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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①

  • 2014.10.15(수) 08:21

기후변화로 인해 경제불황이 닥치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자 책을 출판하고 며칠 후에 경북대에서 강연 요청이 들어 왔다. 강의를 하기 전에 환경, 에너지 쪽 일을 하시는 교수님들과 점심을 먹었는데 한때 청와대에서 일했다는 교수님 한 분이 흥미로운 일화를 말씀해 주셨다.


내용은 이렇다. 노무현 정권 후반기쯤 한국계 미국인 장군 한 명이 한국 정부가 꼭 알았으면 하는 내용이 있다면서 몇 가지 자료를 들고 청와대를 방문했다. 한국계 미군 장성이 들고 온 내용은 기후 변화 문제로 인한 사회, 경제, 환경적 악영향이 심해지면 국가적 사회적 위기가 온다는 예측 자료였다. 예고에 없던 방문자가 건네준 기후변화 리스크 관련 자료를 놓고 회의가 열렸고 청와대 내부에서는 관련 일을 하던 사람들은 이 일을 계기로 기후변화 대응에 강력한 시동이 걸릴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이 사건은 잠시 후 곧 잊혀졌고 여러 가지 현안에 밀려서 기후변화 이슈는 다시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다.
 

 
▲ 미국 정보정보 위원회(National Intelligence Council)이 2008년에 발표한 제 4차 장기전망자료(Global Trends 2025: A Transformed World), 기후변화 대응을 거부한 부시 정권하에 작성되었지만 기후변화가 미래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음을 공식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한국계 미군 장성이 청와대에 전달했다는 내용은 이 보고서와 관련된 자료일 확률이 높다.


기후변화는 워낙 천천히 진행되는 문제이다 보니 전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대응은 더디고 워낙 대응을 안하다 보니 상황은 이제 꽤나 심각해졌다. 예를 들어 살기 좋기로 유명했던 캘리포니아는 4년째 지속되고 있는 가뭄으로 인해 이미 올해 초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물 절약 운동 등 적극적인 조치에 나섰다. 하지만 상황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곳곳에서 물 부족으로 농사를 포기하면서 식료품 가격은 상승하고 미국 전역에 야채와 과일을 공급하던 숙련된 일꾼들이 순식간에 실업자가 되어 구호품에 의존해서 연명하고 있다. 가뭄으로 댐이 말라 전기 생산량도 줄어 들고 있다.


 

▲ 물이 말라 발전이 중단된 캘리포니아 혼부룩 지역 클라메스 강의 댐 사진. 부족해진 전력인 태양광 발전과 풍력발전이 대부분 메꾸고 있지만 천연가스 사용량도 다소 늘어났다. 원자력 사용은 줄어 들었다.


가뭄이 4년이나 지속되면서 최악의 상황이 되었지만 여전히 이번 가뭄도 자연적인 원인에 의한 일시적인 현상일 수도 있다라는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한마디로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런 막연한 낙관론은 스탠포드 대학 연구팀이 캘리포니아에 비구름이 진입하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는 ‘말도 안되게 버티는 기압골 (Ridiculously Resilient Ridge)’이 만들어진 게 지구온난화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면서 힘을 잃고 있다.

 

물론 앞으로 캘리포니아에 비 한 방울 안 온다거나 이번 가뭄이 절대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번 연구결과는 앞으로 이런 현상이 더욱 자주 나타나고 더욱 오래 갈 거라고 전망하고 있다. 몇몇 캘리포니아 주민들은 기후에 맞지도 않는 초록 잔디밭을 포기하고 그냥 죽게 놔두거나 앞마당에 선인장을 심고 모래를 까는 사막정원화(desert landscaping)을 시작했다.

▲ 파란색 ‘H’ 글씨가 있는 부분이 캘리포니아 전역을 극심한 가뭄으로 몰아 넣은 ‘말도 안되게 버티는 기압골’이다. 이 기압골 때문에 제트기류에 커다란 굴곡이 생겼고 태평양에서 만들어진 비구름이 이 제트 기류가 만들어 낸 길을 따라 북쪽으로 가고 있다. 과거에는 기압골이 생겨도 며칠이나 몇 주면 사라졌었다. 하지만 이제는 말도 안되게(ridiculously) 오랫동안 버티고(resilient) 있다.


먼 미래에 서서히 나타나 가난한 나라를 강타할 문제로 알았던 기후변화의 영향이 생각보다 훨씬 빠르고 강하게 나타나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이런 추세로 자꾸 지구가 뜨거워지면 앞으로 어떤 변화가 나타날지에 대해서 여러 가지 전망을 내어 놓기 시작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미국의 인구 이동에 관한 전망이다.

 

미국의 한 연구팀에 의하면 우리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열심히 줄이더라도 이미 배출해 놓은 양이 워낙 많아 기후는 꾸준히 변해 2050년만 되도 ‘여기가 어디지?’ 싶을 정도의 변화가 나타날 거라고 한다. 이렇게 되면 지금도 덥고 가물어 살기 어려운 미국 남부 지역은 더욱 살기 어려워지고 지금은 다소 추워 인기가 적은 북서부해안 지역과 캐나다 전역이 가장 살기 좋은 지역이 될 거라고 전망했다. 2100년경에는 캐나다 최북단에 있는 알래스카가 가장 살기 쾌적한 곳이 될 거라는 전망도 내 놨다.
 

▲ 올해 전직 재무장관 3명과 여러 경제 리더들이 주축이 되어 발표한 리스키 비즈니스(risky business) 보고서에 전망된 폭염 지역 확대 전망. 폭염이 한해 몇 달 이상 지속되는 지역이 현재 미국남서부 일부에서 남부 전역으로 확산될 전망이다. 올해 태어난 아이가 어른이 될 텍사스 지역의 경우 일년에 절반 이상이 폭염을 겪게 된다. 사람이 살기 어려워진다. 알래스카와 미국 최북단은 세기말이 되어도 폭염에 시달릴 일이 없다

 

그런데 절대 다수의 사람들은 거주지를 옮길 때 현재 직장, 생활비, 삶의 질(녹지 등)을 고려하고 장기적인 기후변화 영향은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장기적으로 기후로 인한 영향에서 안전한 지역에서 점점 상황이 악화될 것이 분명한 지역인 플로리다, 워싱턴 DC 같은 대서양 연안과 남부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실제로 해수면 상승으로 도로가 종종 바닷물에 잠기는 마이애미 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여전히 고속 상승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사람들이 왜 안전한 곳에서 위험한 지역으로 가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하지만 어쩌겠나? ‘여기에는 직장도 없고 몹시 춥지만 2100년이면 살기 좋아질 것이니 2014년부터 자리 잡고 살자’라는 것도 말이 좀 안 되긴 한다. (②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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