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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자사주 꼼수' 막는다…강제소각·신주발행권리 정지 검토

  • 2023.06.07(수) 11:00

지난 5일 '상장법인 자기주식 제도 개선' 세미나
자사주 한도 설정, 합병·분할시 권리 정지 등
재계 "경영권 방어수단 확대 함께 고려해야"

정부가 자기주식을 기업 대주주의 지배권 강화 수단으로 활용하는 관행에 제동을 건다. 현재 규제에서 자유로운 자사주 취득 요건을 한층 높이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자사주 강제소각 또는 취득한도 설정 △자사주 처분시 신주발행 규정 준용 △합병, 분할시 자사주 권리 정지 △시가총액 계산시 자사주 제외 △자사주 관련 공시 강화 등이 검토되고 있다.

이에 대해 산업계는 유일한 경영권 방어수단으로 활용 중인 자사주 소각과 취득 등이 제한될까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한국거래소와 금융연구원 주최로 '상장법인 자기주식 제도 개선' 세미나가 열렸다./사진=백지현 기자 jihyun100@

김소영 "'주주가치 제고' 목적 부합토록 정책 검토"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는 한국거래소와 금융연구원이 주최하고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이 후원한 '상장법인 자기주식 제도 개선' 세미나가 열렸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이날 인사말을 통해 "정부는 자사주 제도가 대주주의 편법적인 지배력 확대수단으로 남용되지 않고 주주가치 제고라는 본연의 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여기서 언급된 문제점은 △인적분할 시 신주배정을 통한 지배력 확대 △우호적 기업과의 자사주 맞교환을 통한 의결권 부활 △소극적인 자사주 소각 등 크게 세 가지다.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다. 그러나 인적분할을 실시하면 자사주에도 신설된 법인의 신주가 배정되면서 의결권이 생겨난다. 예를 들어 A사의 총발행주식 100주 중 지배주주와 소액주주가 각각 30주, 40주씩 갖고 자사주가 30주라고 가정할 때 지배주주가 갖는 의결권은 30%다. 그러나 인적분할을 통해 B사를 신설하면 지배주주 보유분과 자사주에 모두 신주가 배정돼 지배주주의 B사 의결권은 60%가 된다.

총수일가 자회사 혹은 지배주주의 백기사와 지분을 맞교환해 우호적인 의결권을 확보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KT와 현대차, 현대모비스가 주식을 교환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시장에선 현대차그룹이 사업구조 재편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KT를 현대모비스의 주요 주주로 편입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김 부위원장은 "인적분할의 경우 관련 법령과 판례가 명확하지 않아 자사주에 대한 신주배정이 관행적으로 허용되고 있다"며 "추가적인 출연 없이도 지배력이 강화된다는 점에서 소위 '자사주 마법'이라고 불리고 있는 문제"라고 짚었다. 

이어 "기업이 보유 중인 자사주를 우호적인 기업과 맞교환할 경우 사실상 의결권이 부활하게 된다"며 "일반주주의 지분은 희석되고 건전한 경영권 분쟁을 저해할 우려도 있다"고 전했다. 

정준혁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날 주제발표에서 "자기 주식을 얼마나 취득, 보유, 처분할 것인가는 주주의 경제적 이익뿐만 아니라 회사의 지배권에도 중요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중요한 의사결정 사항"이라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주주평등 원칙이 적용되는 자사주 취득이나 신주발행과 달리 자사주 처분은 별다른 통제가 없다는 지적이다. 실제 국내에서 자기주식 처분 시 기존 주주에게 매수 기회를 줘야 한다는 의무는 적용되지 않으며 이사회 의결만으로도 진행 가능하다. 

이와 달리 독일에서는 자사주 취득 한도를 제한하고 있으며 그 한도를 넘어설 경우 기업이 일정 기간 내 자사주를 소각 또는 매각 방식으로 처분하도록 한다. 또 영국이나 일본, 미국 등은 인적분할 시 신주배정 권리를 엄격히 금지한다. 

정 교수는 자사주를 처분할 때 신주발행과 똑같은 규정을 적용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자사주 처분은 신주발행과 사실상 효과가 동일하기 때문에 경영권 방어수단이 필요하더라도 별도로 논의하는 것이 타당하고 자사주 처분 방식에 따라 할 것은 아니다"라면서 "과연 경영권 방어수단이 필요한지, 자사주를 통한 방어가 실효성이 있는지 등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합병 분할 시 신주배정을 포함해 자사주 관련 권리를 정지하는 방안도 내놨다. 정 교수는 "다른 주요국가에서 합병 분할을 포함해 자사주에 대해 주주권을 인정하는 사례는 발견하기 어렵다"며 "과거 지주사 전환 사례 중 인적분할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고 자사주에 신주를 배정해 자회사 지분 요건을 맞춘 경우도 존재한다"고 전했다. 

이 자리에선 이밖에 시가총액이나 주가수익비율(PER) 등 주가지표 계산에서 자사주를 제외하는 방안, 자기주식의 취득, 처분 관련 공시를 강화하는 방안 등도 언급됐다.   

"경영권 방어수단과 같이 검토돼야"

패널 토론에서는 자사주 처분을 신주발행과 동일한 수준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방안을 두고 의견이 엇갈렸다. 

김우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자사주는 아무런 권리가 없고 회계상 자본차감 개념"이라며 "외국에서는 합병, 분할 시 신주배정권리를 당연히 인정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처럼 멀쩡한 상장사를 두 개로 쪼개 모자회사로 만드는 것은 지주사 전환이 아니다"라며 "지주사 전환을 위해 분할 시 신주를 인정해줘야 한다는 것은 우리가 가야 하는 방향과 맞지 않다"고 했다. 다만 "국내에선 현실적으로 임직원 보상 차원에서 현실적인 (자사주) 수요가 있다 보니 (자사주 취득 요건을) 신주발행에 준하게 하되 예외를 인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부연했다. 

그에 맞서 신주발행 요건이 지나치게 엄격한 탓에 자사주 처분 요건을 현 신주발행 요건에 맞추기 어렵다는 의견도 나왔다. 안태준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신주발행이나 경영권 방어 매커니즘은 막아둔 상황에서 자사주 제도는 자유롭기 때문에 한쪽 수단으로 쏠리는 문제가 생긴다"며 "자사주와 신주발행 양자를 종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날 세미나에서 논의된 내용과 관련해 재계는 자사주를 통한 의결권 강화가 유일한 경영권 방어 수단인 만큼 제도 개선이나 보완에 있어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강석구 대한상공회의소 조사본부장은 "자사주 강제소각이나 취득 한도 설정은 배당가능이익을 재원으로 매수 대가를 지급했기 때문에 그 자체로 시가가 있는 자산"이라며 "소각을 강제할 경우 회사 자산이 감소하는 등 기업의 재산권 침해 소지가 있고 자사주 취득 유인을 감소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강 본부장은 또 "미국은 물적분할을 통한 100% 신설 자회사 주식을 현물배당을 활용해 모회사 주주에게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인적분할과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다"며 "특히 우리나라는 경영권 방어수단이 많이 부족한데다 '3%룰' 등 대주주 의결권을 제한하는 제도를 적용하고 있어 전체적인 측면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이한진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지난 정부 시절부터 분할합병 시 자사주에 신주배정이 가능하다는 유권해석이 나왔다"며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순환출자나 상호출자 등으로 얽힌 기업의 지배구조를 투명화하고 소수주주와의 이해상충을 방지하기 위해 지주사 전환을 강력히 유도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대주주 지분율이 높지 않아 인적분할 시 자사주에 대한 의결권 부활을 용인해놓고선 이제와 지주사 전환 부분에 대한 정책적 고민없이 의결권 부활이 문제였다고 하는 것은 단편적인 지적"이라고 언급했다. 

패널 토론 종료 후 이어진 플로어 토론에서 지난 2012~2014년 법무부 상사법무과에 소속돼 유권해석을 진행했던 황현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당시 법무부 유권해석은 자사주에 대한 신주발행을 금지하라는 취지였지만 실무에서는 이것이 허용되는 것처럼 오해를 사고 있다"고 말했다.

황 연구위원은 "국회에서 이 법안이 발의됐을 때 좌초된 이유는 자사주에 대한 신주발행을 금지하면 정부 정책인 지주사 전환이 어려워지기 때문이었다"며 "그러나 지금은 공정위가 원래 의도와 달리 지주사 전환이 이뤄지고 있는 것에 대해 반성적인 견해를 밝히고 있는 만큼 논의가 다르게 진행될 수 있다"고 전했다.

한편 당국은 이날 논의 과정을 바탕으로 자사주 제도 정책을 결정할 방침이다. 김광일 금융위 공정시장과장은 "자사주에 대한 기업의 현실적 수요와 사업 재편과 관련된 이슈 등을 전반적으로 고려할 것"이라며 "동시에 일반주주의 권익을 어느 정도로 보호할 것인가도 상당히 중요한 가치가 있어 정책방안을 균형감 있게 고민해 보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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