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개발에서 중요한 것은 안전성이다.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면 개발을 중단해야 한다. 의약품 부작용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이유다. 부작용이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니다. 생각하지 못한 효능이 발견되기도 한다. 개발 과정에서 부작용이 나타나 운명이 뒤바뀌거나 또 다른 효능이 발견된 약들의 뒷이야기를 다뤄본다.[편집자주]
다이어트는 평생 숙제다. 찌기는 쉬우나 빼기는 어렵다. 나이가 들수록 기초대사량이 떨어져 체중이 같아도 체질량지수(BMI)가 높아진다. 비만 수치가 높아지면 다양한 질병을 일으킬 수 있다. 그동안 각양각색의 비만 치료제들이 출시됐지만 마약류인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돼 단기간만 사용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정신적 의존성이나 내성 유발 위험성 때문이다.
당뇨병치료제 개발하다 식욕부진·체중감소 부작용 발견
그러다 획기적인 비만 치료제가 등장했다. 직접 배나 허벅지에 주사를 놔야 하는 불편함에도 월등한 체중감량 효과로 각광받은 삭센다(성분명 리라글루티드)와 위고비(성분명 세마글루티드)다.
두 의약품은 음식을 섭취한 후 분비되는 호르몬인 GLP-1(글루카곤 유사 펩티드-1)과 유사하게 작용하는 GLP-1 유사체 계열 약물이다. 삭센다는 1일 1회 주사제고, 위고비는 주 1회 주사한다.
원래 이 약들은 덴마크의 노보노디스크라는 제약사가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한 약이었다.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면서 혈당량을 낮추는 효과 때문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지난 2010년 성인을 대상으로 한 제2형 당뇨병 치료제로 첫 허가를 받은 '빅토자'가 삭센다의 원조다.
회사는 빅토자 개발 단계에서 식욕 부진과 체중 감소 부작용이 발생한 사실을 토대로 비만 치료제로 다시 개발에 돌입했다. 임상시험에서 리라글루티드 성분이 위장운동을 억제해 소화를 늦추고 포만감을 오랫동안 유지시켜 체중이 5~10% 감소하는 효과를 확인했다. 회사는 2014년 FDA로부터 비만치료제 '삭센다'를 허가받았다.
빅토자와 삭센다의 차이는 용량이다. 빅토자는 0.6mg, 1.2mg, 1.8mg 세 가지 용량에 대해 사용이 가능하지만 삭센다는 최소 0.6mg에서 최대 3.0mg까지 용량을 늘려 맞을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입소문을 탄 삭센다는 지난 2019년 전세계 비만치료제 시장 점유율 56.3%를 기록하며 1위를 차지했다. 국내에서는 품귀 현상이 빚어지면서 1인당 최대 3펜까지 제한적으로 처방됐고 월초에 약국에 공급된지 하루이틀이 지나면 재고가 동나는 곳이 속출했다.
주 1회 주사로 개선한 당뇨·비만치료제...연매출 약 30조원으로 '껑충'
노보노디스크는 빅토자와 삭센다의 대성공을 거두면서 1일 1회 주사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개선한 차기 당뇨병치료제 개발에 돌입했다. 우선 리라글루티드의 구조를 변형해 약물 작용시간을 대폭 늘린 세마글루티드가 2017년 FDA로부터 주 1회 주사하는 당뇨병치료제로 허가를 받았다. 제품명은 '오젬픽'이다. 오젬픽은 곧바로 비만 치료제로도 개발을 진행했는데 이것이 위고비(제품명)이다. 위고비는 2021년 FDA 승인을 받았다.
빅토자와 삭센다처럼 오젬픽과 위고비는 성분은 동일하지만 사용 가능한 용량에 차이가 있다. 당뇨병 치료제인 오젬픽은 최소 0.25mg에서 최대 2mg 최대까지 증량이 가능하다.
반면 위고비는 최소 0.25mg에서 최대 2.4mg까지 투약이 가능하다. 당뇨병치료제의 사용가능한 최대 용량이 비만치료제보다 적은 이유는 당뇨병 환자의 경우 저혈당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매일 주사해야 하는 불편함을 주 1회로 단축시킨 위고비는 출시와 함께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켰다. 임상시험에서 체중감량 효과가 15%로 삭센다보다 우월하다는 결과가 나오면서다. 특히 위고비로 미국 셀럽인 킴 카다시안은 7kg을, 테슬러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는 14kg을 감량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세계적으로 품귀 현상을 빚었다.
세계 공급물량이 부족하다 보니 위고비는 국내에서 지난 2023년 4월 허가를 받았지만 1년 6개월이나 지난 작년 10월에서야 출시됐다. 위고비 역시 출시 직후 삭센다처럼 국내에서 품귀 현상을 빚었다.
노보노디스크는 GLP-1 당뇨·비만치료제 출시로 매출이 급성장했다. 삭센다 출시 직전인 2013년 매출액은 약 711억 덴마크 크로네(현재 환율 기준 14조2500억원)에서 2023년 2322억 6100만 덴마크 크로네(29조6000억원)로 껑충 뛰었다.
국내 기업도 개발에 속도…제네릭 부작용 우려도
GLP-1 비만치료제의 대흥행으로 한미약품, 디앤디파마텍, 삼천당제약, 프로젠, 유한양행, 고바이오랩, 일동제약 등 국내 기업들도 GLP-1 비만치료제 개발에 뛰어든 상황이다.
GLP-1 비만치료제 역시 부작용 우려가 없는 건 아니다. 가볍게는 설사, 복통, 구토 등이, 심하게는 췌장염, 위마비, 장폐색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또 음식을 조금만 먹어도 포만감을 유지시켜주는 기전때문에 영양 결핍으로 인한 탈모, 뼈 약화, 면역력 저하 등 문제도 우려되고 있다. 실제로 위고비 임상에서는 100명 중 3명 꼴로 탈모 부작용이 나타났고 미국에서 위고비 투약 후 탈모 증상이 나타났다는 사례가 보고됐다.
이에 FDA는 해당 비만치료제의 탈모와 자살충동 등 부작용을 조사 중이다. 부작용 우려와 더불어 국내에서는 초고도 비만 환자의 치료 목적 보다 날씬한 몸매를 위한 미용 목적으로 처방되는 경우가 많아 특히 주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