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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장으로 버티던 해외부동산 펀드…손실 확정 속출할 듯

  • 2025.01.07(화) 14:00

벨기에펀드 손실확정에 당국 자료요청
미래에셋9-2호도 불완전판매 여부 검토
독일·룩셈부르크 펀드도 손실 부담 커져

작년 말부터 해외부동산 공모펀드의 손실 확정 사례가 하나 둘씩 등장하고 있다. 2018~2019년 활발히 출시된 해외부동산 펀드는 지난해부터 만기가 다가오자 연장으로 간신히 버텼지만, 올해는 선순위 대출 만기 도래나 도산절차 개시로 자산 매각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감독당국에는 손실을 본 투자자들의 분쟁조정 민원이 쌓이는 상황이다. 

900억 벨기에펀드 손실 확정에 당국 사실조사 착수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 분쟁조정국은 최근 손실이 확정된 벨기에펀드와 관련해 한국투자리얼에셋운용에 자료를 요구하고 사실조사에 착수했다. 

이 펀드는 벨기에 정부기관이 임차하고 있는 오피스 건물의 장기임차권에 투자하는 상품으로, 룩셈부르크와 영국령 저지아일랜드에 있는 특수목적법인(SPC)을 통해 장기임차권의 지분을 보유하는 구조다. 설정 당시 펀드가 담고있는 자산은 894억원의 가치였으나, 해외부동산 침체가 길어지면서 작년 말 기준 231억원으로 무려 74%나 감소했다.

이후 작년 5월 만기에 도달한 펀드는 수익자총회를 열어 만기를 5년 더 연장해 손실 확정을 급하게 막았지만, 다음달인 6월 선순위 대출을 만기까지 갚지 못해 기한이익상실(EOD)이 발생했다. 이에 따라 선순위 대주단은 대출금을 돌려받기 위해 12월 건물을 팔아치웠다.

결국 펀드는 대출 담보로 걸어둔 SPC 지분을 모두 잃은 동시에 자산이 낮은 가격에 팔리면서 투자자들은 투자금 전액을 날릴 위기에 처했다. 이 상품은 지난달 18일부터 거래가 정지됐다. 운용사는 "영국 법무법인과 지속적으로 논의하며 강제 매각에 대한 이의제기 및 소송 가능 여부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손실 위기에 처한 벨기에펀드 투자자들은 속속 금감원에 민원을 제기하고 있다. 담당 부서인 분쟁조정국은 사실 관계 확인에 나섰다. 해당 부서는 향후 조사 결과에 따라 이번 건을 기각할지 아니면 배상을 권고할지 등 처리방향을 결정할 예정이다. 금융회사가 배상 비율을 직접 정하는 자율배상을 원칙으로 하되, 금융회사와 투자자 사이에 합의를 하지 못하면 분쟁조정위원회로 넘어가 금감원이 정하는 비율을 기준삼아 배상을 진행해야 한다. 다만, 같은 상품이라도 고객의 투자위험 성향이나 판매 절차 등이 모두 가지각색이기 때문에 민원 사례마다 다른 조정 결정이 나올 수 있다. 

금감원은 현재 미래에셋자산운용의 맵스미국부동산투자9-2호에 대해서도 불완전판매 여부를 따져보고 있다. 맵스 9-2호는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에 위치한 오피스 빌딩 4개동에 투자하는 상품으로 지난 2016년 3000억원어치 팔린 상품이다. '국내 최초 미국 부동산 공모펀드'로 이목을 끌었다. 

이 상품 역시 부동산 침체기를 겪으면서 자산가치 하락을 피할 수 없었고, 만기를 연장하지 않고 청산 절차를 밟기로 했다. 미래에셋운용은 2023년 6월 보유 건물을 5억8000만달러에 매각했다. 펀드 설정 당시 매입가였던 8억2000만달러보다 30%가량 낮은 수준이다.

이에 따라 맵스9-2호는 해외부동산 공모펀드 중 제일 먼저 손실을 확정했고, 투자자들에게 상품 위험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았다는 내용의 민원이 빗발치자 금감원은 판매 절차 등 경위를 살펴보고 있다. 유럽 부동산 펀드 줄줄이 손실확정 코앞

이밖에도 앞으로 손실 확정 우려가 높은 해외부동산 공모펀드가 당국의 분쟁조정 심판대에 오를 여지가 있다.

이지스자산운용의 글로벌부동산투자신탁 229호도 손실 확정이 유력한 가운데 금감원에 관련 민원이 접수되고 있다. 2018년 만들어진 이 펀드는 데카방크와 도이치분데스방크, 프랭클린템플턴 등이 임차하고 있는 트리아논 빌딩을 자산으로 갖고 있다.

2020년 건물의 가장 큰 공간을 임차하고 있던 데카방크가 임대차계약을 연장하지 않기로 하면서 이 펀드의 자산가치가 급락했다. 매각주간사 선정을 진행했지만 이후로도 건물을 팔지 못했고, 2023년 10월 만기 연장으로 손실확정을 미뤘다. 그해 11월 펀드의 선순위 대출이 만기에 도달했을 땐 일단 약정 종료를 미뤄가며 건물 매각을 타진했다.

펀드는 위기 때마다 연장으로 대응했지만, 결국 대주단과 협상에 실패해 작년 12월 도산 절차를 들어갔다. 펀드는 독일 정부가 지정한 도산 관재인의 통제 하에 자산을 매각해야 한다.

투자자들이 얼마만큼의 수익금이 돌려받을 수 있을지는 도산 절차가 끝난 다음 결정난다. 매각 자금은 현지 대출을 갚는데 먼저 사용되고 남은 금액이 펀드 투자자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도산 절차의 진행상황을 살펴본 후 본격적으로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한국투자리얼에셋운용의 또 다른 해외부동산 공모펀드인 룩셈부르크 오피스펀드도 손실이 예상된다. 자산 가치가 대폭 하락한데다가 환헤지와 관련된 빚까지 생겼기 때문이다. 이 펀드는 지난달 24일부터 SC제일은행과의 환헤지계약이 끝나 환노출 전략으로 운영되고 있다. 

해외자산에 투자하는 펀드는 환율 변동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은행과 환헤지 계약을 맺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건물을 100만유로에 매입한 A펀드가 '1유로=1000원'의 환율로 100% 환헤지계약을 맺었다고 가정해보면, 펀드는 은행에 10억원을 주고 100만유로를 받아 건물을 산다. 계약이 끝나는 시점에 환율이 똑같다면 펀드는 100만유로를 은행에 돌려주고 10억원을 받는 구조다.

그러나 만일 계약만료 시점에 1유로당 원화가치가 1500원으로 올랐다면 은행에 총 15억원을 내야한다. 룩셈부르크 펀드도 이 경우에 해당한다. 문제는 자산 매각이 쉽지 않은 가운데 환헤지 계약 종료로 은행에 돌려줘야할 빚까지 생겼다는 점이다. 펀드는 정산해야할 107억원 가운데 22억원만 갚고, 나머지 85억원은 연체이자 7% 조건으로 2026년 7월까지 은행에 갚기로 했다. 

이미 자산 가치가 낮아진 와중에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룩셈부르크 펀드의 순자산총액은 설정 당시 1394억원에서 현재 663억원으로 절반 넘게 깎였다. 

금감원 관계자는 "투자자별로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상품이라도 개별적으로 처리하는게 원칙"이라며 "밀려있는 민원이 있어 결론까진 시간은 다소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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