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2월 지상파 초고화질(UHD) 방송을 앞두고 관련 업계가 갈등을 빚고 있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방송신호 암호화'와 '안테나 장착'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방송신호를 암호화해 콘텐츠 저작권을 보호하고, 삼성전자·LG전자 등 가전회사들이 TV에 안테나를 장착해 시청자의 UHD 방송에 대한 접근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가전회사를 비롯해 케이블TV, IPTV 등 유료방송 업체들은 지상파의 요구가 재송신료, TV 제작비용 부담을 증가시켜 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 지상파 "방송신호 암호화와 TV 안테나 필요"
업계에 따르면 KBS·MBC·SBS 등 지상파 방송사는 UHD 방송신호 암호화와 가전회사의 TV 안테나 장착을 추진하고 있다.
방송신호 암호화는 방송사가 송출해 TV가 수신하는 방송신호를 암호화하는 기술이다. 연간 3000억원 수준으로 추정되는 방송 콘텐츠의 저작권 침해를 차단하겠다는 얘기다.
임중곤 KBS UHD추진단 팀장은 "방송신호 암호화는 별도 하드웨어 장치가 아니라 소프트웨어로 적용 가능하고, 이에 필요한 라이선스 비용은 방송사가 부담할 것"이라며 "시청자는 별도 장치 구매나 서비스 가입을 하지 않아도 기존과 같이 TV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가전사는 방송신호를 암호화하는 TV를 제작할 때 특정 소프트웨어를 설치해야 하는데, 이 또한 1000~2000원에 불과해 TV 제작비용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라는 주장이다.
이와 함께 가전사들이 UHD TV에 안테나를 장착해 시청자들의 UHD 방송에 대한 보편적 접근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지상파는 주장한다. 지상파는 안테나 설치 비용을 1만원가량으로 추정한다.
이를 통해 유료방송에 가입하지 않아도 자유롭게 지상파 방송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도다. 지상파 직접 수신율이 5.3%에 불과한 현 상황을 타개하려는 목적도 담겼다.
김도식 SBS UHD추진팀장은 "안테나 설치는 무료 보편 서비스라는 지상파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최소조건"이라며 "유료방송은 스포츠, 영화 등 흥미 위주인 반면, 지상파는 공적인 방송 서비스와 함께 흥미 있는 콘텐츠로 시청자 수요도 충족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 유료방송·가전사 "무료 보편 서비스라면서…"
유료방송 업체들은 지상파가 UHD 서비스를 빌미로 재송신 가격을 계속 올릴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현재 유료방송 가입자당 재송신료는 280원인데, 지상파는 이를 400원까지 올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유료방송 가입자 수는 2786만명에 달하는데, 지상파 3사가 120원씩만 올려도 그 규모가 100억원에 달한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더해 UHD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가로 추가 비용까지 요구할 우려가 있다는 게 유료방송업계의 시각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상파에 대한 수요와 UHD 콘텐츠도 적은데, 업체들이 수요와 공급이 작은 서비스를 하려면 소비자에게 부담을 전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테나 설치를 요구받고 있는 삼성전자, LG전자 등 가전회사도 부담스럽긴 마찬가지다. 이들은 안테나 설치가 단순히 1만원~2만원이 추가로 들어가는 비용만의 문제가 아니라며 반발하고 있다.
가전회사 한 관계자는 "안테나를 넣으려면 기존에 설계한 회로, 디자인, TV 두께 모두 다 바꿔야 하는 심각한 문제"라며 "글로벌 기업이 한 국가에만 팔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기회비용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회사 관계자는 "안테나 도입으로 인한 발열, 전파 장애 등을 안정화하는 시간이 필요한데, 지상파가 밀어붙이는 측면이 있다"고 토로했다.
업계 관계자는 "지상파는 UHD용 주파수를 정부로부터 무료로 받았고, UHD 방송은 무료 보편적 서비스라면서 관련 업계에 비용 부담을 전가하려는 태도를 보인다"며 "이런 부담은 결국 시청자와 소비자에게 전가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