금융시장에서 쓰이는 거버넌스란 회사 경영진이 전체 주주나 임직원 등 이해관계자를 위해 장기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원칙이나 시스템을 의미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카카오 사태의 본질도 거버넌스 문제'라는 분석을 내놓은 이가 있다. 이남우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다. 

그는 대학에서 산업분석과 기업 거버넌스를 가르친다. 단지 거버넌스 강의를 하는 학자이기 때문에 이런 분석을 내놓은 것은 아니다. 

이 교수는 제이피모건(J.P.Morgan) 홍콩 아·태본부 부사장, 미국 3대 증권사 메릴린치 한국 공동대표와 싱가포르 리저널 헤드, 삼성증권 초대 리서치센터장을 역임했다. 30년 이상 현장에 몸담은 애널리스트이자 국제투자전문가로 현장경험이 풍부하다. 다양한 기업의 이사회에 참여해 기업운영에서 거버넌스가 얼머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직접 체득하기도 했다.

그는 왜 카카오 사태의 본질이 거버넌스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또 거버넌스 개선을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지, 거버넌스를 개선하면 코리아디스카운트(한국증시 저평가 현상) 해소는 가능한지. 이남우 교수를 만나 직접 들어봤다. 

이남우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카카오도 문제는 거버넌스야'

카카오는 짧은 기간 고속성장을 해온 과정에서 대주주를 비롯한 경영진, 이사회가 각각 무엇을 해야 하는지 권한과 책임이 불분명한 상황이라는 게 이남우 교수의 시각이다. 

이 교수는 "카카오는 전통적인 재벌처럼 가족 경영이나 사익편취 같은 문제는 없다"며 "그러나 대주주와 경영진 사이에 권한과 책임의 구분이 모호하다는 또다른 측면의 거버넌스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카카오 창업자인 김범수 카카오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은 대주주임에도 카카오와 관련한 책임있는 역할에서 벗어나 있고 그 자리를 대신해야 할 CEO는 스톡옵션 사태(카카오페이), 먹통사태 때마다 잦은 교체를 면치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이사회 내에서 사내 경영진에 대한 조언과 견제 역할을 해야 할 사외이사진은 대학교수 중심으로 채워져 있어 '이사회가 제 기능을 하느냐'는 지적도 빠지지 않는다.

이 교수는 카카오 계열의 성과보상 체계에 대한 지적도 덧붙였다. 기업공개(IPO)는 목적이 아니라 과정인데, 카카오는 장기 성과 측정보다는 단기 업적주의로 가다 보니 카카오 계열사들은 기업공개(IPO)가 목적처럼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의 거버넌스에선 카카오의 계열사들은 각자도생 방식으로 기업공개를 하고 단기보상을 얻는데 집중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그러다 보니 모회사 카카오와 주주들을 위한 장기적 기업가치 제고에 관심이 없다는 점이 바로 카카오의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가 카카오 얘기를 꺼낸 건 거버넌스 문제는 전통적 재벌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카카오나 네이버 같은 성장산업 분야에서도 또다른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얘기하기 위해서다. 

또 카카오톡 먹통사태와 같은 문제를 접근할 때 거버넌스 측면에서 바라보지 않고, 플랫폼이나 독과점 문제로만 보고 규제에 나선다면, 근본적인 해결은 커녕 산업발전만 해칠 수 있다는 우려를 전달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상법' 개정으로 이사회 역할 바로세워야

이 교수는 "국제 금융시장에서 거버넌스는 기업 평가의 핵심 요소이자 리스크 측정의 근원"이라고 말했다. 

자본시장에서 해당 기업의 가치를 따질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대목이란 의미다. 

이 교수는 "우리 증시도 주주의 30%가 외국인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자본시장의 가치는 글로벌투자자들이 함께 결정한다"면서 "그런데도 기업을 운영하는 경영진들이 거버넌스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거버넌스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안이 필요할까. 이 교수는 가장 근본적 방법으로 '상법' 개정을 꼽았다. 이사회가 제 역할을 하도록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거버넌스 개선을 위해서는 이사회가 '회사'와 '주주'를 위해 일하도록 이사회가 제 역할을 해야한다"라며 "미국은 모든 거래에서 회사뿐 아니라 주주의 이익을 충족해야만 승인을 받을 수 있는데, 우리는 '주주의 이익'이 빠져있다"고 지적했다.

이사진에게 주주의 이익을 보호해야 하는 책임을 주면 이사회가 이를 침해하는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사회가 주주의 권리를 침해하는 결정을 내렸을 경우 주주들이 집단 소송을 통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고, 많은 판례가 이러한 소송을 뒷받침한다.

이 교수는 또 경영진을 견제하면서도 전문적 식견으로 경영에 도움이 되는 '코칭' 역할을 하는 사외이사 인력풀(pool)도 너무 부족하다고 말한다. 

미국의 대표적 빅테크 기업 '알파벳'의 이사회는 오랜 기간 알파벳에서 경력을 쌓아오며 올라온 사내이사뿐 아니라 스탠퍼드대 전 총장, 노벨화학상 수상자, 벤처캐피털계 거물, 미 연준 부의장, 픽사 부사장, 보잉·포드자동차 CEO 등이 사외이사로 참여하고 있다.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경력을 갖춘 사람들이 CEO를 견제하는 동시에 코칭 역할도 하는 것이다.

이남우 교수는 "우리에게도 훌륭한 인력풀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는 삼성전자 등 대기업 CEO가 은퇴한 후 다양한 회사에서 노하우를 전달할 수 있는 길을 막아놓고 있다"라며 "경영 경험이 없고 현장 이해가 낮은 기관이나 교수 출신 위주로 사외이사를 구성하면서 경영 감시와 코칭이라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앞서 언급한 카카오도 이사회 7명 중 4명이 사외이사이지만, 이중 3명은 교수 출신이다.

이남우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정부 '관치'도 코리아디스카운트 원인

그렇다면 거버넌스만 개선하면 코리아디스카운트(한국증시 저평가 현상)를 해소할 수 있을까. 이남우 교수는 우리나라 산업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코리아디스카운트를 완전히 떨쳐버리긴 어렵다고 진단했다. 

그는 "코리아디스카운트 문제는 기업 거버넌스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자본집약적인 비즈니스모델, 관치 문제, 인구 감소 등도 코리아디스카운트를 유발하는 원인"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한국이 세계적인 제조업 국가로 인정받으면서도 대만, 인도보다 이머징마켓에서 낮은 평가를 받는 것은 비즈니스모델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철강, 자동차, 조선, 반도체, 배터리 등 우리나라의 주력 산업은 많은 자본을 들여 공장을 지어야만 생산할 수 있다. 이러한 자본집약적 산업은 수요에 따른 이익 변동성이 크고, 투자로 인한 감가상각도 많아진다는 특징이 있다. 이익의 변동성이 크다는 것은 자본시장에서 저평가(패널티)를 받는 요인이고, 우리나라뿐 아니라 일본, 독일 등 전통 제조업 기반 국가에서도 디스카운트를 유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남우 교수는 다만 "이미 정착한 비즈니스모델을 전환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건 삼성에게 삼성다움을 버리라는 것과 같다"라며 "한국다운 제조업 경쟁력은 가져가면서 거버넌스, 관치 등 다른 부분들의 개선을 통해 코리아디스카운트 문제를 해소해 나가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특히 정부의 '관치' 문제도 코리아디스카운트를 유발하는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가 개입해야만 하는 업종도 있기 때문에 정부의 개입이 항상 잘 못 됐다는 얘기는 아니다"라면서도 "다만 주식시장에 상장시켰으면 상장기업에 맞는 거버넌스를 가져야 하는데, 한국전력처럼 상장사임에도 정부가 요금에 개입하려면 상장시키지 말고 정부가 지분 100%를 소유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장가치' 이해 못하는 정부, 기업 인식도 바뀌어야

이남우 교수는 '시장가치'를 기업의 가치와 동일시 하지 못하는 정부와 기업인들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대기업의 규모를 측정하는 방식은 몇 십년간 변화 없이 총자산을 기준으로 한다. 부채(빚)를 포함한 개념이 자산이다.

이 교수는 "기업의 가치는 시장에서 평가받는 가치(시가총액)인데 기업 경영자도 이에 대한 인식이 별로 없다"라며 "시장가치가 높아지면 자금을 조달할 때 주식을 더 적게 발행해도 된다"라고 설명했다. 

거버넌스에 대한 올바른 개념 정리, 상법 개정 등을 통한 거버넌스 개선 노력, 정부와 기업 경영자의 인식 변화까지 이 교수가 언급한 과제는 어느 하나 쉬운게 없고, 한 번에 해결할 수도 없다. 그렇기에 이제부터라도 변화를 생각해야 하고, 10년이든 20년이든 장기적인 노력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 교수는 "애플도 주주환원 등 거버넌스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데 거의 10년이 걸렸을 만큼 분명 장기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며 "다만 이러한 노력의 과정에서 기업과 대주주는 회사의 주인인 주주의 권리에 대해 생각하고 이를 거버넌스에 반영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개인 투자자들도 자본시장에서 성공하는 방법은 장기투자이고, 장기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판단 요소가 바로 거버넌스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라며 "기업의 질적인 요소, 즉 거버넌스를 개선하는 것이 우리 자본시장이 발전할 수 있는 길임을 기억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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