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들이 여성 사외이사 모시기에 공을 들이고 있다. 상장사 이사회를 특정 성별로만 구성할 수 없게 한 자본시장법 개정 영향에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유예기간 종료' 새 자시법, 신규·재선임 봇물
2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메리츠증권은 지난 17일 2022사업연도 정기주총에서 양재선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를 사외이사(임기 2년)로 신규 선임했다. 양 변호사는 현재 메리츠자산운용의 사외이사도 겸직하고 있다.
대신증권 또한 지난 24일 주총에서 조선영 광운학원 이사장을 사외이사로 영입했다. 첫 여성 사외이사다. 신한투자증권 역시 앞서 22일 주총에서 주소현 이화여대 소비자학과 교수가 새롭게 사외이사진에 합류했다. 신한투자증권 관계자는 "이사회 구성의 다양성을 갖추려고 했다"며 "소비자보호 전문가로 다양한 조언을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올해 주총에서 여성 사외이사를 재선임한 증권사도 여럿이다. 미래에셋증권은 이젬마 경희대 국제학과 교수를 작년에 이어 올해도 중임했다. 재무학 박사 출신으로 지난해 미래에셋증권의 ESG위원회 위원장으로도 활동했다. 이밖에 NH투자증권의 홍은주 한양사이버대학교 경제금융자산관리학과 교수, 키움증권의 최선화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등이 재선임된 사외이사들의 면면이다.
대형 증권사가 여성 사외이사를 앉히는 건 우선 관련 전문성 확보 차원이다. 이에 더해 2021년 4월 개정된 자본시장법 개정안의 영향이 크다. 자기자본 2조원 이상인 상장 금융회사는 이사회 구성을 특성 성(性)으로 하지 않아야 하는 게 골자다. 작년 8월 시행됐다.
다만 위반 시 별도의 처벌규정은 없다. 대형 증권사들이 이사회 구성을 남성으로만 해도 제재할 수 없다는 뜻이다. 지난해 이사회 전원이 남성이던 메리츠증권에 관련 제재가 따르지 않은 까닭이다. 대신증권은 법 개정 취지와는 다소 결이 다르지만, 이어룡 대신파이낸셜그룹 회장이 의장이자 사내이사로 이사진에 포함돼 법 위반은 아니었다.
이사회 성비, 지배구조 평가기준서 중요도↑
지배구조에서 이사회 구성원의 다양성이 중요해지고 있는 것도 증권사들이 여성 사외이사 영입에 힘을 쓰는 이유다. 특히 기관투자자나 자문기관은 이를 토대로 의결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월가의 투자은행(IB)인 골드만삭스가 대표적이다. 골드만삭스 자산운용 사업부문의 스튜어드십 코드는 투자기업 이사회가 여성 이사를 1명 이상 두지 않은 경우, 이사회 안건에 반대 의결권을 행사하는 게 원칙이다.
이사회의 균형 잡힌 성비는 ESG의 'G'에 해당하는 지배구조를 평가하는 기준이기도 하다. 한국ESG연구소 등 기업 ESG 평가기관들은 실제 'G' 평가요소에 이사회 내 여성 임원 여부 등을 명시하고 있다. 단지 법 준수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증권사 자체적으로도 이사회 구성에 다양성을 갖춰 지배구조를 개선할 유인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자기자본이 2조원 미만인 중형 증권사들 또한 선제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이다. 한화투자증권은 문여정 카이스트 바이오혁신경영전문대학원 교수와 선우혜정 한국방송통신대 경영학과장을 사내이사로 재선임했다. SK증권의 경우 안수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지난 2019년부터 사외이사로 두고 있다.
특히 한화투자증권은 업계에서 유일하게 이사회 내 여성 이사가 2명이다. 이사회 멤버가 5인으로 구성된 점을 감안하면 비율로도 월등하다. 한화투자증권 관계자는 "(법적으로) 의무는 아니지만, 이사회의 다양성 차원에서 선도적으로 여성 이사를 선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