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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팥죽은 미신일까, 과학일까

  • 2014.12.19(금) 08:39


요즘 동지는 팥죽 먹는 날이다. 왜 팥죽을 먹을까? 귀신이 팥의 붉은 색을 싫어하기 때문에 액땜을 하기 위해서라고만 알고 있다. 단지 이런 미신 같은 이유 때문에 동짓날 팥죽 먹는 풍속이 2,000년 가깝게 이어져왔을까?
 
 “동지 팥죽은 비록 양기가 되살아나는 것을 기원하는 뜻이라지만 귀신을 쫓겠다고 문지방에 팥죽 뿌리는 것은 올바른 일이 아니니 그만 두라고 명했는데 아직까지도 팥죽을 뿌리고 있다. 이후로는 철저히 단속해 잘못된 풍속을 바로 잡으라”
 
영조실록의 기록이다. 동지에 팥죽 뿌리는 풍습이 얼마나 지나쳤는지 왕명도 먹히지 않자 영조가 역정을 내는 모습이다. 왜 동짓날 팥죽을 먹으면 귀신을 쫓는다고 믿게 된 것일까? 근거가 있다. 많이들 알고 있는 것처럼 6세기 초, 중국의 형초세시기라는 문헌에 이유가 나온다.
 
“동짓날 해의 그림자를 재고 팥죽을 끓인다. 역귀를 물리치기 위해서다” 배경 설명도 있다. “공공씨(共工氏)에게 재주 없는 아들이 있었는데 동짓날 죽어 역귀가 됐다. 팥을 무서워했기 때문에 동지에 팥죽을 끓여 귀신을 물리치는 것이다”
 
얼핏 보면 속된 말로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 같지만 자세히 해석하면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의미가 있다. 동짓날 해의 그림자를 잰다는 것은 새로 달력을 만든다는 뜻이다. 고대에는 동지가 새해였기 때문이다. 동지를 설날에 버금가는 날이라는  아세(亞歲)라고 하는 이유다.
 
공공씨는 중국 신화에서 강을 다스리는 신이다. 농사에 필요한 물도 공급하지만 때로는 강을 범람시켜 홍수도 일으킨다. 재주 없는 아들이 죽어 역귀가 됐다는 것은 무슨 소리일까? 역귀(疫鬼)는 그냥 귀신이 아니다. 특별히 전염병을 옮기는 귀신이다. 강을 다스리는 신인 공공씨의 아들이 죽어 역귀가 됐다는 말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홍수가 난 후에 전염병이 나돌았다는 이야기다.  
 
공공씨의 아들은 왜 하필 팥을 무서워했을까? 옛날 사람들은 팥죽을 먹으며 영양을 보충해 전염병을 예방하고 치료했다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다. 먹을 것이 넘치는 현대를 사는 우리들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지만 1,500년 전의 상황은 지금과 달랐다. 평민들은 열량 높은 음식을 먹기가 힘들었으니 영양가 높은 팥은 겨울철 추위를 이겨내는데 최적의 음식이었다.
 
옛 문헌 곳곳에 팥죽의 효능이 적혀 있다. 당나라 초학기에는 동짓날 뜨거운 팥죽을 먹으면 소화가 잘 되고 양의 기운을 보충할 수 있어 몸에 이롭다고 풀이했다. 의학서인 본초강목과 동의보감에도 팥은 혈액이 고르게 순환하고 기가 잘 통하도록 돕는 음식이라고 했으니 전염병의 예방과 치료에 딱 좋은 식품이다. 조선시대에도 동짓날이면 배고픈 사람을 모아 팥죽을 먹였다고 하는데 헐벗고 굶주린 백성들에게 팥죽 한 그릇은 보약과 다름없는 영양식이었기 때문이다.   
 
추운 겨울날, 홍수 피해를 입은 수재민들이 뜨거운 팥죽 한 그릇 먹으면 영양보충은 물론이고 얼었던 속까지 녹아 추위를 물리칠 수 있으니 역귀가 끼어들 틈이 없다. 역귀가 진짜 무서워했던 것은 팥의 붉은 색이 아니라 붉은 색 팥의 영양분이었을 것이다. 동지 팥죽의 진정한 의미는 건강한 한 해를 보내게 해달라는 소원의 음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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