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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어와 조선의 시장경제

  • 2014.09.12(금) 08:38

 

집 나간 며느리 돌아오게 만드는 생선이 전어다. 그런데 전어를 보면 조선시대, 특히 중기의 경제 실상을 알 수 있다.

전어는 맛이 좋아 비싼 값을 주고라도 사먹는 생선이라서 생긴 이름이다. 때문에 돈 전(錢)자를 써서 전어(錢魚)가 됐다. 정조 때의 실학자 서유구가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에 이름의 유래를 적었다.

“전어는 고기에 가시가 많지만 육질이 부드러워 씹어 먹기가 좋으며 기름이 많고 맛이 좋다. 상인들이 소금에 절여서 서울로 가져와 파는데 신분의 높고 낮음을 떠나서 모두 좋아하므로 사는 사람이 값을 생각하지 않고 사기 때문에 전어(錢魚)라고 한다”

시장에서 값을 따지지 않고 샀다는 이야기는 가을 전어의 공급이 수요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는 뜻이다. 경제학 원론에 나오는 수요공급의 법칙에 적나라하게 적용된다.

옛날 가을 전어는 수요가 많아 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었다. 선조 때 학자 조헌(趙憲)은 동환봉사(東還封事)라는 문집에서 경주에서는 가을 전어를 명주 한 필을 주고 바꾸고 평양에서는 겨울 숭어를 정포 한 필로 바꾼다고 했다. 가을 전어 값이 경주에서는 비단 한 필 가격과 맞먹고 평양에서는 겨울 숭어 가격이 잘 짠 무명 한 필 값에 이른다는 것이니 비싸도 보통 비싼 것이 아니다. 

 

전어가 비싼 값어치를 할 만큼 맛있다는 뜻이 아니라 조선 경제의 수급구조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한 말이다.
 

예전에는 경상도에서도 전어가 잡혔다. 때문에 경주에서 전어를 진상했다. 하지만 조선 중기에는 전어가 잡히지 않는데도 진상품목에 들어있어 시장에서 전어를 사다 한양으로 보내야 했다.

전어가 주로 잡히는 곳은 서해안이다. 충남 서천의 홍천항, 전남 광양의 망덕포구, 전남 보성 율포항 등이 잘 알려져 있는데 모두 조선왕조실록 지리지에서 특산물로 전어를 꼽았던 지역이다. 그런데 공물로 전어를 바쳤던 곳은 엉뚱하게 경상도 경주였으니 시장의 전어 값이 비단 한 필 값까지 치솟았던 것이다.

가을 전어는 그렇지 않아도 맛이 좋아 부르는 것이 값이었다. 임진왜란 때의 쇄미록(瑣尾錄)에는 “시장에서 큰 전어 한 마리의 값이 쌀 석 되 값”에 이른다고 적혀있다.

가을이면 오르는 전어 가격이 각종 기록과 일기에 수록될 정도였으니 돈 전(錢)자를 써서 전어라는 이름이 지어질 만도 했다. 하지만 전어가 언제가 값의 고하를 막론하고 사 먹을 만큼 맛있는 것은 아니다.

전어는 다른 어종에 비해 단백질 함량이 높아 22.4%에 이르고 지방 함량은 2% 내외지만 계절에 따라 함량이 달라져 맛도 변하는데 7~8월에는 기름기가 적고, 겨울이 시작되는 11월이면 잔가시가 억세져 먹기가 힘들어진다. 때문에 가을인 9~10월 전어를 최고로 친다.

그러니 전어에 대한 대접도 계절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가을 전어는 돈을 아까지 않고 사 먹는 생선이고, 며느리 친정 보내놓고 몰래 먹는 물고기지만 가을을 제외하면 완전 찬밥 신세다.

한 여름에 잡히는 전어는 돼지나 개도 먹지 않는다고 했고 전어가 많이 잡히는 남도 섬에서는 강아지도 전어를 물고 다녔다. 심지어 잡은 전어를 미처 다 처리하지 못해 밭에 거름으로 뿌렸을 정도였다고 한다. 전어를 통해 본 조선의 경제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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