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링크의 100% 완전 자회사화, SK플래닛으로부터 11번가 사업 분사, ADT캡스 인수 이후 NSOK 합병 및 지주사와 SK인포섹 지분 교환.
SK텔레콤이 작년 하반기부터 추진해온 주요 계열재편 결과물이다. 이 외에도 크고작은 '떼내고 합치기'가 진행 중이다. 자회사 SK브로드밴드로부터 '옥수수' 사업 분할도 검토 대상이다.
부단한 사업 교통정리에 나선 것은 지배구조 개편이라는 대대적 변화를 염두에 뒀기 때문이다. 무선통신 사업을 중심으로 성장한 SK텔레콤이 종합 ICT 기업으로 체질을 바꾸기 위해 벌이는 사전 정지작업이라는 얘기다.
◇ 박정호 사장 "중간지주사 전환"
변화와 혁신을 모색하기 위한 지배구조 개편 논의는 지난해부터 꾸준히 나왔다.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은 작년 9월 제주도에서 개최한 증권사 애널리스트 간담회에서 "지배구조 개편에 대해 고민 중"이라며 운을 뗀 바 있다.
이후 국내외 전시회나 주총 등에서 중간지주사 전환 등을 언급하며 군불을 지폈다. 지난달 제주에서 열린 SK그룹 최고경영자(CEO) 세미나에선 "SK하이닉스에 대한 지분율 상향, 뉴 ICT 사업을 이동통신과 대등하게 배치해 중간지주사로 전환하겠다"며 구체적인 청사진을 강조했다.
기존 이동통신(MNO) 중심에서 이동통신·반도체·미디어·보안·커머스 등으로 사업군을 확대한 종합 ICT 회사로 진화한다는 것이다. 통신사업자의 이미지를 벗고 알파벳이나 소프트뱅크 같은 첨단 기술 및 투자를 아우르는 기업으로 도약을 꿈꾸고 있다. 이를 위해선 기업분할을 통한 중간지주사 전환이 필수적이다.
SK텔레콤이 전공인 통신을 탈피하려는 배경은 지금의 사업구조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서다. 실제로 이동통신사업은 갈수록 힘이 빠지고 있다. 올 3분기 연결 매출 가운데 이동전화수익은 전년동기 대비 2000억원 이상 빠진 2조4900억원을 기록했다.
관련 시장이 포화 상태에 접어든데다 정부의 요금할인 압박이 계속되면서 최근 1~2년 사이 실적이 매분기 지속적으로 빠지고 있다. 이 기간 신규가입자가 늘어나고 있고 과거처럼 공격적인 마케팅 활동을 벌이지 않았던 것을 감안하면 다소 이해하기 힘든 결과다.
실제로 현 정부 들어 통신에 대한 규제가 더 강화되면서 SK텔레콤을 비롯한 통신사들의 사업 환경은 갈수록 어려워졌다. 무엇보다 작년 9월부터 시행한 선택약정할인율 상향 여파로 이통 3사 관련 매출이 흔들리고 있다. 할인율이 20%에서 25%로 확대되면서 수익성 지표인 가입자당 평균매출(ARPU)이 이통 3사 모두 감소세다.
여기에 차상위 계층, 기초연금 수급자를 대상으로 한 요금 인하안을 비롯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월 2만원에 데이터 2기가바이트(GB) 이상을 제공하는 보편요금제 도입 요구가 줄기차게 나오는 것도 부담이다.
◇ 5G 수익모델 부재·글로벌 M&A 성과 못내
그나마 기대를 걸어볼 만한 것이 내년 상용화 예정인 5세대(5G) 통신 서비스다. 5G 시대에는 SK텔레콤 같은 이통사들은 기업 및 일반 이용자를 대상으로 새로운 사업을 창출할 수 있다.
그러나 증권가에서 보는 시각은 부정적이다. 유안타증권은 최근 리포트에서 "5G 시대 B2B 수익모델은 여전히 막연하다"며 "글로벌 통신사업자 CEO를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5G 투자의 가장 큰 리스크는 '명확한 사업 모델이 없다'고 지목됐다"고 소개했다. 5G 시대가 열리긴 하나 이렇다 할 수익 모델을 찾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굳이 외부에서 이유를 찾을 필요도 없다. 내부로 눈을 돌리면 지금의 체제와 조직 문화로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SK텔레콤은 그동안 굵직굵직한 인수합병(M&A)을 추진했으나 하이닉스 정도를 제외하곤 대부분 큰 성과를 내지 못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지난 2010년 하나카드 지분 49%를 4000억원에 사들이는 방식으로 제휴, 통신과 금융을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카드 서비스에 진출했다. 하지만 이렇다 할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하고 결국 2014년부터 지분을 정리했다.
해외에서 기회를 찾으려 했던 시도가 싱겁게 끝나기도 했다. 2006년 미국 통신사 스프린트의 망을 빌려 힐리오라는 사명으로 현지 시장에 진출했으나 가입자 확보 부진 등으로 결국 2년여만에 사업을 접었다.
같은 해인 2006년 약 1조원을 들여 중국 차이나유니콤의 전환사채(CB)를 매입한 이후 1년 뒤에 주식으로 전환했으며 2009년 보유 지분을 모두 매각했다. 이 과정에서 차익을 남겼으나 중국 통신시장에서 사업을 펼쳐 보려던 꿈은 수포로 돌아갔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신흥 동남아 지역으로 눈을 돌렸으나 내놓을 만한 성과가 없다.
증권가에선 M&A 실패 사례가 유독 많은 이유를 SK텔레콤 기업 문화에서 찾고 있다. 조직원들이 본질적으로 '리스크 테이킹(위험 부담)'을 싫어하기 때문에 M&A를 해도 역량을 모으지 못한다는 것이다. M&A에 최적화하기 위해 투자 전문 지주사를 두고 사업 회사를 분할하는 내용의 지배 구조개편이 불가피한 이유다.
◇ 하이닉스 지배권 강화, 지금이 적기
SK텔레콤의 지배구조 개편 시나리오는 투자 지주사를 존속회사로 하고 사업회사인 통신사를 물적분할하겠다는 것이다. 이 경우 SK텔레콤 중간 지주사는 사업회사 뿐만 아니라 SK하이닉스와 SK브로드밴드, ADT캡스, 11번가 등을 자회사로 거느리게 된다.
문제는 중간 지주사가 공정거래위원회의 새로운 정책에 맞춰 하이닉스의 지분을 지금의 20.1%에서 30%까지 늘려야 한다는 것. 이를 위한 재원도 마련해야 한다. SK텔레콤이 하이닉스 지분을 10%포인트 끌어올리기 위해 필요한 자금은 6일 하이닉스 종가(7만100원) 기준 총 5조682억원에 달한다.
지분 상향에 필요한 재원은 물적분할한 사업회사의 재상장과 ADT캡스와 11번가 등의 상장으로 마련할 전망이다. 업계에선 하이닉스 기업가치가 저평가되어 있는 지금이야말로 SK텔레콤 지배구조 개편의 적기로 보고 있다. 하이닉스는 유례없는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최근 고공 성장을 계속하고 있으나 주가는 오히려 역행하는 등 실적에 비해 기업가치가 저평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SK텔레콤도 지주사 전환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유영상 SK텔레콤 코퍼레이트센터장은 지난달 30일 열린 3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중간지주사 전환은 결정되지 않았지만 전환하더라도 뉴ICT를 통한 성장과 이동통신 사업이 안정돼 현금흐름은 걱정 안 해도 될 것"이라며 "중간 지주사는 자회사 배당을 직접적으로 연계하고 세제혜택 등을 기대할 수 있어 배당이 오히려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