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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성 위기가 더 무섭다'…연 8% 이율 내세운 증권사

  • 2022.12.01(목) 06:12

사전 공시서 키움·다올, 8%대 ELB 선봬
고금리 상품으로 1년 유동성 확보 복안

연말을 앞두고 300조원 규모 퇴직연금 시장에서 금리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이중 증권사들이 내세운 금리 수준이 이례적으로 높아 시장의 이목을 끌고 있다. 일부 증권사는 연 8%대 금리를 자랑하는 원리금 보장상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증권사의 적극적인 움직임은 최근 불거진 유동성 위기와 관련이 있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레고랜드발 사태 이후 증권사들은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고금리 퇴직연금 상품을 통해 적어도 1년짜리 유동성을 확보하겠다는 복안이다. 

/그래픽=비즈니스워치

'규제가 무색' 연 8%까지 나왔다

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증권사들이 발행한 퇴직연금 전용 주가연계파생결합사채(ELB) 금리가 최대 8.5%까지 치솟았다. ELB는 주가연계증권(ELS)의 형제 격으로 취급되지만, 기초자산 가격이 일정 수준을 벗어나면 원금을 모두 날릴 위험이 있는 ELS와는 달리 원금이 보장된다. 90%를 국고채 등 채권에 투자하고 나머지 10%는 주식 등에 투자한다. 

앞서 금융당국은 퇴직연금 비사업자가 사업자의 금리 공시를 참고해 더 높은 금리를 제공하는 이른바 '컨닝 공시'를 규제하기 위해 전체 금융회사로부터 사전적으로 상품 이자율을 제출받았다. 

이 가운데 증권사들은 6~8%대에 이르는 원리금보장 ELB를 내놔 타 업권 대비 높은 이율을 제시했다. 다올투자증권은 8.5%, 키움증권은 8.25%짜리를 선보였다. 앞서 11월에는 BNK투자증권의 연 7.15% 1년만기 ELB 상품이 최고 수준이었다. 단숨에 1%포인트 넘게 뛴 것이다. 

증권업계에서는 기준금리 인상 등으로 이율을 높일 수 있는 환경이 됐다는 설명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시중금리가 많이 올랐고, 코스피지수가 아닌 단일 종목을 기초자산으로 삼으면서 이전보다 이율을 좀 더 올릴 수 있는 환경이 됐다"며 "상품 출시 전 충분히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기 때문에 역마진이 발생할 가능성은 낮다"고 전했다.

유동성 위기 더 커질라3분기 말까지만 해도 3~4%대에 머물렀던 퇴직연금용 ELB 금리가 쑥 올라온 건 연말에 통상적으로 벌어지는 퇴직연금 머니무브와 관련이 있다. 연말이 되면 퇴직연금 상품 80%가량의 만기가 돌아오기 때문에 금리 경쟁에서 밀리면 대규모의 운용 자산을 뺏기게 된다.  

특히 올해는 잇단 기준금리 인상이 머니무브에 불이 붙일 것으로 예상된다. 위지원 한국신용평가 금융·구조화평가본부 실장은 "예금상품이나 저축성 보험 상품 등의 경우 시중금리 상승 분을 그때 그때 반영하는 것과 달리 퇴직연금의 경우 1년 만에 금리가 급격하게 상승한다"며 "예년에 비해 상당히 큰 폭의 자금 이동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증권업계를 둘러싼 신용경색 위기와 무관치 않다는 해석도 있다. 레고랜드발 신용경색 이후 증권사 위기론이 퍼지자, 증권사에 유치된 투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CMA 잔고는 11월 29일 기준 61조183억원으로 1월말 대비 8조원 넘게 쪼그라들었다. 

이에 고금리 상품을 앞세워 자금을 적극 유치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통상 연금 ELB 상품은 만기가 1년 이상이기 때문에 유동성 비율이 높아지는 효과를 볼 수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높은 금리를 주면 일시적으로 수익성이 줄 수 있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우선 유동성을 관리하려는 움직임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최근 치열해진 자금 유치 경쟁 분위기가 한 몫했다는 전언도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이전에는 이미 퇴직연금 사업자의 공시를 본 상황에서 이율을 약간 덧붙였다"며 "이번에는 타사가 얼마나 높게 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이율을 정하다 보니 경쟁적으로 높은 금리가 쓴 것으로 보인다"고 귀띔했다.  

한편, 컨닝 공시 규제에도 금리 경쟁이 쉽사리 진정되지 않자, 채권시장의 혼란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금리경쟁 속 상품을 옮겨타는 고객이 많아지면서 투자금 회수 과정에서 매도 물량이 쏟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금융당국은 원리금 보장 상품에 대한 발행량 규제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이미 12월 상품의 금리가 이미 결정났고 물량 규제의 여부나 대상에 대해선 아직 확정된 바는 없다"면서도 "자금이동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증권사 ELB 발행량을 제한하는 안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이 경우 채권시장 문제가 우려만큼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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