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이 SK그룹의 석유화학회사 SK이노베이션에 대한 공시 하나를 올렸어요. 국민연금은 SK이노베이션 지분 8.25%를 보유한 2대주주예요.
▷관련공시: SK이노베이션 8월 7일 주식 등의 대량보유상황보고서(약식)
국민연금이 올린 공시는 일명 '5%룰'이라고 부르는 '주식 등의 대량보유상황보고서'인데요. 투자자가 회사 지분(주식 또는 주식연계채권 등)을 5%이상 가지고 있고 이후 추가 매수‧매도에 따라 지분율이 1% 이상 '변동'하면 이 공시를 제출해야 해요.
지분율 변동이 없더라도 투자하고 있는 회사와 관련한 중요한 내용에 '변경'이 있더라도 공시 대상인데요.
국민연금이 이번에 공시한 내용은 SK이노베이션에 대한 중요한 내용에 '변경'이 있어 올린 것이에요. 내용을 보면 SK이노베이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목적을 기존 '단순투자'에서 '일반투자'로 바꿨어요.
SK이노베이션은 2021년 물적분할을 통해 배터리사업을 떼어내 지분율 100%의 완전자회사 'SK온'을 세웠죠. 배터리사업은 회사의 주요 사업이었던 만큼 향후 SK온이 주식시장에 재상장하면 SK이노베이션은 그동안 투자했던 자금을 회수하는 한편 새로운 투자 재원도 확보할 수 있어요.
그러나 SK이노베이션의 다른 주주들은 SK온과 직접적인 지분 연결고리가 없어지면서 배터리사업 성장에 따른 이익을 온전히 나눠가질 수 없다는 문제가 생기죠. 이에 SK이노베이션 소액주주연대는 SK온의 재상장이 주주가치를 훼손한다며, 2대주주인 국민연금을 향해 함께 목소리를 내달라고 요청하고 있는데요.
이 시점에 국민연금이 SK이노베이션에 대한 보유목적을 단순투자에서 일반투자로 바꾼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보유목적을 변경한 국민연금이 향후 어떤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 짚어볼게요.
두 달 만에 보유목적 변경한 국민연금
올해 초까지만 해도 국민연금은 일반투자목적으로 SK이노베이션에 투자하고 있었는데요. 지난 6월 7일 주식 등의 대량보유상황보고서를 통해 보유목적을 단순투자목적으로 바꿨어요 적극적인 주주활동을 하지 않고 단순 차익실현을 위한 투자를 하겠다는 의미죠.
▷관련공시: SK이노베이션 6월 7일 주식 등의 대량보유상황보고서(약식)
그러던 국민연금이 정확히 두 달 만에 보유목적을 다시 일반투자로 상향했어요. 단순투자로 바꾸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다시 보유목적을 변경한 것이죠.
자본시장법 시행령에 따라 국민연금을 포함한 기관투자자는 주식 등의 대량보유상황보고서에 보유목적을 기재해야 해요. 이 때 보유목적은 ▲단순투자 ▲일반투자 ▲경영참여 3가지로 나뉘어요. 기존에는 단순투자와 경영참여 두 가지만 있었지만 2020년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일반투자를 추가하면서 보유목적을 좀 더 세분화했어요.
'단순투자'는 의결권, 신주인수권 등 기본적인 주주권행사나 투자에 따른 차익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것을 말해요. 즉 회사가 어떻게 경영하든 상관없이 최소한의 주주권리행사와 차익실현만 하겠다는 의미죠.
반면 '일반투자'는 좀 더 적극적인 형태인데요. 경영권에 영향을 줄 목적은 없지만 특정 이슈에 대해 기업 경영진과 대화를 하거나 비공개서한을 발송하고, 배당을 늘리라고 요구하는 등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요. 또 중점관리사안으로 지정하거나 경영참여에 해당하지 않는 주주제안(임원 보수 문제 등)도 할 수 있어요.
일반투자보다 더 강화한 형태인 '경영참여'는 경영권에 영향을 줄 목적으로 '일반투자'를 통해 여러 차례 기업에 목소리를 냈음에도 개선이 되지 않을 때 적용하는데요. 임원의 선임 및 해임을 요구하거나 이사회와 감사의 독립성 확보를 위한 정관변경 등 회사 경영에 중요한 안건과 관련, 주주제안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요.
따라서 국민연금이 단순투자에서 일반투자로 보유목적을 바꿨다는 건 적어도 SK이노베이션에 대해 의결권만 행사하는 수준을 넘어서 배당정책이나 임원보수 등 경영참여에 해당하지 않는 내용들에 대해서 비공개서한을 발송하거나 대화를 요구하겠다는 의미예요.
국민연금, 우선 비공개서한으로 대화할 듯
한편 SK이노베이션 소액주주연대는 지난해부터 국민연금에 3차례 내용증명을 발송했어요. SK이노베이션에 대한 투자원칙을 검토하고 배당 확대 및 자사주 소각 등을 요구해달라는 것인데요. 또 자회사 SK온의 재상장 반대에도 목소리를 높여달라고 요청했고요.
특히 소액주주연대는 지난달 초에도 국민연금에 내용증명을 발송했는데요. 이후 국민연금이 한 달 만에 다시 투자보유목적을 일반투자로 높이면서 소액주주연대의 요구에 화답한 것 아닌가란 관측도 나오지만, 양측의 교감은 없었던 것으로 보여요.
다만 국민연금은 주주활동 원칙인 '수탁자 책임활동 지침'에 따라 주주가치 증대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행동해야 해요. 또 투자회사에 대한 ESG 요소도 고려할 수 있어요. 따라서 국민연금도 주주 입장에서 SK이노베이션의 주주환원정책이 불충분하다고 본다면 더 적극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겠죠.
특히 배당 확대처럼 경영 참여에 해당하지 않는 일상적인 주주제안뿐만 아니라 SK이노베이션에 특화된 문제인 SK온 재상장 관련한 주주정책에 대해서도 적정성을 판단할 것으로 보여요.
국민연금은 일반투자로 보유목적을 바꾼 만큼, 우선 비공개서한을 통해 경영진과 대화에 나설 것으로 보이고요. 그 결과에 따라 향후 다양한 행보를 검토할 것으로 보여요.
이번 보유목적 변경에 대해 국민연금 관계자는 "단기간에 투자목적을 바꾸는 일은 종종 있는 일이고 개별 기업 투자목적 변경에 대해 언급하기 어렵다"고 밝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