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서울동부지방법원 민사합의21부(김유성 부장판사)는 SM엔터테인먼트(종목명 에스엠) 창업자 이수만 전 총괄프로듀서가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신주 및 전환사채 발행 금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
이 결정으로 SM엔터는 지난 2월 7일 이사회에서 결의한 카카오 대상 2170억원어치 유상증자 신주와 전환사채 발행을 취소했다.
해당 결정이 나오자 여론은 법원이 이수만 전 총괄의 손을 들어줬다고 평가했다.
표면적으로 보면 이수만 전 총괄이 요청한 신주와 전환사채 발행 금지를 법원이 받아들였으므로 이 전 총괄의 승리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법원의 가처분 결정문을 자세히 보면 법원은 SM엔터 이사회가 카카오에게 신주와 전환사채를 발행키로 한 것은 단지 이수만 전 총괄 뿐만 아니라 SM엔터의 기존 모든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판단했다.
법원, '주주 비례적 이익' 강조
SM엔터는 지난 2월 7일 이사회를 열고 카카오에 2170억원어치 유상증자 신주와 전환사채 발행을 결정했다.
SM엔터는 카카오와의 전략적 제휴, 사업확장을 위한 자금 조달 필요성을 신주 및 전환사채 발행 이유라고 밝혔다.
법원은 그러나 SM엔터 이사회가 카카오에 신주 및 전환사채 발행을 결정할 무렵, 충분한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고 급하게 갚아야할 채무도 없었다는 점을 감안, 긴급한 자금 조달 사유가 없다고 봤다.
또 SM엔터 이사회가 카카오와 전략적 제휴를 맺기로 한것은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자금이 당장 필요치 않는 전략 수립단계에 불과한 상황에서 기존 주주들의 신주인수권을 배제하고 카카오에게만 신주 및 전환사채를 발행하는 것도 타당하지 않다고 봤다.
신주 및 전환사채 발행 과정에서 의사결정에 참여한 이사들을 제외하고는 최대주주인 이수만 전 총괄을 포함한 기존 주주들에 알리거나 협의한 적이 없다는 점도 지적했다.
법원은 이러한 판단을 내리면서 특히 "이번 신주 및 전환사채 발행으로 기존 주주가 보유한 SM지분에 따른 (주주의) 비례적 이익이 침해받거나 지배력 약화 등 불이익을 받는 염려가 있다"고 강조했다.
법원이 언급한 내용 중 '비례적 이익'은 모든 주주가 똑같이 보호받을 수 있도록 주식 1주당 가치를 보호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가령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이 보유한 1주의 가치나 삼성전자 일반 소액주주의 1주나 동일한 가치를 가진다는 의미다. 비례적 이익에 따라 주주들은 본인이 가진 지분율만큼 비례적으로 이익을 누리고 또 보호받을 수 있다는 개념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많은 판결은 주주 이익 보호에 대한 관점도 부족했고 설령 주주이익을 보호대상으로 보더라도 비례적 이익이란 관점보다는 다수의 지분을 가진 주주이익에 관심을 두는 경향이 많았다.
이번 법원의 결정도 얼핏 보면, SM엔터 창업자이자 최대주주였던 이수만 전 총괄의 손을 들어준 것처럼 보이지만, 법원은 이수만 전 총괄 외에도 SM엔터의 다른 주주들의 이익을 침해한다는 점을 일관되게 강조하고 있다.
법원은 가처분 인용 결정문에서 재차 "신주 및 전환사채를 카카오에 발행하면 주주로서 이수만 전 총괄이 SM에 대해 가지는 비례적 이익이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핵심은 경영권 싸움을 하고 있는 창업자 이수만의 지위가 아닌 '주주' 이수만의 지위에서 비례적 이익을 강조한 점이다.
상법 개정에도 영향 미칠까
법원이 이번 가처분 결정문에서 '비례적 이익'을 언급한 것을 두고 학계에서는 획기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상훈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번 결정문에서 가장 큰 의미는 법원이 두 번이나 비례적 이익을 언급했다는 점"이라며 "대법원 판례정보시스템에 비례적 이익을 검색했을때 나오는 내용이 없는 걸 봐선 사실상 법원에서 비례적 이익을 언급한 최초의 사례"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특히 법원이 단지 기존주주의 신주인수권 침해를 문제 삼기보단 보다 거시적인 차원에서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강조한 점을 의미있다고 판단했다.
이 교수는 "카카오에만 배정하는 신주만을 문제삼으면 신주를 받지 않고 싶어 하는 일반 주주들에겐 문제될 것이 없다는 반론도 가능하다"며 "법원도 이러한 점을 고려해 전반적인 주주이익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비단 SM엔터의 신주 및 전환사채 발행뿐만 아니라 금융위원회가 추진하고 있는 의무공개매수(공개매수시 의무적으로 기존 주주의 주식도 최대주주와 동일한 가격에 매수해야 하는 것)나 물적분할 개선(물적분할 시 주식매수청구권 도입 등) 등도 기본적으론 '주주의 비례적 이익' 개념이 있다면 굳이 사안마다 세부적으로 제도개선을 내놓을 필요가 없다는 시각도 있다.
이처럼 근본적인 주주 보호방안을 위해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에 '주주의 비례적 이익 보호' 개념을 도입하자는 개정안도 국회에 계류중이다. 지난해 3월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 및 지난 1월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상법 개정안이다.
이상훈 교수는 "이번 결정문에 담긴 주주의 비례적 이익은 대법원 판결이 아니기 때문에 구속성은 없다"며 "그럼에도 법원에서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언급한 사실상 최초의 사례로 보이기 때문에 상법개정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를 뒷받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