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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한전석의 실체와 중국의 변화

  • 2014.02.27(목) 10:00

만한전석(滿漢全席)은 청나라 황제가 만주족과 한족 관리의 화합을 위해 베풀었다는 잔치로 널리 알려졌다. 만한전석에는 과연 어떤 요리가 나올까?

만주와 한족의 귀하고 다양한 음식을 모두 모았는데 보통 108 가지의 산해진미가 나오기 때문에 하루에 다 못 먹고 사흘에 걸쳐 먹은 것으로 유명하다. 최고로 많이 차렸을 때는 전채와 후식인 딤섬까지 포함해 무려 300 종류가 넘었던 적도 있다. 

만한전석 요리는 하나하나가 환상적일 것 같지만 사실은 대부분 우리가 아는 요리들이다. 제비집 수프, 샥스핀, 전복과 해삼, 그리고 상하이 대갑 게와 버섯, 중국인이 좋아하는 보양식 자라탕 등이 올랐다. 개별적으로는 이미 널리 알려진 음식들이다.

물론 평소 구경 못하던 진귀한 요리도 있다. 흔히 엽기적인 중국요리를 꼬집을 때 거론되는 원숭이골, 코끼리 코 등도 있지만 살아있는 원숭이 골은 깊은 산골에서 나오는 원숭이머리(猴頭) 버섯, 코끼리 코는 옛날 만주에 흔했다는 말코손바닥사슴(犴鼻), 즉 엘크 사슴의 고기다. 소문과는 거리가 있다.

그리고 캐비아로 유명한 철갑상어 알, 고대 산해진미였던 곰발바닥과 사슴꼬리 등이 만주의 대표음식으로 나왔다.
 
중국 최고의 잔치라는 만한전석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흔히 청나라 강희황제 때부터로 알려져 있지만, 엄격하게 말해 청나라 때 만한전석이라는 이름의 궁정 잔치는 존재하지 않았다. 정사(正史)에는 보이지 않고 개인 문집에 궁정이 아닌 관청의 연회에 만한석(滿漢席)이라는 잔칫상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만주족과 한족 관리가 모여 음식을 함께 나누었다는 만한전석 이야기는 허구일까?

청나라 궁정에서는 역사상 네 차례만 열렸다는 노인잔치, 천수연(千叟宴)을 비롯해 다양한 잔치가 열렸다. 연회 때마다 만주족과 한족 관리들이 참석해 음식을 함께 했으니 당연히 만주 음식과 중원 음식이 동시에 차려졌다. 명칭만 사용하지 않았을 뿐 일종의 만한전석이다.

하지만 궁중연회가 만한전석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해, 유명해진 것은 20세기 중반이다. 1970년대 홍콩에서 청나라 궁정 잔칫상을 재현해 TV로 중계하면서 만족과 한족(滿漢)의 화합을 위한 잔치라고 홍보한 것이 만한전석이 유명해진 계기다. 그런데 만한전석이 진짜 화합을 위해 마련한 잔치였을까?

만한전석의 모델을 청나라 강희제 때 시작된 노인잔치, 천수연에서 찾는다. 청나라 정사인 청사고(淸史稿)에 의하면 65세 이상의 만주족 문무대신 680명, 한족 관리 340명 등 약 1,000명이 참석했다. 건륭황제 역시 재위 50주년을 기념해 천수연을 열었다. 사해(四海)가 평온하고 천하가 부유해졌다며 만주족과 한족의 노인은 물론 조선을 비롯한 청나라 주변국의 노인들까지 모두 3,000명을 초대했다.

천수연은 기본적으로 황제의 환갑과 칠순을 기념하는 노인잔치였다. 만주족과 한족의 화합을 위한 잔치가 아니다. 그러니 만한전석에 굳이 정치적 의미를 부여한다면 전성기를 맞은 청나라가 한족은 물론 주변국에 자신들이 이룬 업적을 자랑하고 세력을 과시하기 위한 잔치였다. 만한전석은 잔치이름부터 의미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환상 속의 잔치’였던 셈이다.

21세기 중국의 변화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지금 정치, 경제대국이 됐다. 중요한 것은 중국을 보는 우리의 시각이다. 환상이 아닌 실체를 정확히 짚어야 제대로 대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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