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가 발행 주식의 5% 규모, 금액으로는 무려 7200억원치 자사주 매입에 나서 배경에 관심이 모인다. '주가 안정'을 내걸고 있으나 기존 자사주 보유 물량이 상당한 수준이라 단순 주가 하락 방어용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과거 SK가 자사주를 지배구조 재편에 활용했던 전례를 봤을 때 추가 개편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 자사주 5% 추가 매입, 26%로 확대
SK는 지난 1일 이사회를 열고 주가안정을 통한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전체 발행주식의 5%에 해당하는 보통주 352만주를 앞으로 석달간 장내서 사들이기로 결의했다.
매입에 투입하는 비용은 지난달 30일 SK 주식 종가(20만4000원) 기준으로 7181억원이다. 계획대로라면 SK의 자사주는 기존 1454만주에서 1806만주(25.46%)로 확대된다.
자사주 매입에 나선 것은 지난 2015년 이후 4년 만이다. 모처럼 대규모 자사주 취득 소식이 알려지면서 이날(1일) SK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9.8% 급등한 22만400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관련 업계에선 매입 재원으로 SK 자체 보유자금과 계열사 SK E&S의 차이나가스홀딩스 지분 매각 자금을 끌어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증권가에선 이번 자사주 매입이 단순 주가 부양 차원만은 아닐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보유 자사주 규모가 20%에 달할 정도로 적지 않아 일부 혹은 전체 소각에 나서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5%를 추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SK가 지배구조 개편 차원에서 자사주를 충분히 확보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올 들어 사그라들긴 했으나 시장에선 SK가 주력 정보통신기술(ICT) 계열사 SK텔레콤을 중간 지주사로 재편할 것이란 예상 시나리오가 끊이지 않고 나온 바 있다.
즉 SK의 자회사(지분율 26.78%) SK텔레콤을 투자 지주사와 사업회사로 인적분할하고 핵심 반도체 손자회사 SK하이닉스를 SK텔레콤 투자 지주사에 존속시키며 나머지 ICT 계열사들을 사업회사로 몰아 넣는 구상이다.
이후 지배구조를 단순화하기 위해 SK텔레콤 투자회사와 SK를 합병할 때 합병 비율을 유리하게 하기 위해 자사주를 활용할 것이란 분석이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이 경우 최대주주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고려 사항은 합병 법인에 대한 의결권"이라며 "의결권을 최대한 확보(보호)하기 위한 회사의 실질적 대안은 ▲SK와 SK텔레콤 투자회사에 대한 합병 비율 최적화와 ▲SK 자사주 확보를 통한 합병 시 신주 발행 억제"라고 설명했다.
◇ 과거 지배구조 개편 때도 자사주 활용
이 같은 분석은 과거 SK의 사례를 비춰봤을 때 설득력을 가진다. 앞서 SK는 SK그룹의 시스템통합(SI) 서비스 계열사 SKC&C와 합병하는 과정에서 자사주를 활용한 적이 있다.
옛 SKC&C는 지난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세차례에 걸쳐 주가 안정을 위해 총 6000억원을 들여 자사주 600만주를 사들였다. 당시 전체 발행주식수(5000만주)의 12%에 달하는 규모다.
이후 2015년 4월 SKC&C가 지주사인 SK(주)의 흡수합병(이후 지금의 SK로 사명 변경)을 결정하면서 보유 중인 자사주 전량을 고스란히 소각했다.
이는 SKC&C의 유통 주식수를 줄여 결과적으로 최태원 회장의 합병존속법인(SKC&C)에 대한 지분율 감소를 최소화하는 효과를 냈다. 그동안 '최 회장→SK C&C→SK㈜'로 이어지던 지배구조도 '최 회장→SK'로 단순화했다.
합병 과정에서 SKC&C의 기존 SK(주) 보유주식 1494만주는 합병 비율(SK(주) 주식 1주당 SKC&C 합병신주 0.7367839주)에 따라 1101만주의 합병신주로 전환돼 자사주로 다시 쌓였다.
여기에다 SK는 합병 직후인 2015년 8월에 주가 안정을 위해 무려 8712억원을 들여 자사주 351만주를 또다시 매입했다. 이로써 전체 발행 주식의 20%에 달하는 총 1454만주의 자사주를 들고 있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