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기업에 적극적으로 참여(개입)하는 것은 지속가능한 투자를 위한 핵심적인 접근법입니다. 투자 기업의 ESG 전략을 이해하며, 지속가능한지 관리하고 개선함으로 인해 더 나은 투자 결정을 내리고 더 높은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세계 4위 자산운용사 피델리티자산운용의 '지속가능 투자 방침'
전 세계 자본시장의 흐름을 주도하는 기관투자자들은 자신들이 투자하는 기업들에 '지속가능한 비즈니스모델로 전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피델리티의 투자 방침에서 볼 수 있듯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주주가치 창출의 핵심 요소로 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기관투자자들은 지속가능성을 목표로 삼고 변화를 추구하는 기업에 주목한다. 최근에는 단순 투자에 그치지 않고 변화를 위한 대화와 협력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기업의 지속가능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기준이자 방법으로 기업과 기관투자자들이 주목하는 것이 ESG(환경·사회·거버넌스)다. 특히 기관투자자들은 투자기업의 활동을 분석하고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ESG와 관련한 투자자 연합에 참여하고 연구기관과 협업하고 있다.
특히 아시아권을 중심으로 이런 활동들이 두드러지는데 미국·유럽 등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아시아 상장회사들이 ESG에 대한 인식이나 변화가 더디다고 보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에 터를 잡은 ARE(Asia Research and Engagement) 역시 이같은 배경에서 태동했다. ARE는 세계 4대 운용 규모를 자랑하는 피델리티를 비롯해 네덜란드사회보장기금, 아비바인베스터스 등 기관투자자들과 '아시아의 지속가능 개발'을 목표로 기업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사회적 기업이다.
취재팀은 글로벌 자본시장을 주도하는 연기금과 기관투자자들이 집중하는 기업의 지속가능 과제가 무엇이지, 이를 통해 우리가 짚어봐야 할 내용은 무엇인지를 듣기 위해 ARE를 만나봤다.
ARE가 추구하는 '지속가능성'
ARE는 국내 투자자들에게 익숙한 곳은 아니지만, 아시아에서는 이미 에너지·식품·부동산 분야의 지속가능성을 연구하고, 투자자들의 목소리를 전달해 기업 변화를 이끌어내는 단체로 자리 잡은 곳이다.
ARE에 참여하는 투자자는 네덜란드 사회보장기금(PGGM)을 비롯해 △국제 보험사 아비바그룹의 자산운용사 아비바인베스터스(Aviva investors) △미국 운용사 컬럼비아 스레드니들 인베스트먼트(Columbia threadneedle investments) △피델리티 인터내셔널(Fidelity intenational) △리갈앤제너럴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LGIM) △영국 지방정부연금연합(LAPFF) △영국 대학퇴직연금(USS) 등 유수의 기관투자자(자산운용사)와 연기금을 포함한 7곳으로 ARE의 '아시아 전환 플랫폼(Asia Transition Platform)'이란 이름 아래 모였다.
이들은 총 5조 달러(한화 약 6000조원) 이상의 자산을 운용하고 있다. 아시아 전환 플랫폼은 '아시아 기업의 지속가능 발전 도모'를 목적으로 투자자의 참여를 통해 기업 변화를 촉진하는 것이 사명이자 역할이라고 소개했다.
ARE의 기업 참여 전문분야는 크게 에너지 전환(Energy transition), 단백질 전환(Protein transition), 지속가능 부동산(Sustainable real estate) 등 3가지 분야다. 각기 다른 분야처럼 보이지만 기후위기 대응과 지속가능한 성장이라는 공통 분모가 있다.
취재팀은 ARE에서 에너지 전환 부문을 담당하는 커트 메츠거(Kurt Metzger) 이사, 단백질 전환 프로그램을 이끄는 케이트 블라자크(Kate Blaszak) 이사를 만나봤다.
기후위기 대응 위한 주주행동…기업 변화 촉매
ARE의 에너지전환 부문은 파리협정 목표(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평균온도 상승 1.5℃ 제한) 달성을 위해 기업들이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산업 구조를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전환하는 계획을 주시하고, 계획을 제대로 이행하도록 유도하는 활동에도 참여한다.
커트 메츠거 이사는"ARE는 아시아의 35개 은행, 25개의 전력회사와 일하고 있다"며 "우리는 에너지 전환에 대한 정책을 개선하고 전력 회사가 화석 연료에서 재생 가능 에너지로 전환하도록 은행들과 대화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ARE가 은행과 전력회사에 집중하는 것은 이들이 탄소배출 관련 영향력이 가장 큰 산업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커트 메츠거 이사는 에너지전환 관련 대표적인 활동 사례로 싱가포르개발은행(DBS)을 꼽았다.
ARE가 지난 3월 발표한 은행보고서(Banking Asia’s Future)에 따르면 DBS는 아시아 9개지역 32개 은행 중 기후준비도(기후변화 대응 부문)에서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이사회에 기후감독 관련 전문가를 임명하고 리스크 관리에 기후 위험을 반영하고 있으며, 기업고객에 대한 단계적 석탄 배출 일정을 짜는 등 다른 아시아권 은행에 비해 구체적인 활동들을 하고 있어서다.
하지만 DBS와 다르게 아시아의 많은 은행들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마련한 목표를 실제 경영에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지, 제대로 실행하고 있는지 투자자들이 파악하기 어렵다는게 ARE 보고서의 분석이다.
특히 한국의 은행들은 싱가포르, 말레이시아보다 낮은 평가를 받았다. ARE는 이 보고서에서 KB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과 관련해 이사회에 기후전문가 임명 근거가 부족하고 리스크 관리 관련 공시도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특히 일부 은행은 구체적인 정책이 아시아 주요국가 중에서 가장 약하다고 지적했다.
커트 메츠거 이사는 일본 온실가스(GHG) 배출량의 5.6%를 차지하는 전력회사 J파워(J-power) 사례도 언급했다. J파워는 일본 내에서 설비용량 2위, 주식시장 시가총액 7위의 전력회사다. 지난 5월 J파워는 글로벌투자자들로부터 탈탄소화 전략 강화 관련 주주제안서를 받았다. 글로벌투자자들이 일본에서 기후변화 관련한 주주 제안을 한 것은 J파워 사례가 최초다.
ARE는 직접 주주제안서 제출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J파워의 주주총회 의결권 행사와 관련해 주주들의 투표율 분석과 개선방안을 제안했다. 주주들이 주총에서 결의안을 내고 사업 형태를 전환하는 역할을 했다는 게 커트 메츠거 이사의 설명이다.
그는 투자자들의 직접적인 행동이 기업의 변화를 촉진한다고 말했다. 커트 메츠거 이사는 "투자자들은 장기 주주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단기 이익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직접적인 참여를 통해 기업변화의 촉매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기후변화는 광범위한 '위험'을 초래하는데, 기업들이 이에 대응하지 않으면 향후 더 큰 경제적,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한다"며 "기업은 주주가치를 창출하는 핵심요소인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모델로 바삐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식품 분야에서도 '지속가능성'은 기업의 필수 선택
기후위기 대응은 에너지기업들의 변화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최근 글로벌 기관투자자들은 '단백질 전환'을 위한 식품기업 변화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사실 단백질 전환(Protein transition)이란 용어는 취재팀이 임의로 직역한 단어다. 그만큼 국내에선 적합한 용어조차 찾기 어려운 개념이지만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이미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단백질전환은 '지속가능한' 단백질을 생산하고 소비하기 위해 생산방식을 바꾸고 종류를 다양화하는 것을 말한다. 식량 생산에 관한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흐름이다.
생소한 분야처럼 보이지만 콩고기, 대체단백질 등으로 이미 우리 식탁에서도 생소하지 않은 개념이다. 글로벌 기관투자자들이 이런 개념에 집중하는 건 현재의 단백질 생산을 포함한 식품생산 시스템이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26%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식품생산 중에서도 축산업이 차지하는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은 16.5%에 달한다. 이는 운송업 전체 배출량과 맞먹는 수준의 규모로, 두 번째로 큰 온실가스 배출원으로 꼽힌다.
BCG는 대체단백질이 2035년 전체 단백질 소비의 11%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는데, 이는 2030년 항공산업의 약 95%를 탈탄소화하는 것과 같은 효과라고 분석했다. 비행기 운행을 대폭 줄이는 것과 비교하면 단백질 전환을 추진하는게 사회·경제·개인이 치러야 할 비용이 훨씬 낮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기관투자자들이 단백질 전환에 주목하고 있는 이유다.
케이트 블라자크 이사는 "현재의 기업형, 공장형 동물사육 시설은 온실가스 배출과 동물복지 문제뿐 아니라 농장 지역의 토양·수질 오염을 비롯해 이들을 사육하기 위한 벌목과 사료 재배 부담, 다량의 항생제 사용까지 매우 다양한 문제들을 포함하고 있다"며 "환경오염뿐 아니라 기후변화 속에서 단백질 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식량 안보'를 위해서라도 단백질 생산방식을 개선하고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ARE는 이러한 변화를 이끌기 위해 아시아 식품 회사들에게 동물성 단백질 생산에 대한 책임감을 높이고 지속가능한 단백질로 전환할 것을 장려하고 있다. 생산방식과 대체 단백질을 개발할 수 있는 전략을 공유하고 더 책임 있는 식품기업이 되도록 독려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기업 중에선 CJ제일제당, 이마트, 신세계푸드, 롯데그룹 등이 대상이다. ARE에 따르면 CJ제일제당은 지난해 12월 식물성 식품 브랜드 '플랜테이블'을 선보이며 비건만두와 김치를 출시했고 이를 미국, 일본, 호주 등 20개국에 수출했다. CJ제일제당은 미래 성장동력으로 식물성 식품사업을 강화해 2025년까지 세계 시장 매출의 70%까지 높이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신세계푸드는 2021년 대체육 브랜드 '베터미트'를 론칭했으며 스타벅스와 제휴해 베터미트를 이용한 샌드위치를 판매했다. ARE는 베터미트 올해 매출이 100억~2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케이트 블라자크 이사는 "식품회사들이 단백질 전환을 위한 투자비용 상승으로 변화에 참여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라며 "(위 사례에서 보듯) 단백질 전환은 새로운 수익창출 가능성이 큰 비즈니스이고 실제 새로운 매출과 수익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ARE는 기업들에 단백질 전환이 단지 비용상승이 아닌 새로운 시장과 수익을 창출할 기회임을 알리고, 기업에 자본을 대는 투자자들은 이러한 변화를 지지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또 변화에 더딘 기업들에겐 지속가능보고서를 검토해 재정적 위험이나 이익과 연결시켜 기업에 전략들을 내놓을 것을 요구해 변화를 이끌고 있다.
케이트 블라자크 이사는 "단기간에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식품회사들이 단백질 전환 시기를 놓친다면 나중에 상당한 비용 부담이 발생할 것"이라며 "우리는 기업에 비전과 목표를 제공하고 위험과 기회를 따라잡을 수 있도록 지원해 기업이 더 빨리 지속가능성을 강화할 수 있도록 돕는다"라고 설명했다.
기업의 변화는 단순히 ESG를 외치고 탈탄소를 선언하는 것만으로 실현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글로벌 자본시장을 움직이는 기관투자자들이 앞장서 변화를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기관투자자들은 자선단체가 아니다. 이들이 앞장서 기업에 변화를 요구하는 것은 단기 성과가 아닌 중장기적으로 더 큰 투자수익을 얻기 위해서이고, 그 일환으로 기업에 지속가능한 모델을 찾아야한다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투자자들은 지속가능한 목표와 이를 실현할 수 있는 거버넌스를 갖춘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우리나라 자본시장 참여자들이 주목해야할 이유가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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