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길 가볍게 걸었을 뿐인데 한달에 30만원 정도를 월급 말고 따로 챙겨주는 회사가 있다면 어떨까. 직원들에게 밥 잘 챙겨 먹으라며 삼시 세끼 공짜로 식사를 제공하고, 한달에 한 번은 15만원 상당의 고급 유산균을 무료로 나눠주는 곳이 있다면?
대기업도 부러워할 만한 직원 복지로 월급쟁이들의 부러움을 사는 IT기업이 있어 눈길을 모은다. 헥토이노베이션·헥토파이낸셜·헥토헬스케어·헥토데이터 등으로 구성된 헥토그룹 얘기다.
전체 직원 수가 700여명인 헥토그룹은 업계에서도 색다른 직원복지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최근 만난 IT업체 직원은 헥토를 이렇게 기억했다.
"독특해요. 직원들이 하루 1만보를 걸으면 1만원씩 준답니다. 한달에 한 번씩 정산을 하는데, 걷기만 해도 보너스가 나오는 거라 서로 걷는다고 합니다. 창업자가 운동을 워낙 좋아해 (이런 제도가)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은 재미였을지 몰라도 길게 보면 생산성을 높이는 시도인데 웬만한 기업들은 알면서도 따라 하기 쉽지 않죠."
헥토그룹 임직원은 1년에 최대 490만원을 연봉 이외 보너스(포인트) 형태로 받는다. 직원들은 현금처럼 쓸 수 있는 포인트를 연간 490만 포인트까지 쌓을 수 있는데 이 중 340만원을 걷는 것만으로 채울 수 있다. 헥토에서 1포인트는 1원과 같다. 직원들은 여름과 겨울철에는 한달 최대 20만포인트, 이외 시기에는 30만포인트까지 적립할 수 있다. 걷다보니 월급 외 부수입이 매월 20만~30만원씩 따박따박 생기는 구조다.
헥토그룹 내부에선 이 같은 걷기를 '뚜벅 챌린지'라고 부른다. 아무리 오래 다녀도(근속포인트 50만점), 성과가 좋아도(성과포인트 100만점) 걷기로 쌓은 뚜벅 챌린지(340만점)를 당해낼 수 없다.
이렇게 쌓은 포인트는 여행·학원비·체련단련비 등 개인이 원하는 자기계발비로 쓸 수 있다. 시행 초기에는 한달에 100만보 이상 걸은 직원에 대해 발바닥을 동판으로 제작해 사내에 전시도 했다. 올림픽 마라토너 못지않은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헥토라는 이름을 접하면 여전히 생소하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유니콘(10억달러), 데카콘(100억달러)보다 큰 헥토콘(1000억달러)을 만들자는 취지로 그룹 이름을 헥토라고 정했다.
시작은 밀알과 같았다. 휴대폰 명의도용 방지서비스(헥토이노베이션)에서 붐업을 이뤄 간편현금결제(헥토파이낸셜), 프로바이오틱스(헥토헬스케어) 제조·유통 등으로 사업영역을 넓혔다.
창업자인 이경민 의장은 헥토의 성장을 '자전거'에 빗댔다. 페달을 밟지 않으면 쓰러지기에 밟고 또 밟아야 새로운 세상에 닿을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뚜벅 챌린지에는 걷는 것 이상의 의미가 담겼다. 끊임없이 달리려면 무엇보다 체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럼에도 직원들에게 화수분처럼 해주고픈 그 무엇이 헥토에는 흐른다. 사내 커피숍에서 커피 한 잔 값이 500원이다. 공짜로 줄 거면 공짜로 주든지 500원은 왜 받냐고 따질 만한데, 직원들은 잠잠하다. 이렇게 낸 500원이 형편이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달되는 걸 알고 있어서다.
삼시 세끼 공짜인 구내식당도 싼 가격의 식재료를 대충 내놓았다가는 큰 일 난다. 최근에는 미국 유명 햄버거 '쉐이크쉑 버거', 용산 줄서는 식당 '문배동육칼', 오픈런 맛집 '런던 베이글 뮤지엄' 등의 메뉴를 구내식당에 선보였다. 직원들이 만족해야 업무 몰입도와 성과가 높아질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심지어 은행대출이 어려운 직원에게는 주택구매자금으로 1억원을 신용등급과 상관없이 사내에서 대출해준다. 은행 돈 빌려 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아는 사람은 이 소중함을 안다. DTI·LTV 등 각종 금융규제와 상관없이 주택마련과 전월세 자금을 융통할 수 있다. 창업 초기 직원들이 집 걱정, 출퇴근 걱정하는 걸 지켜본 이 의장이 업무에 집중하라는 취지로 사내 대출 제도를 도입했다고 한다.
재미있는 건 건강과 운동, 금융이 단순히 내부용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헥토그룹은 일찍 일어나고 양치하고 걷는 것만으로 과외 수입을 얻을 수 있는 '발로소득'부터 AI(인공지능)·전문가 협업으로 맞춤 영양제를 추천하고 사후 관리까지 해주는 '또박케어' 등 일상생활과 관련한 여러 앱을 내놓고 있다. 일반인들이 자유롭게 쓸 수 있다.
최근에는 직원들 대상의 뚜벅 챌린지를 확대해 일반 이용자들을 초대한 걷기대회를 열었다. 약 400명이 참가했다. 이쯤되면 정체성이 헷갈릴 정도다. 프로바이오틱스를 생산·유통하는 회사도 거느리고 있다보니 IT기업이라고 하기에도, 제약바이오 회사라고 하기에도, B2B(기업간거래)인지 B2C(기업과 소비자간 거래)인지 애매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헥토그룹은 이 같은 전략을 쉽게 내려놓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주정차 위반이나 과속단속 정보를 제공하는 '휘슬', 각 카드사가 제공하는 혜택을 한데 모아 볼 수 있는 '더쎈카드', 생활금융플랫폼 '010PAY' 등 틈새시장에선 어김없이 헥토가 자리잡고 있다. 가랑비에 옷 젖듯 쓰다보니 헥토의 앱이었다는 걸 알게 되는 식이다.
이밖에 나몰래 결제를 막아주는 '세이프캐시'부터 '아파트청약케어' 같은 프롭테크 서비스도 선보이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없어선 안되는 플랫폼 기업의 특성이다. 헥토그룹은 이용자와 접점을 늘리는 시도를 계속할 전망이다.
헥토그룹 관계자는 "이번 걷기 행사를 시작으로 고객을 직접 만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해 고객과 스킨십을 강화하고 긍정적인 기업 이미지를 구축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