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과 홍콩에 본사를 둔 인실리코메디신은 AI(인공지능) 신약개발 분야에서 '세계 최초' 타이틀을 연달아 따내며 이 분야 글로벌 선두주자로 평가받는다.
2016년 회사는 생성형 AI를 활용한 신약개발 개념을 국제학술지 온코타깃에 세계 최초로 발표했다. 이후 2019년 네이처 테크놀로지에 AI 기술을 접목해 단 46일 만에 신약후보물질을 설계하고 효능검증까지 마친 연구를 게재했다. 신약개발 분야에서 AI 기술의 폭발적인 잠재력을 보여준 첫 사례다.
인실리코메디슨은 이 기술로 특발성 폐질환 치료후보물질인 '렌토세닙'을 발굴하고 2023년 임상 2상 시험에 진입했다. AI로 발굴해 임상 2상 시험에 들어간 첫 번째 물질이다.
최근 발표한 임상 2a상 톱라인(주요) 결과에서 렌토세닙은 우수한 약효와 안전성을 확인했다. 특히 렌토세닙은 질병의 진행 속도만 늦출 수 있는 기존 치료제와 비교해 임상에서 질병 진행을 멈추거나 되돌릴 가능성을 나타냈다.
2014년 회사를 창립한 알렉스 자보론코프 인실리코메디슨 CEO(최고경영자)를 지난 7일 서면으로 만났다. 그는 최근 한국 바이오기업과 협업을 늘리고 있다. 다음 달 한국을 방문해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는 제약바이오 전시회인 '바이오코리아 2025'에 기조연사로 참여한다.
자보론코프 대표는 "신약개발 분야에서 생성형 AI의 잠재력을 보여준 선도적인 논문을 토대로 우리 팀은 생물학과 화학, 임상, 과학연구를 아우르는 '파마.AI' 플랫폼을 발전시키기 위해 첨단 기술을 지속적으로 통합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30개 이상의 자체 파이프라인을 개발했고 이 중 10개의 물질이 임상시험계획(IND) 승인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한국의 중견 및 대형 제약바이오기업 5곳과 소프트웨어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며 "우리의 비즈니스 모델은 매우 유연하며 파이프라인 기술이전 협업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초기 단계 약물 발견 및 개발 협업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단기간에 유망물질 도출
인실리코메디슨은 최근 국내 바이오기업인 테라시드바이오사이언스와 협업을 통해 비알코올성 지방간염(MASH) 후보물질을 발굴하는 성과를 냈다. 인실리코메디슨은 테라시드로부터 일련의 화합물을 제공받았고 단 4개월 만에 ADMET(약물의 흡수·분포·대사·배설·독성) 특성을 최적화한 분자를 40개 합성했다.
인실리코는 이 중 ADMET 특성이 가장 우수한 후보물질 하나를 선정했고 테라시스는 이 약물의 전임상 시험을 진행할 계획이다. ADMET 최적화는 신약개발 초기단계에서 실패요인을 사전에 예측해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핵심 개발 전략이다.
자보론코프 대표는 "당시 만난 테라시드는 이전까지 임상수탁기관(CRO)과 협력해 4000개 이상 후보물질을 테스트했지만 의미 있는 물질을 얻지 못한 상태였다"며 "반면 우리와 공동연구에서는 4개월 만에 ADMET 특성이 우수한 물질을 최적화하는 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인실리코메디슨이 단기간에 우수한 약물을 발굴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독자 개발한 AI 신약개발 플랫폼인 '파마.AI'의 역할이 컸다.
인실리코메디슨은 파마.AI를 '생성형 AI 기반의 엔드투엔드(End-to-end) 소프트웨어 및 로보틱(자동화) 플랫폼'이라고 부른다. 단순한 약물설계를 넘어 임상, 허가 등의 신약개발 전 과정을 지원할 수 있으며 이를 자체 구축한 자동화 실험실에 통합했기 때문이다.
인실리코메디슨은 파마.AI를 통해 렌토세닙을 비롯한 30개 이상의 후보물질을 발굴해 개발하고 있다. 이 중 10개의 약물이 미국 등에서 IND 승인을 받았다. 주목할 점은 AI 기술을 활용해 여기에 걸리는 시간과 비용을 기존 방식과 비교해 절반가량 줄였다는 것이다.
자보론코프 대표는 "현재 세계 20대 제약 회사 중 11곳이 파마.AI를 사용하고 있다"며 "AI와 자동화 기술을 통합해 우리는 기존 신약 개발 방법에 비해 상당한 효율성 향상을 입증했고 후보물질 개발까지 걸리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노화 정복 목표
자보론코프 대표는 AI뿐만 아니라 노화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 그는 현재 세계 최대 노화학회인 '노화연구 및 약물발굴(ARDD)'의 공동 의장을 맡고 있다. 또 국제 학술지 '에이징리서치리뷰'의 편집 위원회 위원, 세계 최대 민간 노화연구기관인 '벅 노화 연구소'의 겸임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 그의 목표 중 하나는 AI 기술을 접목해 질병뿐만 아니라 노화를 정복하는 것이다. 실제 인실리코메디슨은 노화 분야의 약물도 개발하고 있다.
알렉스 자보론코프 대표는 "제 개인적인 최종 목표는 노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며 "인실리코메디슨의 자동화 실험실에서는 노화 분야 약물의 적응증 확대를 위한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실험실에서 티닉(TNIK) 저해제의 노화 치료제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 10년간 AI 신약개발의 진화를 지켜보며 이제는 알고리즘의 시대를 지나 AI 소프트웨어의 시대, 그리고 AI가 실제 신약개발을 이끄는 시대로 전환됐다"며 "시장에 잠재력을 알리는 초기 단계는 지나 앞으로 3~5년은 실질적 성과가 나오는 전환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대규모 언어모델(LLM)의 통합으로 AI 신약개발 분야는 다시 한번 혁신의 물결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이 기술은 신약개발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전체 개발 속도를 크게 가속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